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을 보면 유다지방 사람들이 예수를 없애려고 마음을 먹었다. 예수는 죽음의 위험을 느끼고 갈릴래아 지방에 머무셨다. 갈릴래아 지방에선 예수의 형제들과 만난다.
원문에서 보면, 형제들은 ‘당신의 사람들’로 표현한다. 고향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이 예수에게 요구한다. “당신의 명예를 높여라” “훌륭한 일도 하고 업적도 놀라운데, 기회를 잘 살려서 권력을 한번 잡아봐라”
그들은 예수에게 명예와 권력을 차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느님을 이용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다.
예수는 모든 것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른다. 아버지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당신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사람의 때와 하느님의 때는 다르다. 사람의 때는 자신의 이익을 찾을 기회를 엿보지만, 하느님의 때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뿐이다. 하느님의 때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을 내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이 길이 무엇인지 찾아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때는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느님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다른 사람도 자신의 뜻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삼는다. 이들은 기회주의자들이다. 예수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이들은 예수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이다. 예수가 도움이 안 되면 언제든지 떠날 사람들이다. 하느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느냐,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느냐에 달려있지 않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수의 고향사람들, 예수의 12제자들도 그분과 가까이에 있었지만 잘 믿지 않았다. 각자가 자기 생각대로 자기 이익을 앞세우고 예수를 추종한 것이다.
한국천주교회 안에도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많지만 이들이 과연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국민총인구 대비 신자수가 10%면 무엇하겠는가, 예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숫자가 아니라, 우리 현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데 혼신을 다하는 자들이 얼마인가를 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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