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그동안 성직자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피해자와 모든 구성원에게 범죄사실과 사건처리 과정, 그리고 결과 등에 대해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전 세계 주교 의장단 회의 셋째 날에는 교회 안에서 발생한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 ‘투명성(Transparency)’이 결여되어 있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것은 교회의 사명
나이지리아 출신의 ‘성스러운아기예수회(Society of the Holy Child Jesus)’ 장상 베로니카 오피니보(Veronica Openibo) 수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로서 투명성은 사명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피니보 수녀는 특히 2002년 미국 보스턴 대교구 성직자 성범죄와 그 은폐를 주제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언급하며 “어떻게 성직자 중심의 교회가 저런 끔찍한 일들을 은폐한 채 침묵할 수 있었는가 자문했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십계명을 선포하면서도 사회의 도덕 기준과 가치를 지키는 관리인 ‘행세’를 해왔기 때문
오피니보 수녀는 미대륙이나 서유럽에서만 성직자 성범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지금까지도 (성범죄 가해) 성직자에 대한 일반적인 절차가 ‘동료’를 도와주고, 추문을 감추어 교회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일을 피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피니보 수녀는 성직자 성범죄 문제해결의 핵심인 ‘투명성’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성직자 성범죄 해결 조치 총망라한 보고서 ▲아동보호 정책과 가이드라인 각 본당 배치 및 인터넷에 공개 ▲가해 성직자 이름과 관련 범죄 정보 공개 등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어린 신학생들이 마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듯이 대우를 받아 양성 과정에서부터 자신들의 직위에 대한 과장된 생각을 하게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이 된다.
마찬가지로 “어린 여성 수도자들의 양성 역시 종종 평신도 형제자매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더불어 “책임 있고 예리한 평신도와 여성수도자들에게 주교 임명 후보자들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겨야 해
독일 주교회의 의장 라인하르트 마르크스(Reinhard Marx) 추기경은 “투명성이란 행동, 결정, 과정, 절차 등이 이해 가능한 것이며 그 출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라며 “기록과 투명성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교회의 모든 행동은 성(聖)과 속(俗)을 나누어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며 “교회의 세속적 측면과 세속의 법을 무시하는 것은 교회의 현실을 올바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지체와 교회의 조직을 (사회 조직과) ‘나누어’ 바라보아서도 안 되고, 하나로 묶어서 보아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성직자 성범죄를 포함한 각종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되는 투명성은, 기록을 남김으로써 사태를 객관화하고 이를 분류하여 규격화시키는 행정과 같은 말이라고 설명했다.
성직자 성범죄 문제에 있어 (교회) 행정은 교회 사명을 완수하는데 기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이를 모호하게 만들고, 신뢰를 추락시켜 아예 완수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특히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 추기경은 “끔찍한 행동과 그에 책임 있는 이들의 이름이 담긴 문서들은 파쇄 되거나 아예 만들어지지도 않았다”며 가톨릭교회가 조직적으로 성직자 성범죄 문제와 관련된 기록을 조작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들 대신 피해자들이 규제를 받고 침묵을 강요받았다. 범죄 사실 기소를 위한 절차와 과정은 고의적으로 준수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피해자들의 권리는 실제로 땅바닥에 짓밟히고 개인(주교들)의 기분에 맡겨져 버렸다”고 비판했다.
기존 교회 행정의 구조와 방식은 인류 전체의 단결에 기여하지도, 인류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돕지도 않았고, 그 목적을 저버렸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투명성 확보에 있어 “누가 무엇을, 언제, 왜, 어떤 목적으로 저질렀는지, 그리고 어떤 결정이 내려졌으며, 거부되었고, (어떤 업무가) 배정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출처를 알 수 있어야한다”고 설명했다.
고발당한 성직자가 무죄일 경우를 대비해 교황비밀(Pontifical Secrecy)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두고 “아동성범죄 관련한 형사 범죄 소추에 어째서 교황 비밀이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댈 수 있어야만 유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런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무죄추정의 원칙과 개인의 권리 보호 그리고 투명성의 요구는 상호 배제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성직자 성범죄로 인해 잃어버린 교회의 투명성 재고를 위한 방안으로 ▲교황비밀 목적 및 적용범위 규정 ▲교회 내 사건처리 규범과 규칙 마련 ▲성직자 성범죄 사건 수, 사건 상세정보 공개 ▲성직자 성범죄 관련 교회법 판결 공개 등을 제안했다.
멕시코 기자, “기자는 주교들에게 최악의 적이 될 것”
멕시코 TV채널
알라즈라키는 “주교님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은폐한 이들에 대항한다면 주교님들은 우리 기자들과 같은 편이지만 만약 명확히 아동·어머니·사회의 편에 서겠다고 결정하지 않는다면, 주교님들은 우리 기자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며, 우리들은 여러분의 최악의 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떤 경우에도 대중매체가 성범죄를 들춰내고 보도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언론이 성직자 성범죄를 과장하여 이를 추문으로 비화시켰다는 비난에 대해 “성직자 성범죄는 루머나 가십거리가 아니라 범죄”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기자들 역시 성범죄가 가톨릭교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란 것을 알지만 주교님들은 여러분의 도덕적 역할에 따라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알라즈라키 기자는 성직자 성범죄 문제해결에 있어 투명성을 갖춰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소통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주교님들은 성범죄자들과 공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투명성의 결여란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공격이기에 신자들은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며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이들은 의혹을 조장하고 교회 기관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교회가 사후적인 방식이 아니라 선제적 방식으로 가장 먼저 정보를 제공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더욱 건전하고, 긍정적이며, 이로울 것
알라즈라키 기자는 특히 성직자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에서 사건을 발굴하여 드러낼 때 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공개해야 한다면서 “주교님들은 언론의 조사를 통해 사건이 드러났을 때, 언론의 정당한 질문에 대답하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건을 인지했을 때 바로 신고하라”고 제안하며 “즐거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더 이상 은폐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 주교님들의 말을 믿길 바란다면,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알라즈라키는 비밀 유지 원칙은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에게 있어 안전망과 같다”면서 성직자에 대한 고발을 선제적으로 조사하고 사건 해결을 위해 민간 당국과 최대한 협조할 것을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알라즈라키는 아동이나 약자를 상대로 한 성직자 성범죄 뿐만 아니라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교황청 기관지 < L'Osservatore romano >에도 기고된 수녀를 상대로 한 성직자 성범죄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가해자들에게) 방어적 태도를 취할 것이 아니라 공격적 태도를 취해 교회가 선제적인 태도를 취하고 이러한 성범죄를 고발하는데 앞장설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