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한국의 친구들도 멀리에서나마 향을 사르고 머리를 숙여 영령들의 평안한 안식을 빌고 있습니다. 무고하고 억울한 희생 앞에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1968년, 베트남전이 한참이던 때 꽝남성에서 참극이 벌어졌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이 무기도 들지 않은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이다. 희생자들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과 여성들이었다.
지난 11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에서 1968년 당시 한국군에 학살당한 하미마을 주민 135명을 추모하는 50주기 위령제가 열렸다.
이날 강우일 한베평화재단 이사장(천주교 제주교구장)과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한베평화재단에서 꾸린 한국인 참배단 41명이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 유가족과 주민들에게 사죄했다.
강우일 이사장은 “17년 전 이 자리에 위령비가 서고, 45주기 위령제 때 향을 피우고, 머리를 숙였던, 그 세월을 지나 50주기를 맞는 오늘, 여전히 우리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심경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말로 추도사를 시작했다.
이어 “아무리 부끄러운 과거일지라도 그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두고두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과거를 올바르게 매듭지을 때 그 매듭이 미래의 발판이 되어 진정한 화해와 평화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약속합니다. 하미학살 50주기를 맞는 지금 이 순간 새로운 평화의 반세기를 시작하겠노라고 말입니다.
강 이사장은 한국 시민사회를 대신해 억울하게 스러져 간 영령들 영전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한다면서, “한국의 가톨릭 교인을 대신하여 저, 강우일. 한국의 교수를 대신하여 저, 서중석, 손호철. 한국의 의료인을 대신하여 저, 송필경, 정상호…” 참배단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거듭 사죄했다.
지난해 9월, 한베평화재단 창립 1주년 평화콘서트에서 강 이사장은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공감하게 되면서 베트남 비극이 더 민감하게 다가왔다면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원초적 적대감’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베트남 현지 언론들은 한국인들이 위령제에 참석해 엎드려 사죄하는 장면을 크게 보도했다. 베트남 대표 일간지 < 뚜오이쩨(Tuoi Tre) >는 “돌아오라, 우리는 용서했다” “한베평화재단, 한국군 학살 유가족에게 사죄하다” “41명의 한국인이 하미 묘비 앞에 사죄의 절을 올리다”라는 제목으로 하미마을 50주기 위령제 소식을 전했다.
19일 김현권 의원은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과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국제적인 문제로 삼지 말라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경제적인 성장과 더불어 시민사회 의식이 성장하면서 민간인 학살 사건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들은 한국 정부가 제대로 사과하고 손 내밀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22일 시작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과’와 국가 차원에서 피해자에 대한 대책을 세워달라는 내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