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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운 말을 하는 살아있는 종교와 언론을 기대하며
  • 이기우
  • 등록 2019-03-28 17: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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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목요일 : 예레 7,23-28; 루카 11,14-23



오늘 독서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어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로 계약을 맺으셨는데, 변함없이 이스라엘을 이끌어주신 하느님과 달리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으로서의 본분을 자주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여러 예언자들을 보내서 하느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셨는데도 이스라엘은 회개하기는커녕 그 예언자들마저 박해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가 활약하던 시절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활약하시던 시절까지도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악령에 들린 부마자들의 존재는 그가 속한 집단이 악령의 손아귀에 들어갔음을 나타내주는 징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벙어리 마귀가 들린 사람을 만나신 예수님께서 그가 말을 할 수 있게 고쳐주셨습니다. 이 구마 기적 사건은 예수님께서 새로이 하느님의 백성을 모으시는 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마음이 완고해진 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반성하지는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헐뜯었습니다. 그분이 마귀 들린 이를 고쳐주시는 이유나, 그 구마 기적을 일으키시는 의미를 생각하지는 않고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하기에 급급해서 예수님이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중상모략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레미야 예언자로부터 질타를 받게 되었던 까닭은 우선 조상들로부터 전해 받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고 알아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해서 자초한 공동선 파괴 현상에 대해서 바른 소리를 하는 예언자들의 경고에도 목을 뻣뻣이 세우고 고약하게 굴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공동체는 파괴되고 말았고 하느님과의 관계도 끊어질 지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용어로 풀이하자면 수직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인 종교의 기능과 수평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인 언론의 기능이 다 함께 망가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추어 작금의 한국 사회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종교와 언론 모두 다원화된 상태에서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바른 종교와 사이비 종교가 뒤섞여 사람들을 종교시장의 소비자로 만들면서 선택을 기다리는 상품 생산자 내지 공급자를 자처하고 있는가 하면, 바른 언론과 사이비 언론 또한 겉으로는 공정보도를 한다고 내세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사실을 각색하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합니다. 


언론시장도 종교시장 못지않게 어지럽습니다. 이에 따라서 종교의 전통적 권위는 사라지고 있으며 언론도 유튜브나 SNS 같은 다양한 미디어가 출현하면서 종이신문과 지상파의 권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1인 미디어가 유행하듯이 종교 영역에서도 저마다 각자의 종교적 신념이 소속된 종파 내지 교파의 신앙고백보다 더 우선시되는 상황입니다. 주일미사 참석율이 20% 정도로 떨어졌다는 냉담자 통계도 종교가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보고 세상에 대하여 올바로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현상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종교와 언론의 개인주의화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두드러지게 지속될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가 각성된 개인들의 힘에 의해 성숙할 수 있다는 전망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추세는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어 말을 못 하던 이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과 개념이 담겨 있고 서로 공감하는 진실의 말을 하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더욱 하느님 백성다운 교회가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말 못 하게 하는 벙어리 마귀에 들려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어주시고 사람들이 말다운 말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식별하여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전하는 종교가 살아남고, 사람들 사이에 공정한 여론의 장이 되어주는 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와 가톨릭 신앙인들이 벙어리 신세에서 벗어나 올바른 말을 하게 됨으로써 살아있는 종교와 언론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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