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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프란치스코 학교에서 잘 배우고 오셨구나…’
  • 전순란
  • 등록 2018-08-01 11:17:13
  • 수정 2018-08-01 11: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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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31일 화요일, 맑음 


해 뜨기 전 바구니를 들고 텃밭에 내려갔다. 붉게 익은 고추를 따고 보스코가 ‘고추무름’을 해달래서 풋고추도 한줌 땄다. 전년에는 노린재가 여린 가지들을 모조리 점령해 즙액을 빨아 먹어 8월을 못 넘기고 고춧대는 누렇게 생을 마감했다. 올해는 이 고추의 희생양으로 까마중을 이웃에 자라게 두었더니 노린재들은 그곳으로 달라붙어있고 고추는 성하다.



예전 ‘함양농업대학’ 다닐 때 선생님이 진딧물이 많은 잡초를 미워하지 말라고, 뽑지도 말라고 했었다. 우리가 힘써 키운 작물 대신 그것들이 진딧물에 먹히는 중이라기에 올해 그냥 놓아두었더니 까마중이 죄 많은 고추 대신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었다.


참외는 생각도 안 했는데 몇 개 달려 익어가는 중이고 가지는 오늘도 열 개도 넘어 미처 먹을 수도 없이 커간다. 호박 넝쿨이 너무 성해서 곁가지를 잘랐다. 호박잎으로 국도 끓이고 잎은 쪄서 쌈도 싸야겠다. 호박도 여기저기 매달려 갖가지 크기로 자라 오르니 올 여름 호박은 원 없이 먹겠다. 어쩌다 눈에 띄지 않고 놓친 호박은 늙어 겨울에 호박죽이 된다.




세상사를 말할 때는

겉만 보고 말하지 마라

홀로 꽃 피우고 맺힌

호박덩이일지라도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다.

(박철영, “늙은호박”)


점심을 하는데 어제보다 훨씬 견딜 만하다. 아랫집 ‘상주처녀’가 전번에 마을수도가 안 나온다고 내게 SOS를 친 후 연락이 없어 점심을 먹으러 올라오라고 불렀다. 그 날 중으로 모터를 고쳐 물은 나왔는데 마을사람들이 덥고 가문 날씨에 너무 물을 아끼지 않아 물탱크가 비고 모터는 과부화로 망가졌다더란다. 


우리 부부가 저녁 산보 중에 갑장네 수도꼭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을길을 진창으로 만들기에 주인장을 불러내 ‘마을사람들이 함께 쓰는 물인데 이리 허투루 허비하면 되느냐?’고 같잖게 잔소리를 한 기억도 있다. 바로 이튿날 모터가 망가졌으니 그 집 아낙이 가슴을 세 번 쳤을까,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휴천재는 따로 우물을 파서 마을관정과는 상관없이 물이 나오는데도 마을 사람들에게 물 허투루 쓴다고 잔소리하는 버릇은 서울 쌍문동 ‘만년 반장 전순란’의 완장 찬 심사라고 할 만하다. 그런 성질은 어쩌면 친정아버지의 피가 내게로, 내게서 작은아들 빵고신부에게로 이어졌음을 언뜻언뜻 드러낸다. 웬만한 공동체에서는 거의 막내인데도 빵고신부는 노인들이고 장상이고 안 가리고 못된 꼴 보아 넘기지 못하고 잔소리를 해댄단다. 보스코와 빵기는 우리 둘과 전혀 다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도미니카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에는 교회에 대한 애정이 과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런 열정이 사라졌노라는 그니의 한탄. 남녀가 연애할 때 무슨 페르몬인가에 씌워 심한 열병을 앓지만 세월이 가면 애정은 묵은 장처럼 속으로 곰사겨지는 법이라고 답해주었다. 물론 그니가 탄식하는 요점은 과도한 성직주의, 수도자들 엘리트주의일 게다. 내가 개신교에서 처음 왔을 때 유난히 눈에 거슬리던 행태다.


빵고네 ‘숨비소리’ 입구에 선 기념비


엊그제 제주 중앙성당에서 교황대사님의 방문과 미사에서도 꽃다발도 환영사도 없었던 점은 내게 모처럼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개인비서로서 겪은 ‘교황님의 이발’ 얘기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교황이 되고 숙소 마르타집에 이발사가 처음 출장 온 날. 머리를 깎고 뒷면도를 하고 가운을 털어낸 이발사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자 교황님이 얼른 빼앗아들더란다. “내 머리야 내가 못 깎고 뒤통수 면도도 내가 못해서 이용사님을 불렀지만 내 머리칼 청소쯤은 내가 할 줄 안다오.” 하시면서…


그분의 언행을 지켜본 비서로서 당신과 다르게 살아온 삶 하나에서 스승을 발견하고 “나도 저렇게 안 했다간 지옥가기 딱이구나!” 다짐했노라는 대사님 말씀에서 ‘프란체스코 학교’에서 잘 배우고 오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녀원에서의 식사 때마다 식탁의 설거지 그릇들을 나르시던 모습에서도…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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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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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subok212018-08-01 12:40:48

    보스코와 빵기는 우리 둘(나니와 빵고)과 전혀 다르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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