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청년(靑年), 그들의 세상을 말하다’입니다. - 편집자 주
20대 국회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국민들의 힘으로 일궈낸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기대 속에서 지금의 정부가 등장했다. 광장으로 나왔던 천만 시민들이 바라고 꿈꾼 세상은 분명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사회로의 정의로운 대전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 안에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나.
2019년 12월 6일, 오늘도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한 일터에서 죽어나간다. 장애인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한다. 이주여성들은 숱한 폭력을 당하고도 침묵을 강요받고, 여성들은 어디에서나 끊임없이 죽임 당한다. 청소년들은 등교 거부를 하며 기후위기를 외치고 성소수자들은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다. 동물들은 소비되고 버려지고 이용당한다.
누가 이상적인 사회를 바라던가. 그저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사는 것이 모두가 바라던 일상의 모습일진대, 그 일상, 오늘 하루를 지키기가 실로 어렵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 기사의 사회와 정치, 종교, 문화예술, 국제 어떤 곳을 보아도 분노와 우울함뿐이다. 대형교회를 통해 보수 개신교인들이 끊임없이 현실과 동떨어진 새 희망, 새 날을 약속하듯, 기득권 정당들은 허무한 새 미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약속과 다르다. 현 정권이 국민의 일상을 담보 삼아 약속했던 새로운 사회는 도래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계속 불평등과 차별을 경험한다. 억울하고 무기력하며 화가 난다. 그러기에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새 사회가 도래한다는 이야기, 당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리라는 약속, 희망을 가지라는 선언, 우리의 하루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사람들은 도리어 절망과 냉소, 체념으로 하루를 버텨낸다. 이러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의 목소리를, 도대체 누가 대변해 준다는 것인가.
지금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국회의 얼굴을 보자. 올해 국회의원 평균 나이 55.5세, 남성의원이 83%이다. 게다가 평균 재산이 40억 원이다. 나머지에는 여성의 얼굴을 하고 가부장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이들도 있으며, 청년의 얼굴을 하고 혐오와 불평등을 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비장애인이자 대부분이 이성애자, 그리고 한국 국적이다. 너무 오랫동안 이런 사람들만 모여 국회 안에서 싸움만 하고 있으니 어떻게 국민들이 한국 정치에 희망을 걸고 믿고 사회를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비난만 하고, 정치에 대한 냉소와 체념으로 사는 하루가 결코 내일을 바꿀 순 없다.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사회를,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오히려 국민들의 일상에 쌓여있는 분노, 절망, 불평등, 슬픔, 차별을 역으로 정치의 공간, 정치판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이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 청년,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이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 매번 선거철만 되면 ‘OO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이들이 지금까지의 정치인들이다. 청년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청년을 호명하고 소비하고는, 정치의 주체로 청년을 만들지는 않는다. 여성을 위한 정치, 장애인을 위한 정치, 이주민을 위한 정치, 청소년을 위한 정치, 그런 것 없었다. 말만 앞섰던 현 정권은 다른 누구를 위한 정치가 아닌 ‘기득권을 위한 정치’,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한 정치’ 중이다.
얼마 전 조국수호와 조국반대라는 슬로건으로 한국사회가 홍해바다처럼 갈라진 것을 통해 양극화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알 수 있듯이, 한국 정치의 두 기득권 정당을 위한 ‘사실상’ 양당제를 극복하고 다당제로 가야한다. 조국수호와 조국반대를 외치는 양 깃발 사이에서 그 어느 쪽도 자신을 대변해 주지 못해 방황하는 청년들, 또 소외된 국민들의 목소리를 수렴하여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모습일 것이다. 다양한 계층이 국회로 진출하려면, 현재의 선거법을 개혁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사실 이렇다. 한국은 다양한 정당의 경쟁이 가능한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실제로는 조국사태의 두 깃발처럼 두 거대 정당이 독점하는 시스템이다. 그러기에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도 정치에 골고루 반영되도록, 국민들의 정당 지지율 그대로 국회 의석수를 얻어 다양한 정당들이 공정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여기에 녹색당은 국회의원 수를 늘리고, 대신 국회의원 특권을 폐지하고 연봉을 대폭 삭감하는 제안들도 계속 주장해 왔다. 정말 국민을 위해 일 열심히 하는 국회로, 국민들의 여러 목소리를 공정하게 수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체들로 정치판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12월 10일 정기국회 종료를 앞두고 아직도 국회에서 한창 선거제도 개혁을 하느냐 마느냐로 갑론을박 중이다.
이렇게 모두에게 필요한 선거제도 개혁안이 계속 지지부진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선거제도가 개혁되면 자유한국당 뿐 아니라 더불어한국당, 아니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유지하고 있는 기득권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더욱 선거제도에 비례성을 확대해서 더 많은 국민의 의견들이 국회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다양한 일상의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것이 정치를 향한 불신, 냉소, 체념을 극복하고 ‘나’의 목소리가 누군가를 통해 국회에서 들리고, 내가 선택한 정책과 제도를 말하는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이 오랫동안 원외정당인 녹색당이 기득권과, 거대 정당과, 정치 혐오와 맞서 원외에서 싸워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거대 깃발 사이 헤매고 있는, 호명되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한결같이 자리매김을 해왔다.
우리는, 한국사회 국민들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선거제도가 개혁 될 역사적 순간을 관통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녹색당과 같은 원외정당도 국회로 진입해서 더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아직까지 불리지 않았던 이들이 주체로 나서서 또 다른 누군가를, 두 깃발 사이에서 헤매고 있을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 반드시 통과되고 새로운 정치가 약속할 하루, 일상을 보통의 시민으로 누리며 살고 싶다.
정유현(녹색당 전국사무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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