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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와 증언의 좌표 설정
  • 이기우
  • 등록 2019-05-17 11: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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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금요일 : 사도 13,26-33; 요한 14,1-6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 ‘기억력’과 ‘상상력’


우주를 조성하시고 그 안에 지구라는 별에서 생명체가 출현하도록 이끄신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생명체가 진화되는 동안에 그 마지막 정점에서 인간을 탄생시키셨습니다. 생명체가 물질과 공통적인 점은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이지만, 물질과 달리 생명체는 스스로 성장한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율적으로 성장하는 생명체들 안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이 지성이며 특히 기억력과 상상력입니다. 과거의 기억들과 미래의 상상을 일반화시키고 추상화시키는 지성적 작업을 통해서 인간은 문명을 이룩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물질을 개발하거나 가공해서 인간의 생존을 더 안전하고 더 편리하게 만드는 한편,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조직화해서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역사의 진보를 성취하였을 뿐입니다.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능력은 물질과 동료와의 관계에만 국한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알아보도록, 그리하여 창조주의 뜻을 실현함으로써 더 큰 행복을 누리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력과 상상력이 아무리 높고 넓고 깊게 발현되어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창조주 하느님을 알거나 그분의 뜻을 실현하는 데 피조물로서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몸소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


그래서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를 강생의 신비라 합니다. 강생의 신비의 열매는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여주시고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이 되어 주시고 진리를 계시해 주셨으며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셨다는 데 있습니다. 이 열매를 계시라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셔서 직접 밝혀주신 이 계시는 인간의 기억력과 상상력이 아주 높이 고양된 도덕성의 결과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그 예를 부처님과 공자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와 유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성현은 인간으로서 대단히 훌륭하시고 고매한 인격을 갖추신 분들이기는 하지만, 하느님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에 성현들의 가르침에 따라 노력하면 인간을 도덕적으로 수양시키는 데에는 장점을 발휘하지만, 하느님을 알게 해 주거나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이끌어주지는 못합니다.


오늘 독서에 보면, 인류 역사의 한가운데에 들어오셔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앞장서서 몸소 걸으시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리를 알려주셨으며, 인간이 물질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받아야 할 에너지로서의 생명 기운을 불어 넣어주신 예수님의 생애에 대하여 사도 바오로가 증언하였습니다.


바르나바와 함께 소아시아 지방으로 간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바오로는 내륙의 한복판인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있는 유다인 회당으로 가서 담대하게 설교하면서 예수님에 관해 증언하였습니다. 세상에 오신 하느님께서 유다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셨는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 자신은 이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와 있다는 것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하느님께 관한 증언이요, 그 하느님의 자리로 원대복귀하신 예수님께 관한 증언입니다. 


계시와 증언, 그 증언의 진실성을 회복하여


계시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밝혀주시는 하느님의 진리이고, 증언은 이 계시 진리가 역사 안에 나타났음을 확인해주는 인간의 진실입니다. 계시에 입각한 증언으로 신앙이 퍼져나가고 교회가 성장하고 확산합니다. 이 증언의 진실성이 훼손당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드시는 역사의 회초리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가톨릭교회에 대한 회초리일 수 있는 근거는 증언을 계시에 입각해서 진술하게 해 주시는 성령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고 초대 교회를 박해하던 로마 제국의 권력이 가톨릭교회를 국교화 했을 때, 제국화된 가톨릭교회가 섬김의 자세와 윤리를 잊어버리게 한 역사의 단초였습니다. 그래서 수위권 다툼으로 서로 파문하고 분열한 결과로 갈라진 동방 교회,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후유증으로 추락된 교황의 권위를 드높이자고 베드로 대성전을 건축하다가 부패의 늪에 빠져버리자 이에 항의하는 개혁가들을 파문함으로써 갈라져나간 개신교 그리스도인들, 산업혁명 당시 노동의 존엄성을 옹호하려던 노동자들과 시민혁명 당시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려던 시민들 모두 성령께서 가톨릭교회가 진술하는 부활 증언의 진실성을 회복하라고 때리신 역사의 회초리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반성의 산물로 등장한 가톨릭 사회교리는 성체성사의 파스카 지향과 성모신심의 사회적 메시지를 회복시켜주는 성령의 특효약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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