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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예수 6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6-12 11:47:26
  • 수정 2015-08-20 12: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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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보시오,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11 오늘 여러분을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12 여러분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입니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15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16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루가 2,1-21)





이 단락이 루가 1,26-38 단락의 연속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성서학자 Bovon은 주장한다. 오늘 이야기에서는 루가 1,26-38에 언급된 동정탄생이나 성령 탄생의 기미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실제로 나자렛에서 탄생했다는데 성서학자 대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루가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방법의 하나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 이야기를 꾸며 이 자리에 넣은 것 같다.


예수 탄생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1절 ‘온 세상’oikoumene 단어는 지배자 이데올로기를 나타내는 어휘 중 하나였다. 루가에게 그 단어는 로마제국을 가리킨다. 루가가 아프리카나 남미 대륙을 알았을 리 없다. 로마황제 케사르Caesar는 온 세상의 수호자로 불렸다.


1절에서 칙령dogma 단어에는 의견, 명령, 가르침, 교리라는 다양한 뜻이 있다. 우리 시대에 dogma는 근거 없이 우기는 생각 정도로 폄하되어 쓰이기도 한다. 당시 인구조사는 군대, 경제 등에서 백성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강력한 통치수단의 하나였다.


거주자의 나이, 직업, 아내, 자녀수 등을 조사해서 군대의무와 주민세를 걷는 apogrape, 재산과 수입을 조사하는 apotimesis 두 종류의 인구조사가 있었다. 루가는 두 단어를 오늘 단락에서 섞어 썼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적어도 이집트에서 14년마다 주민세를 걷기 위해 인구조사 명령을 내렸다.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유다지방에서 인구조사는 공통년 6년, 즉 예수 탄생 10여년 후에 있었다.


우리 시대에 흔히 하는 설문조사, 여론조사 정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유다교 무장투쟁파인 열혈당파가 로마군대의 인구조사를 거부한데는 정치적 이유뿐 아니라 신학적 이유도 있었다. 인구조사는 이스라엘 임금도 인구조사는 할 수 없었고, 오직 하느님만 할 수 있었다.(민수기 1,26) 그러나 이 단락의 인구조사 이야기를 예수 추종자들이 열혈당파를 반대하는 뜻에서 루가가 썼을 것이라는 의견에 나는 찬성하기 어렵다.


3절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로마제국은 호적등록, 즉 인구조사를 본적지가 아닌 거주지에서 하도록 요구하였다.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헤로데 안티파스가 통치하던 지역에 속한 나자렛에서 살았다.


공통년(서기) 6-7년경에 실시되었던 유다에서 호적등록은 그들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요셉이 베들레헴이나 그 지역에 땅이 있었다는 근거 없는 추측을 따른다 해도, 만삭의 마리아가 여행에 동반할 이유는 없었다. 당시 독자들에게 약혼자 둘이 결혼 전에 여행을 하고, 더구나 약혼녀가 만삭의 임신부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4절에서 베들레헴을 다윗 고을이라고 부른 사실은 놀랍다. 공동성서(구약성서)에서 시온, 즉 예루살렘만 다윗의 도시라고 불렸기 때문이다.(사무엘하 5,7.9;) 베들레헴이 다윗의 고향이긴 했다.(사무엘상 16,1-13; 20,6) 미래의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되어 있다.(미가서5,1)


예수가 꼭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려면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만 베들레헴에 오면 되었다.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요셉이 마리아와 같이 올 수는 있겠다. 그런데, 마리아가 아니라 요셉이 다윗 가문에 속한다.


6절에서 루가는 왜 외아들monogenes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첫아들prototokos 단어를 썼을까. 첫아들prototokos 단어에서 마리아가 다른 자녀를 낳았다는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후대에 묘사된 것처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출산한 것으로 6절에 소개되었다. 성서 어디에도 예수 탄생처럼 한 아기의 출생이 그렇게 자세히 강조된 곳은 없다.


7절 구유(여물통)는 옮길 수 있었고, 집 안이나 밖에 있었다. 나무가 귀하고 비싼 이스라엘에서 나무 구유보다 쇠 구유가 흔했다. 신생아를 포대기에 싸는 모습은 당시 흔한 습관이었다.(에제키엘 16,4)


구유는 가난을 가리킨다기보다, 왕궁에서 미리 출산을 준비하는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권력과 대조되는, 출산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무기력을 상징한다.(사무엘상 16,7) 가짜 황제인 로마황제의 화려한 탄생과 진짜 임금인 예수의 초라한 탄생이 대조되어 있다. 예수 탄생 이야기에는 로마황제를 비판하는 강력한 정치적 동기가 담겨 있다. 그런 사실을 설교와 성서교육에서 우리는 제대로 들어왔는가.


7절 여관katalyma 우리 시대 숙박업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짐승이 쉬면서 밤을 지샐 수 있던 장소를 가리킨다. 당시 여행하는 유다인은 동료 유다인의 친절 덕분에 유다인 집에서 잘 수 있었다. 숙박업소를 가리키는 단어pandokeion가 있었다.(루가 10,34)


유다인들은 그리스문화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숙박업소를 알았던 것 같다. 신약성서 시대에, 즉 예수 시대 이후,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유다교 회당 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 8절에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 이 소개되고 있다.


루가는 왜 천사가 예수 탄생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하도록 했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예수가 메시아임을 강조하기 위해 루가는 다윗 전승을 이용했다는 의견이 가장 많다.(사무엘상 17,15; 시편 78,70-72)


양 떼와 목자는 그리스도교에서 평신도와 성직자를 가리키는데 너무 흔히 사용되는 비유다. 성직자가 자동적으로 착한 목자인 것은 아니다. 성직자중에 나쁜 목자가 수두룩하다. 양 떼를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착한 목자도 있고, 땅을 차지하기 위해 양 떼를 버리는 나쁜 목자도 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 양을 잠시 놓아두는 착한 목자도 있고, 99마리 잃은 양을 아예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한 마리 양과 어울리는 나쁜 목자도 있다. 착한 목자에게는 양 냄새가 나고, 나쁜 목자에게서는 늑대 냄새가 난다. 나쁜 성직자는 사기꾼보다 더 큰 피해를 세상에 끼친다.


11절에서 백성을 위하여 아기가 태어났다는 표현은 플루타르크Plutarch 영웅전에도 보인다. 11절에서 ‘주 그리스도’라는 이중 호칭은 평범한 표현이 아니다. 루가 시대에 예수를 주님kyrio 라고 흔히 불렀지만, 관사 없이 접속사 그리고kai 없이 kyrios와 kristos가 같이 쓰인 경우는 신약성서에 이곳 말고 없다. 루가는 예수를 구원자뿐 아니라 주권을 가진 분, 즉 로마황제를 능가하는 분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구원자는 하느님뿐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에게(요한 4,42; 사도행전 5,31; 필립비 3,20) 그리고 로마황제를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가 구원자라는 말은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내란죄에 해당하는 불온한 호칭이었다. 그런 뜻을 제대로 알려주는 목사 신부는 얼마나 될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까.


14절의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는 라틴어성서 불가타vulgata에서 bonae voluntatis Dei로 옳게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 라틴어 구절이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선의의 사람들’로 후대에 잘못 번역되고 그렇게 쓰여 왔다. 17절에서 목자들이 보고 싶었던 ‘일’은 히브리어 dabar는 말씀과 사건을 둘 다 가리키는 뜻에서의 일이다.(루가 1,37-)


신약성서에서 말씀이란 단어를 만날 때, 말씀 뿐 아니라 사건을 같이 생각하는 것이 좋다. 말씀과 역사를 떼어놓으려는 수작은 그만두어라. 역사 없이 말씀이 생길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교에서 사건과 관계없는 말씀은 없다.


20절 ‘듣고 본’(이사야 48,5; 사도행전 4,20) 모든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표현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은 역사 현실을 정직하게 듣고 보는 것이다. 보고 듣지 않으면, 보고 들은 것을 외면하면, 누구도 신앙에 다가 설 수 없다.


지난날 쓰여 진 성서를 공부하는 것도, 지난 시절 성인과 신학자를 읽는 것도, 현실을 정직하게 듣고 보는 것보다 우선하진 않는다. 보기, 판단하기, 행동의 세 순서가 지켜져야 한다. 성서나 교리를 배우기 전에 세상 역사와 교회 역사를 먼저 배우는 순서가 바람직하다.


예수의 탄생 장면을 루가가 자세히 소개하지 않은 것은 수수께끼다. 후대에 생긴 전설과 달리, 아기 예수가 탄생 장면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보통 출산의 경우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보도다. 동정 잉태, 출산 후 동정을 암시하는 구절은 없다. 공통년 2세기부터 마리아의 동정 잉태, 출산 후 동정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루가는 오늘 이야기에서 예수의 형제자매라는 주제가 아니라 예수와 하느님의 독특한 관계를 강조하고 싶었다. 루가의 의도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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