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2시, 서울 중구 정동길 일대는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어느 식당, 카페를 가도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하면서 휴식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이 발걸음들 틈에는 식당과 카페가 아니라 프란치스코교육회관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익숙하게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 있는 성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오후 12시 10분부터 시작되는 ‘직장인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다. 이 미사는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에 맞춰 평일 12시 10분에 봉헌된다. 이 미사가 시작된 지도 어느 새 30년이다. 정동길 일대에서 근무하는 천주교 신자 대부분은 이 미사를 알고 있다.
여러 회사가 밀집되어 있는 서울 중구는 지역 특성상 낮에는 사람이 많지만 저녁에 직장인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면 사람도 없고 차도 다니지 않는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다. 1980년대 후반, 작은형제회 이건주 레미지오 수사는 박 프란치스코 수사와 ‘이 지역의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직장인 미사를 만들게 됐다.
“보통 직장인들이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이잖아요. 그 시간에 맞춰서 간단하게 미사를 한 후 식사를 하고 근무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12시 10분에 시작하고 30분 안에 끝나도록 만들었어요.”
중구라는 지역에 특화되어 만들어진 미사다. 현재 직장인 미사는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미사가 봉헌되지만, 처음 직장인 미사가 생겼을 당시에는 목요일에만 봉헌됐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되면서 직장인 미사는 주 5일로 확대됐다. 당시에는 직장인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퇴근 후 다음 날 오전까지 이뤄지는 피정도 있었지만 현재는 직장인 미사만 남아있다.
평일에도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은 80명이 넘는다. 본당 미사가 없는 월요일은 200명에 가까운 신자들이 참석한다.
이건주 수사는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과 사회생활, 가정생활을 별개라고 생각하지만 신앙도 생활 안에서 이뤄지며, 사회생활, 가정생활과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생활 안에서도 신앙이 이뤄져야 살아있는 신앙이 됩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직장인 미사에 왜 가시나요?
오전 업무를 마치고 맞이하는 점심시간은 정말 ‘꿀’ 같은 시간이다. 가장 먼저 배를 채우고 직장 동료와 차 한 잔 하면서 수다도 떨고 관계를 형성한다. 아니면 조용히 쉬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온전히 내 시간을 즐긴다. 그런데, 이렇게 꿀 같은 시간에 직장인 미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기회에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 역시 같은 직장인으로서 미사에 가보기로 하고, 사무실을 나와 정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우선 사무실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도 좋았다.
직장인들 틈을 헤치며 프란치스코교육회관으로 들어섰다. 성당 문 앞에는 성가집과 매일미사 책이 준비되어있었다. 성당에 들어서자 복잡한 도심 속에서 고요함이 찾아왔다. 조용히 묵상하는 신자들이 보였다. 어느 새 듬성듬성하던 자리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삼종기도로 미사가 시작됐다. 여느 미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로도 마음이 편해지고 미사에 집중하면서 복잡했던 머릿속도 조용해졌다.
미사를 찾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1시까지 사무실로 복귀해야 하는 직장인들이어서 미안함을 무릅쓰고, 김성민(비오) 씨에게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흔쾌히 응해줬다.
“좋으니까 오겠죠?”
점심시간에 왜 직장인 미사를 찾느냐는 질문에 김성민 씨의 첫 대답은 간단했다. 나에게 회사에 있다가 집에 가면 어떤 점이 좋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제 시간과 공간이 생기고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게 좋아요”하고 답했다.
김성민 씨는 “저도 여기에 오면 편해요. 치열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쉼, 안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그런데 주일에 한 번, 미사 참례로는 부족하더라구요” 직장인 미사에 발걸음하는 이유를 말했다.
“걸어서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쉼의 공간, 안식의 공간, 재충전의 공간이 있다는 게 감사합니다.”
그는 오전 중에 받았던 스트레스나 어려운 부분이 있을 때 미사를 하면서 다시 되새기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면서, 그 자체로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에 혼자 홀연히 사라지면 동료들이 궁금해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동료들에게 직장인 미사에 참여한다고 설명을 하니까 이해 해준다고 말했다. 직장인 미사에서 뜻밖의 인연도 생겼다. 회사 직원과 우연히 미사에서 마주친 후 서로 인사를 하고 시간이 맞으면 같이 미사에 오기도 한다.
김성민 씨는 30분간의 짧은 안식을 취하고 뒤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 회사에 복귀하기 위해 다시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내 일터 가까운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
이번엔 요일을 바꾸어 또 다시 미사에 참석했다. 이 미사에서 2006년도부터 직장인 미사에 다닌 김진아(베로니카) 씨를 만났다. 회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미사에 나오는 횟수가 뜸해졌지만, 최근에 다시 정동으로 이전하면서 직장인 미사에 나오고 있다.
12시 40분, 인터뷰를 요청하고서도 마음에 걸려서 괜찮느냐고 물으니, 김진아 씨는 이제 근무 연차도 있어서 괜찮다며 웃었다.
김진아 씨도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평일에도 미사에 온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은 신심이 깊지 않기 때문에 온다면서, 본인 스스로가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오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사를 안 오면 동료들과 커피라도 한 잔 할 수 있지만, 미사에 참여하면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편해질 수 있는데 그게 잘 안 될 때, 그리고 못 받아들일 때 고민이 생기고 힘들어지는데 그럴 때 미사를 보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고민이 있으면 친구, 남편에게 이야기하고는 했지만 어느 순간 말하고 돌아서면 더 허탈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내 마음에 해답이 있고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라며 이제는 미사나 기도를 하는 게 편안하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직장인 미사는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얻는 방법인걸까. 김진아 씨는 산에 나침반을 갖고 가는 것처럼 직장인 미사는 자신이 길을 이탈하지 않도록 해준다고 했다.
김진아 씨에게 직장인으로서 직장인 미사의 장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하기 때문에 사정이 된다면 다 올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무엇보다 “내 일터가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하느님이 계신 거잖아요. 전 그게 제일 좋아요”라고 말했다.
사회생활 속에서, 복잡한 도심 속에서 직장 근처에 휴식을 취하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18’에 따르면, 주일미사 참여율은 2010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2018년도 참여율은 18.3%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통계와 다르게 바쁜 일상 중에도 시간을 쪼개어 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키우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 한복판, 매일을 살아가는 직장인들 사이에 오늘도 함께 계신 하느님처럼 교회가 사람들과 좀 더 가까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