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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청년들이 ‘왜’라고 물었다 - <가톨릭프레스> 신입기자의 ‘교회 청년 정체성’ 탐색기 - ‘청년이 묻고 청년이 답한다’ 피정에 다녀와서
  • 강재선
  • jseon@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2-12 16:11:04
  • 수정 2019-02-15 16: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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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피정`에 함께 한 청년들 ⓒ 강재선


< 가톨릭프레스 > 입사 6개월 차 신입기자인 나는 일명, 모태신앙으로 유아방에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한 때 교회오빠’다. 일반적인 본당에서 청년부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 그렇다. 나는 ‘빼박’ 교회청년이다. 


긴 설 연휴의 끝자락인 지난 9일, 성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에서는 ‘청년이 묻고 청년이 답한다’는 주제로 1박2일 피정이 열렸다. ‘청년’이라는 키워드가 반가웠고, 데스크에서 더 없이 좋아할 주제라 망설임 없이 피정에 참가신청을 했다. 


나는 피정 참가자인 ‘청년’이면서 그렇게 참가한 다른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는 ‘기자’로서 1박 2일간 짧지만 강렬하게 ‘교회 청년 정체성’을 탐색했다. 

  

한국가톨릭 청년평신도들이 주축이 된 독서모임 CRF(Catholic Reading Forum)가 기획한 이번 피정에는 부산교구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가톨릭 청년 보고서’를 만든 ‘사교뭉치’ 멤버들을 비롯해 교회와 신앙에 대한 고민을 품은 청년들이 모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은 꼬박 하루를 같이 지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이번 피정에서는 특별히 제15차 세계주교대위원회(이하 주교시노드) 최종문건에서 지적된 보편교회의 문제들을 한국천주교회 상황 속에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 ⓒ 강재선


피정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이, 이력, 직업 등의 자기소개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피정 첫날 조별로 모인 젊은이들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좋아하는 맛집’ 등과 같은 가벼운 질문들을 통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만남의 첫 번째 단계인 대화를 시작했다. 


“교회는 언제부터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역할을 못하게 됐을까?”


피정을 기획한 CRF의 이원길(요한 보스코) 씨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한국 천주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다고 고백했다. 본당 청년회 역시 사회와 동떨어진 활동만을 추구하며 사회와 교감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 수첩에, 세월호 여론을 조작하는 소위 ‘모범적 예시’로 추기경의 이름이 등장하고, 온갖 시위와 스피커 소리로 가득했던 명동성당이 말끔하게 ‘예뻐진’ 모습을 보며 “약자를 품어주는 사회적 보루가 되어야 할 교회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원길 씨는 “생각의 무능이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는 말처럼 교회가 사회와 교감하지 못함에도 교회와 그곳의 젊은이들에게 “‘왜’라는 물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자신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독서모임, 대안학교 설립 등의 활동을 해왔다며 “깨어 살며 현존하며 왜라는 질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청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피정 참여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원길 씨는 CRF가 교권을 떠나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다양한 주제의 도서를 가지고 모임을 해왔다고 소개했다. 같은 문제의식과 목적을 가졌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은 젊은이들을 ‘초대‧연대’하고,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는 모든 가톨릭 청년들을 ‘격려‧지지’하며 비판과 더불어 현장 속에서 직접 답을 찾는 ‘활동·촉구’의 가치를 토대로 이번 피정이 기획되었다고 밝혔다. 


‘청년, 누가 청년인가? - 청년다움의 핵심이 무엇일까’


CRF 박진균(안드레아, 의정부교구 정평위 사무국장) 씨는 다양한 청년의 정의를 다루며 과연 청년의 정의가 연령대와 혼인 여부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특히, 나이로 구분되는 ‘청년’이라는 개념이 UN 기준(19-65세)부터 통계청(15-29세),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19-39세), 청소년법(9-24세), 정당(19-45세)에 이르기까지 매우 상이하다면서 ‘청년다움’의 핵심은 나이가 아니라 ‘새로움, 신문명의 건설, 기성세대 가치관으로부터의 단절’이라고 되짚었다.


▲ 열띤 논의가 이어지는 현장 ⓒ 강재선


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조를 나누어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속한 조에는 대부분 현재 미사를 제외한 본당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들이 모였다. 서울대교구 청년성서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참가자는 30대가 넘어가면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청년회 활동 자체가 꺼려진다고 고백했다. 


< 가톨릭프레스 > 안내 기사를 보고 피정에 참가왔다는 한 참가자는 청년 수가 일정 이상 되어야 연령대별 구분이 될 수 있는데 절대적인 수가 적은 상황에서 연령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많지도 않은 청년들을 그 안에서 또 나이로 구분하면 배제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는 지적이었다. 여하튼 결론은 ‘본당에서 청년들이 점차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본당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일까? 의견을 모아보니 대체로 교회에서 하는 전례봉사, 교리교사, 청년회 등의 단체 활동이 봉사가 아니라 자신을 소진시키는 ‘일’로 다가온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CRF 페이스북을 통해 피정에 왔다는 참가자는, 직장생활의 피로로 인해 주말에는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크고, 본당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 청년 레지오, 성서공부 등을 해본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사회생활이 힘들어 교회를 찾는데 교회가 청년들을 잘 위로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청년들을 위한 영성생활 가이드를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청년회 제안’, 청년들은 기도와 전례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 ⓒ 강재선


이어진 토론에서 CRF 이원길 씨는 이전과 달라진 현재 상황 속에서 과거 청년 사목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과연 청년들을 교회로 모이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졌다. 


청년의 절대적 수가 적은 경우 청년에게 전례와 복사 등이 부담이 되는 만큼 이를 강요하지 말 것과 기도모임 외에도 다양한 관심사를 중심으로 구성원 수에 구애받지 않으며, 조직과 해체가 용이한 ‘셀 단위 모임’을 본당, 교구에서 지원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뿐만 아니라 소위 ‘청년에서 배제된 이’에 해당하는 ‘끼인 세대’를 ‘멘토 청년’으로 연대해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은 이들이 자신보다 어린 청년들과 동행 해주는 구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에 피정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털어놨다. 청년 사목의 구조적인 문제는 오히려 부가적인 것이라며 강론이나 사회적 활동에서 드러나듯 “성직자들이 사회에 대해 너무 무지하기에 청년들이 교회에 찾아오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이에 누군가는 또 “사회적 지위의 안정성 때문에 성직자는 현실 인식 정도가 떨어지는 것”이라면서 이런 상태에서 성직자들이 신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안정성을 가지지 못한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더불어 청년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교회 활동을 조직하고 실현할 수 있는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가톨릭교회는 여성을 차별하고 있는가?


CRF 측에서는 ‘한국 여성의 현실 – 가톨릭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현실 속 이야기들로 쉽게 풀어내며, 교회 안에서 여성들은 과연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인권을 보장받고 있는가를 질문했다.


한 여성 참가자는 동화 『돼지책』과 『82년생 김지영』에서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이 한국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짚으며, 자신 역시 사회생활 중에 성별을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은 개인의 체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성평등을 이루는데 108년이 걸린다고 분석한 세계경제포럼(WEF)의 ‘2018 성별격차지수’에서 볼 수 있듯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성모 마리아로 대변되는 착한 여성상, 자모회와 같은 ‘가사노동’이나 꽃꽂이와 같은 전례회 활동으로 한정되어 있는 여성 역할을 이야기하며 가톨릭교회 내에서 여성주의를 통해 인권 신장을 추구할 수 있는지, 그리고 보편적으로 여성의 역할 확대와 지위 향상을 위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피정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했다. 지역사회복지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한 남성 참가자는 교회에서 여성들에게 가사노동, 꽃꽂이와 같은 소위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들만 주어지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문제라기보다는 과거 가톨릭교회가 한국 사회에 정착하면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 강재선


그는 “교회가 여성을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그러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며 대부분이 직장을 갖게 되고,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는 청년 세대에서는 “인식이 바뀌고 있으며, (교회도)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지만 교회가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부산교구 ‘사교뭉치’ 소속의 참가자는 부산 사상본당에 여성 사목회장이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여성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변화하고 있다는데 동의했다. 


낙태와 성매매에 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개인적으로 낙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도 “낙태는 남성과 여성 공동의 문제로 남성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낙태는 자발적 의지에 따른 선택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낙태라는 선택을 내릴 때 “개인이 하나의 우주를 이루는데 누군가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하며 성행위 자체를 출산을 위한 행위로 바라볼 정도로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교회의 교리가 때로는 현실과 맞닿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현실적인 지적도 이어졌다. 


한편, 대전에서 온 참가자는 “태아가 가장 약자”이며 “아이는 엄마가 낳아주지 않으면 태어나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를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선택을 하면 이는 보편적 기준이 흔들리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공유했다. 


여성 역할에 대한 논의는 본당사제와 수녀 사이의 위계에 대한 문제인식으로 이어졌다. 한 참가자가 자신이 보기에 역할 분배나 이미지에 있어 사제와 수녀의 관계는 마치 한 쪽이 높고 다른 한 쪽이 낮은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하자, 또 다른 참가자는 가톨릭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를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옛날에는 시골 공소에 가면 미사 후 신부와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 때 신부가 밥을 남기기라도 하면 그 밥을 신자들끼리 다 나눠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며 그 정도로 한국 천주교에는 과거 사제의 권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들의 신앙, 한국 천주교는 대체 어떤 입장인가?

 

이전수(라파엘) 서울대교구 청년시민학교 대표는 ‘성소수자들의 신앙’이라는 주제로 질문을 던졌다. 특히 생물학적 성 외에도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을 강조하며 “생물학적 구분이 포괄성을 갖지 못 한다”고 지적했다.


이전수 대표는 특정 성 정체성이 유전적 특성 또는 질병과 관련이 있음을 객관적, 과학적으로 입증한 연구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며 “성적 지향(신앙교리성, 「동성애자 사목에 관하여 가톨릭교회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1986)만으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문제를 단순화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정확히 밝힌 시노드 최종문헌 제150항 역시 이러한 흐름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대표는 성공회 민김종훈 자캐오 신부, 개신교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의 예시를 들어가며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에서는 성소수자들을 약자로 인식하고 이들을 보호, 연대하는 반면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되물었다.


내가 속한 조에서는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지의 영역이자 민감한 주제이니 모두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한 참가자는 우리 사회나 가톨릭교회가 성소수자들을 혹여 소록도에 ‘감금된’ 한센병 환자들과 같이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성소수자들은 지금까지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자아를 찾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라면서 한국 천주교회 역시 “소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명확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데 모여 이야기 하니 위안이 되었어요”


▲ ⓒ 강재선


참가자들은 피정을 마무리하면서, 청년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니 위안이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한 남성 참가자는 “이런 자리 자체가 흔치 않았다”며 “이런 정보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더욱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추후 이와 같은 자리가 또 생긴다면 개별 주제에 관한 심층토론을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반면 대구에서 온 참가자는, 피정 참석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교회 관련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조직 내에 있다 보면 밖의 소리에 둔감”해진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모임, 피정 등이 더욱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청년’이면서 ‘기자’로서 나는 피정에 참석하는 내내 알쏭달쏭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교권, 교리, 순명과 같은 단어들에 얽매인 상태에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닐까. 규율을 사람보다 우선시 했던 성경 속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겨우 한 사람을 개종시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개종시킨 다음에는 그 사람을 너희보다 갑절이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고 있다.” (마태 23, 15)


이제 교회는, 청년들을 ‘더욱 신실한’ 천주교 신자로 만드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직접 찾아가 묻고 그 짐을 덜어 함께 지고 동행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할 때라고 교회청년들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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