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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헌장이라 부르는 최초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를 기억하며
  • 이기우
  • 등록 2019-05-01 1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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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 : 창세 1,26-2,3; 마태 13,54-58



전례력으로는 부활 시기가 지속되는 5월을 한국 천주교회는 성모 성월로 지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봄꽃들이 화창하게 피어나는 5월은 부활의 기쁨을 표현하는 듯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 현대사의 5월은 1961년의 군사정변,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 등 피로 물든 비극적 역사가 젊은이들의 피와 어머니들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 슬픈 계절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슬픔이 부활의 기쁨으로 승화되듯이, 지나간 우리 역사의 슬픔이 다가올 민족의 미래에서는 기쁨으로 승화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5월을 시작합니다. 


교회가 5월의 첫 날인 오늘을 ‘노동자 성 요셉’의 날로 선포한 때는 비오 12세가 교황직에 있던 1955년이었습니다. 그 계기는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이 날을 노동자의 날, 노동절로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하루 노동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하자는 목표로 노동자들이 움직였습니다. 


먼저 1884년 5월 1일에 방직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쟁의를 시작했고, 각 노조가 이에 호응하여 총파업을 단행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자 2년 후인 1886년 5월 1일에 시카고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연합회’를 중심으로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요구하는 총파업이 재개되었습니다. 8만 여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미시건 거리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는데 경찰과 군대의 발포로 유혈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어린 소녀를 포함해 6명의 노동자가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에 항의하여 그 다음 날 30만 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 운집하여 평화 집회를 열었는데, 뉴욕의 자본가들이 사주한 테러범이 폭탄을 터뜨리자 이를 노동자들의 테러로 몰아서 집회를 주동했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폭동죄로 현장에서 체포되고 장기형이나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7년 후에 이들은 모두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의 자본가들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넣은 치아를 자랑질하고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울 만큼 넘쳐나는 부를 누리고 있었던 반면,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주급 7달러에서 8달러의 임금을 받으며 월 10달러에서 15달러짜리 판자집 방세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옥 같은 노동 현실을 개선하고자 떨쳐 일어났던 시카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경찰과 군대의 국가폭력으로 진압되어 묻히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인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가 조직되었고, 각국 노동자 대표들은 이 날을 노동절로 선포하는 제1회 대회를 치렀습니다. 


가톨릭교회가 8시간 노동제를 비롯한 노동자의 기본 인권의 존엄성에 눈을 뜨고 최초의 사회회칙인 노동헌장이라고도 부르는 『새로운 사태』 회칙을 반포한 것이 1891년입니다.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반포된 이 회칙을 기점으로 역대 교황들은 노동자의 문제를 포함한 사회 문제 안에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려는 노력을 계승했고, 그 40년 후에 비오 11세 교황이 『사십주년』 회칙을, 그리고 65년 후에 비오 12세 교황이 노동절의 의미를 교회 전례력에 반영하는 뜻으로 노동자의 주보로 요셉 성인을 선정하고 5월 1일에 그 기념일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오늘 미사의 독서인 창세기 말씀을, 하느님께서도 엿새 동안 창조의 노동을 하셨다고 해석한 인물은 1981년에 『노동하는 인간』 회칙을 반포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입니다. 그 교황은 목수였던 요셉의 뒤를 이어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이전에는 목수의 노동을 하셨다고 보았고, 공생활 동안 수행하신 복음 선포 활동도 또 다른 노동이라고 간주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성에 두었던 플라톤 이래의 서구지성사를 2천 년 만에 뒤집고, 노동이야말로 인간 존엄성의 근거라는 해석이 교회 교도권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난 부활대축일의 복음을 해설하는 강론을 통해서 저는 카리스마와 권위, 공동체와 제도의 긴장과 조화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노동자의 기본 인권이 위협받고 있음을 알리는 현장의 외침은 카리스마적인 것이고, 뒤늦게나마 이를 전례라는 제도에 수용한 교회의 권위는 다행스럽긴 합니다만 늦어도 너무 늦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장의 외침을 알아듣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카리스마적 공동체가 없거나 너무 적어서 교도권 제도가 움직이는 데 너무 느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현장의 카리스마와 시대의 징표를 때에 맞추어 읽고 식별하며 공동선의 노력으로 응답하는 노력, 이것이야말로 각 시대와 각 나라의 교회가 주님이신 예수님을 추종하는 실력입니다. 


교회나 개별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추종할 수 있는 실력이 출중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없거나 깨달음이 굼뜨다고 야단맞는 제자나 사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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