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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하나뿐인 지구’를 망쳐놓고 도망가는 ‘철없는 늙은이들’
  • 전순란
  • 등록 2018-07-23 1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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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2일 일요일, 맑음


날씨도 덥고 공소식구들이 각자 일이 바쁘거나 어디를 다니러 갔는지 주일 보는데 나온 사람이 몇 안 된다. 예전에 헤드빅수녀님 계셨을 때도 분명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모든 일의 주체가 수녀님이셨기에 걱정마저도 수녀님 몫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덜 나오고 와야 할 사람이 빠지면 서로가 눈치를 보고 서로를 챙긴다. 공동체로 자립하기엔 그래도 서로 힘을 모아야 하지만 그게 뜻대로 안 된다.



아침 일찍이지만 공소도 덥고 습하다. 다행히 지난주에 미사 드리러 오셨던 본당 사목회장님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본당신부님이 우리 공소에도 에어컨을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우리 공소에서 50만원쯤 더 보태서 냉온풍기를 놓기로 했다. 이젠 여름이 와도 더위를 걱정 안하고 겨울이 와도 기름온풍기의 냄새를 안 맞게 됐다.


텃밭에 호박과 오이가 많이 열려 나눠 주려고 공소에 들고 내려갔지만 누구도 가져가려고 하지 않아 도로 가져왔다. 채소는 클 때는 한꺼번에 크고 그 때가 지나면 한번에 사라지는데, 파종하는데 시간차를 둬야 알맞은 양을 거둘 수 있다. 우리 두 식구가 먹는 양이 얼마 안 되기에 얻어먹을 수도 있지만 내 땅 묵히며 남에게 얻어먹으면 욕도 함께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분도출판사에서 교부총서 제27권으로 아우구스티노의 『영혼불멸』이 출판되어 저자증정본이 택배로 도착했다. 그 책 상자를 선물하듯 남편에게 전달하며 ‘수고했다’고 치하를 하자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보스코. 아이 둘(빵기, 빵고)이 떠난 자리에 그는 홀로 남아 귀하고 어려운 책들을 잉태하고 그 책들에게 빛을 준다. 그가 펴낸 열 번째 아우구스티누스 저서다. 교부학회나 그리스도교에는 고맙고 기쁜 일이다.


우리는 엄청난 SNS의 홍수 속에 잠겨 살면서 겨우 몇 가닥 글을 골라 읽고선 지나치거나 그 글마저도 즉시 잊고 산다. 어쩌다 답글 몇 자 남기고 사라지는데, 우리 느티나무독서회가 다음 읽을 책으로 이런 댓글을 시로 적은 책을 골랐다는데 놀랐고 실망했다. 하지만 정작 그 책을 훑어보고는 허술함에 놀랐고, 글 속에 함축되어 있는 생생함에 다시 놀랐다. ‘정말 이 사람은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가진 시인이구나!’ 싶어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저자 제페토 [닉네임인데 페페, 주세페, 요셉이라는 성당 이름이다], 책 이름 『그 쇳물 쓰지 마라』)




희정씨 시아버님이 오늘 새벽에 타계하셨다는 부고에 광양으로 문상을 다녀왔다. 윤희씨 남편이 운전을 해 주셔서 우리 네 여자(공양주보살, 윤희씨, 차자씨 그리고 나)가 편히 다녀왔다. 가는 길에 섬진강 ‘제첩회무침’으로 점심을 하고, 아직 문상객이 뜸 한 시간이어서 여유 있게 상주와 이야기도 나눴다.


어제 아침에 외아들인 희정씨네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떠나셨다니 가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으리라. 87세로 이승을 하직하시면서도, 지병이 있으시면서도 심한 고통을 피하셨다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요즘 문상을 가면 거의가 천수를 누리고 가시기에 많이 슬퍼하지 않는 세태다. 우선 나부터도 97세의 엄마가 마지막까지 건강하시다가 고통 없이 떠나신다면 그다지 슬프지 않게 놓아드릴 것 같다.




6시 반. 아래층 진이엄마 ‘막달레나’ 영명축일이어서 우리 네 식구와 토마스2가 가까운 인월에 나가 짜장면 파티를 했다. 가난하지만 소박한 행복이다. 여름내 블루베리 농사로 지친 ‘끌벌부부’의 심신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기를.


밤에는 오랜만에 스카이프로 제네바 시아네 식구 얼굴을 보았다. 영국에 연수를 갔다 온 초딩 시아, 엄마 아빠를 그동안 독차지 했던 시우의 건강한 모습에서 하루하루의 더위를 잘 견디어 내고 있음이 보인다. 지구 북반구 전체가 폭염으로 들끓고 있다. 


아이는 크고 우리는 늙어 가는데 ‘철없는 늙은이들’이 지금 세상을 망쳐놓고 도망가버리겠다는 심보로 엄청나게 소비하고 ‘하나뿐인 지구’를 오염시키고 온난화를 초래하며 설치는 모습에 모두 장탄식하는 저녁이기도 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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