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막론하고 아동과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교회 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사건의 배경이 되는 ‘교회’의 특성을 분석한 것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성범죄와 범죄은폐를 막는 일에 미흡… 처벌도 약해
칠레 공영 방송을 통해 칠레 한 수녀회 출신의 전직 수녀 5명이 성직자들에게 당한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이 전직 수녀들은 소속 수도회 장상 수녀와 관할 교구 주교에게 알렸으나 이들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전직 수녀들의 폭로와 별도로, 해당 교구 주교 호라시오 발렌주엘라(Horacio Valenzuela) 주교는 칠레의 가장 큰 성직자 성범죄 스캔들 중 하나인 ‘카라디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카라디마 신부와의 관계 및 범죄 은폐 의혹으로 지난 6월 말 주교직에서 사임했다. 장상 수녀 파트리시아 이바라 고메즈(Patricia Ibarra Gómez)는 사건을 인지했을 때, 이를 신고한 수녀들을 괴롭히는 등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알려졌으나 이러한 대처에 대해 칠레 당국, 교회 차원의 어떤 조사도 받지 않은 상태다.
맥캐릭(Theodore McCarrick) 전 추기경이 연루되어 있는 아동 성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맥캐릭 전 추기경이 저지른 아동 성범죄의 경우, 교구 측에서 금전적 보상을 통해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범죄 행위가 특정되어 조정이 이루어졌음에도 맥캐릭 추기경은 최근 성폭행 논란이 다시 불거지기 전까지 명예대주교직과 추기경직을 유지해왔다.
1980년대 발생한 칠레 카라디마 사건 역시 카라디마 신부가 유죄를 받기까지 30년이 걸렸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여러 차례 관련 고발들이 칠레 교회에 제기되었으나, 2011년이 되어서야 카라디마 신부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나왔다. 결국 카라디마 신부를 비롯해 카라디마 신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주교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자유롭게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특히 카라디마 사건 피해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에라주리스 오사(Errazuriz Ossa) 추기경이 사건 처리에 깊게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교회 전반에서 이러한 성범죄가 벌어진 칠레의 경우는 위 사례 외에도, 전임 칠레 주교회의 사무국장 오스카 무뇨즈 톨레도(Óscar Muñoz Toledo) 신부가 2002년부터 7명의 아동에게 저지른 성범죄를 은폐했다는 의혹으로 칠레 사법 당국이 교회를 압수수색했으며 산티아고 대주교 리카르도 에자티(Riccardo Ezzati) 추기경에게 법원 출석을 명령한 바 있다.
성범죄와 범죄예방, 은폐방지에 미흡한 ‘침묵문화’
칠레 사례를 비롯해 이러한 범죄가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는 이유로, 권력 남용과 침묵 문화로 대변되는 교회의 폐쇄성을 들 수 있다.
카라디마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신학생 시절부터 카라디마 신부와 그 제자들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카라디마 신부는 이들이 교회 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이들을 이용해 이러한 직분에 주어진 권한을 남용했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침묵 문화 역시 이러한 사건이 밝혀지는데 큰 장애물이 되어왔다. 카라디마 사건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이러한 목소리가 알려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30년이 걸렸다. 마찬가지로 톨레도 신부의 아동 성범죄 역시 2002년부터 발생한 사건이 이제야 문제제기 되었다는 점은 교회가 약자, 즉 피해자의 목소리보다는 교회의 위신이나 평판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성범죄 예방과 미흡한 처벌 역시 큰 문제로 남아있다. 맥캐릭 추기경의 사례는 2002년 보스턴 대교구에서 버나드 로(Bernard Francis Law) 추기경의 성범죄 은폐 이후 미국 주교회의가 제정한 헌장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역시 2000년대 초반 아동 성범죄 사건이 드러나고 이에 대한 신고 의무 태만이나 은폐로 인해 사법적인 처벌을 받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주교회의 측에서 성직자 성범죄 퇴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아동 성범죄 전반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고 이에 대한 대처법을 권고하기는 하지만, 정작 가해자의 특성이나 이들의 징계 또는 처벌 등은 미미하게만 언급되어 있다.
실제로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무색하게, 2017년에는 프랑스 가톨릭교회가 성범죄를 저지른 32명의 성직자를 비호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은폐한 25명의 주교들을 취재하는 탐사 보도가 방영된 바 있으며 탐사에 참여한 기자들이 이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