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 시민분향소에서는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생명평화미사가 봉헌되었다. 49재를 대신해 봉헌된 이날 미사에는 추운 날씨에도 100여명 가량의 시민들이 모여 고 김용균 씨 산업재해 사업장 진상조사, 정규직 전환과 처우 개선을 기도했다.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와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가 주관한 이날 미사에는 고 김용균 씨와 같은 사업장에서 일했던 동료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함께 자리해, 아들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에도 현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이로 인해 제대로 제사조차 지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알렸다.
이날 미사강론을 맡은 예수회 조현철 신부는, 고 김용균 씨 사태로 촉발된 비정규직 처우 개선 문제에 있어 정부의 미진함을 지적하며 이 사태의 중심에는 ‘사람’을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부품’으로 바라보는 ‘자본이라는 거대한 악’이 있다고 규탄했다.
2017년 봄,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몰아냄으로써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약자를 지배하고 통제하여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의 강고한 울림은 그대로 살아있다.
조현철 신부는 “2008부터 10년 동안 4개 화력발전소에서 총 69건의 산재사고가 발생했고 13명이 숨졌다”면서 태안에서만 58건이 발생했고 12명이 사망했음에도 모든 위험과 사고를 외주화 해버린 원청기업은, 무죄 사업장으로 인정을 받아 지난 5년간 산재보험료 22억 원을 감면받았다고 지적했다.
조현철 신부는 “그 어떤 이유로도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법이나 관습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 해방의 하느님이시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예수님의 확고한 입장이다”라고 단언했다.
이날 미사 중에는 함께 자리한 이들과 김용균 씨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작은 추모행사가 열렸다. < 가톨릭일꾼 > 한상봉 편집인의 추모시와 송희태 음악인의 헌정곡 ‘소중한 사람들’ 공연이 이어졌다.
그런데 세상은 저를 두고 ‘비정규직’이라 하더군요.
세상은 저희를 두고 ‘하청 노동자’라 하더군요.
...
석탄가루에 눈 멀고
고된 노동에 다리가 풀려도
살아남기 위해 살았어요.
죽지 못해 산 게 아니라
살고 싶은데 죽었어요.
...
어머니, 하고 발음만 해도
가슴이 이내 따뜻해지는 어머니,
저는 비정규직 어머니의
비정규직 아들입니다.
- 추모시 「유서조차 남기지 못한 용균이가 어머니에게」중에서
「유서조차 남기지 못한 용균이가 어머니에게」라는 제목의 시는 고 김용균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상심에 빠졌을 어머니에 대한 위로와 위험의 외주화 등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을 슬퍼하는 내용을 담았다.
어머니 김미숙 씨는 미사 중에 성체를 받아 모신 젊은이들을 보며 “방금 앞에서 용균이랑 비슷한 젊은이들이 무엇을 드시는 모습을 보는데 예쁘게 보였다. 우리 아들도 예쁘게 먹었는데… 생각하니 아들이 또 보고 싶어진다”고 흐느꼈다.
서민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여기 계신 여러분들께서도 저와 함께 해주시기를 바란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서부발전을 비롯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서민들을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하며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이 형태를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면서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맞서 싸워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서울대교구 신자는 “원래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에 용균 씨 문제를 보면서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사람이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에 분노했고, 남의 일이 아니라 형제의 문제고, 내 이웃의 문제고, 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미사에 참례했다”고 강조했다.
몇 십 년 전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계셨듯, 지금은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님이 있다.
한편, 광화문 광장에 차려진 김용균 씨 추모 천막에는 28일 기준으로 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식농성 중인 청년전태일 대표 김재근 씨는 “미사를 하면서 어머니를 살리는 게 생명이고, 고인의 동료를 살리는 게 평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수녀님들께서도 얘기하셨듯이, 몇 십 년 전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계셨듯, 지금은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님이 있다”면서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이 슬픔을 딛고 마음을 먹으셨으니, 모든 사람들이 응답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을 위해 단식을 하고 있는지 묻자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에 대한 명확한 정부안, 발전사(서부발전)의 직고용 등에 대한 원칙이 나오기를 바란다”며 “이 문제들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원칙이 나와야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대표는 “관료들이 사람들의 고통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며 정부의 행동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