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스스로 복음을 증거하는 능동적인 신자, 어떨까요?
  • 이기우
  • 등록 2019-05-24 17:45:49

기사수정


부활 제5주간 토요일 : 사도 16,1-10; 요한 15,18-21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는 노력


오늘 독서의 내용은 바르나바와 헤어져 독자적으로 선교여행을 나선 바오로가 두 번째로 소아시아의 여러 공동체들을 방문하면서 성공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 선교의 여정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앉은뱅이를 고쳐주었다가 신격화의 소동을 겪기도 했던 리스트라에서는 티모테오를 제자로 얻는 성과도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 고을을 다니며 계명을 가르쳐주며 공동체를 건설했는데, 더 이상 흑해 방면의 아시아 내륙으로 진출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사도행전은 이를 두고, 성령께서 막으셨다고 진술합니다. 즉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면 이 역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줄로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바오로 일행은 트로아스에서 배를 타고 당시 유럽에 속했던 마케도니아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러한 방향 선회는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로 복음을 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지요.


찾아오는 사람을 앉아서 기다리는 시대는

끝나고 있습니다


▲ 현장에서 봉헌되는 미사에는 언제나 신자들과 수도자, 성직자들이 함께 했다. ⓒ 강재선


1970-80년대에 우리 가톨릭교회에 자발적으로 입교하던 사람들은 주로 중산층과 지식층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지금 교회 평신도의 절반 이상이 그 이후에 입교한 신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흐름과 추세는 둔화되어 가고 있고 조만간 멈출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한 분석과 대책을 여러 가지로 논의하고 있지만, 이미 냉담하기로 마음을 먹고 성사생활을 쉬고 있는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관점을 성서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즉 중산층과 지식층의 입교를 위한 노력, 즉 앉아서 찾아오는 입교 희망자들을 받아들이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일러주시는 방향은 중산층과 지식층이 아니고, 가난한 이들과 소외계층입니다. 이들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찾아올래야 찾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찾아가야 합니다. 이른바 현장선교입니다. 각 본당이 관할하고 있는 구역은 물론 각 지구별로 소외된 이들이 살고 있는 주거 지역은 물론 그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서 그들에게 필요한 복음을 전하고 공동선을 되찾아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새로운 입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가 자리잡으면 이러한 교회쇄신적 선교적 방향전환을 반가워하는 중산층이나 지식층 냉담자들도 다시 돌아오기 쉬울 것이고, 아마도 자발적인 입교자 행렬도 생겨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앉아서 기다리는 방식이나 그래서 자발적인 중산층과 지식층이 찾아오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신자들이 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이는 정말 복음을 들어야 하고 복음을 기다리는 이들 즉 가난한 이들과 소외계층에게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일,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은 

박해 시대에만 가능한 실천 행동이 아닙니다.


선교적 마인드를 회복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마치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사도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주변의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도 오랫동안 선교 마인드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방향전환이 당장에 쉽게 이루어지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아시아의 내륙을 선교하던 바오로에게 흑해 방면 북방으로의 선교를 가로막으시고 유럽 방면 서방으로의 선교를 지시하신 성령의 이끄심처럼, 지금의 교회 현실은 즉 예비자 감소와 냉담자 증가 현상은 새로운 또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무모하게 보였던 사도 바오로의 방향 전환이 유럽 대륙의 복음화의 출발이 되었고,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천오백 년의 역사를 지탱케 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놀라지 말라는 뜻으로 제자들을 진정시키셨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새로운 선교의 기회로 삼는 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입니다. 실제로 바오로 사도는 선교여행을 하면서 기성 사도들과는 차별되는 활동을 해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다녔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만나기 위하여 천막 만드는 노동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생계비와 선교활동비를 스스로의 힘으로 충당했으며, 사람들에게 쉽게 세례를 주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생활을 하도록 이끌면서 공동체를 건설하게 했고, 그렇게 세워진 공동체에서 눌러앉지 않고 현지 지도자를 세워놓고 떠나서 새로운 선교지를 개척했습니다.


스스로 복음을 증거하는 능동적인 신자, 어떨까요?


우리 교회가 성령께서 가로 막으시는 뜻을 알아듣고 새로우면서도 더 복음적인 방향에로 사목과 선교의 몫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들도 수동적으로 천주교 신자로 만들고 싶은 지인을 본당 예비자 교리반에 데려오는 것으로 다 하던 몫이 아니라 스스로 복음을 증거하고 설명도 하여 능동적으로 천주교 신자로 만들어나가는 몫을 하시면 어떨까요?



오는 5월 25일부터 한 주간 사제피정으로 인하여 [이신부의 세·빛] 강론 연재를 쉽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