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재연 장군기 ‘수자기’, 136년 만에 바다 건너 귀환하다
19세기 조선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1871년 발생한 신미양요는 조선을 굴복시키고자 했던 서양 열강의 대표적인 침략 사례다. 하지만 광성보 전투에서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목숨을 바쳐 결사 항전 했고, 끝내 미군의 침략을 저지했다.
하지만 미군은 철수하는 과정에서 어재연 장군이 사용하던 군기, ‘수자기’를 전리품으로 강탈했고,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미국 아나폴리스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있었다. 어재연 장군기, 일명 ‘수자기’는 삼베 또는 광목으로 추정되는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매우 희귀한 군사자료다.
‘수자기’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어재연 장군과 수많은 군인의 애국심과 희생을 상징한다. 따라서 ‘수자기’는 역사적 가치가 높아 국내에서 영구 반환을 추진했다. 하지만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측이 관련 법령과 절차상의 사유로 영구 반환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장기 대여의 형식으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2007년 어재연 장군기 ‘수자기’는 바다를 건너 136년 만에 한국으로 귀환했다.
136년 만에 귀환한 ‘수자기’,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갈 위기…
2007년 한미 양측이 서명한 ‘대여협정서’에 의하면 영구반환이 아닌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장 10년만 대여하기로 되어있다. 이같은 임대 형식 조건으로 반환된 이후, 수자기는 문화재청에서 2010년부터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이관돼 전시 중이다. 수자기가 이관된 후, 2012년 강화역사박물관 측은 미국 측과 상의해 기간을 연장했고, 2014년 갱신할 때 2020년까지 대여하는 것으로 다시 기간을 늘렸다.
강화도는 고려, 조선왕조의 유구한 1000년의 역사 속에서 이민족들의 침입을 피해 여러 왕이 머물렀던 임시수도였다. 강화도에는 강화역사박물관과 강화전쟁박물관이 있고 이 가운데 강화전쟁박물관에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전시되어있는 수자기는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다. 강화전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본래 문화재청으로부터 이관된 직후, 진품을 전시하였다. 하지만 이후 복제품으로 대체하여 전시한 이유는 직물로 제작된 ‘수자기’가 조명으로인해 변질될 우려가 있으므로 보존을 위한 조치”라며, “관람객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수자기 임대 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답했다.
2007년 대여 협상 당시 완전한 회수가 아닌 임대반환이 성사되었던 이유는 영구반환이 미국의 입장에서 극단적이고, 꺼릴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문화재보호법상 자국의 문화재를 외국에 양도할 수 없고, 다만 박물관 전시 등의 목적으로 임대만 가능한 것이 통상적이다. 따라서 ‘수자기’의 완전한 귀환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한국 입장에서는 우선 잠정적이고 단계적인 조치로써 임대반환 형식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복제품 전시는 협상을 통해 규정되어있던 임대 기간을 더 연장하고자 하는 또 다른 협상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수자기’는 우리의 것, ‘바리야크함 군기’도 우리의 것?
1904년, 인천 앞바다에서는 러일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일본해군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러시아는 바리야크 군함을 일본에 내주지 않기 위해 자폭을 했다. 바리야크함의 군기는 일본군이 승리 기념으로 인천박물관에 보관했고, 해방 이후 이 전리품을 두고 갔다. 그리고 이 군기는 현재까지 인천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러일전쟁 당시 비록 패배했지만 스스로 자폭하고 침몰한 바리야크 함대의 이야기는 전투에 참가한 러시아 군인들에 대한 존경심과 애국심을 상징한다.
1990년 한·러 국교 정상화 이후, 러시아 측은 바리야크함의 군기 반환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인천시는 이 군기를 임대형식으로 돌려주었고, 4년간 전시한 후 2014년 다시 러시아로부터 반환받았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바리야크함 군기’라는 하나의 문화재에 대해 러시아, 한국이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바리야크함 군기는 러시아에게 군인들의 애국심과 희생을 상징한다.
반면, 한국 입장에서 바리야크함 군기는 자국의 영해에서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치욕스러운 역사를 상징하며, 관람객들에게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부여한다. ‘바리야크함 군기’는 러시아 소유의 문화재가 아니다. 한국의 문화재보호법을 통해 한국이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는 문화재다. 또한, 전쟁의 아픔과 주권의 소중함을 상징하는 문화재이며 세계인 모두의 문화재다.
‘문화재’ 의미를 더 큰 그림으로 그려보자
현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국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들의 실태 파악과 회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공식적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외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들은 172,316점이다. 밀반출의 경로로 은밀히 빠져나간 문화재들까지 고려한다면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는 정도다. 이 많은 국외소재문화재들을 환수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완전한 환수다. 문화재는 각국의 문화재보호법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개인 혹은 민간단체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부와 관련 공공기관이 나서서 외교적인 수단과 해당국의 문화재보호법의 변화를 주시하며, 최대한 반환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러나 각국의 상이한 문화적 가치로 인해 반환을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수자기’는 한국 입장에선 중요한 문화재다. 한국은 ‘수자기’를 완전히 회수하기 위해서 미국 역시 어떠한 다른 이유로 ‘수자기’를 중시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의 회수 절차가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나아가야한다. 강화전쟁박물관 측의 ‘수자기 복제품 전시’는 그러한 과정 중 하나의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완전한 회수가 어렵거나 수많은 문화재를 회수하는 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그 문화재를 현지에서 활용하는 방법도 좋은 대안이다. 최대한 해당 국가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전시하도록 권유하고,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자국의 문화재가 자국의 박물관에서만 전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다양한 방법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안중근청년기자단 - 나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