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코로나 시대의 신앙, 거룩함의 회복 - [사건과신학] 종교는 성스러움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 송진순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4-02 16:59:47
  • 수정 2020-04-02 17:21:02
기사수정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코로나19와 한국교회’입니다. - 편집자 주


코로나의 침습력이 막강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는 불과 두 달 만에 첨단과학기술을 항거불능으로 만들고 제국적 정치의 무력함을 넘어 전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세계적 공황상태는 시민 정신의 시험대가 되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서력인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가 코로나를 기준으로 B.C.(Before Corona)와 A.D.(After Disease)로 바뀔 거라는 소리도 들린다. 코로나가 안겨준 디스토피아적 전망은 필연적으로 지금 우리 인식과 삶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신천지를 중심으로 가파르게 치솟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목도하면서 종교계, 특히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더 맹렬하고 엄혹했다. 2월 말, 가톨릭은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 중단을 선포했고, 불교는 전국 사찰의 법회와 행사를 금지하며 산문을 잠궜다. 부처님오신날 법요행사는 5월 말로 연기됐다. 원불교와 천도교는 모든 법회를 중단하고 온라인 기반의 임시법회를 운영했다. 대부분의 개신교도 예배와 행사를 취소하고 주일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각 교단과 개교회들이 진통을 겪었다. 위기 상황과 예배형식에 대한 성서적 정당성을 변호하고, 교회사에서 신학적 응답들을 찾아내야 했다. 방송시설이 없는 작은 교회들은 예배 전환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주보는 이미지 파일로, 광고는 문자 메시지로, 헌금은 계좌로 안내했다. 그런데도 중소교회에서 터져 나오는 집단 감염은 개신교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켰다.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자행되는 이기적 종교행태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장 예배 중단 5주 차가 되면서 개신교 내부에서도 예배와 교회의 역할에 대한 목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온라인 예배가 점차 익숙해지고 교회 공동체성에 대한 교인들의 인식이 전환되면서 ‘예배란 무엇인가?’, 아니 ‘교회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초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면서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신앙(을 지속)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이에 교단과 교회는 목회서신과 설교를 통해 지금은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인한 임시적, 제한적 상황임을 역설하며 교인 달래기에 분주했다. 그러나 개신교 내부에서 감지되는 신앙적이고 신학적 지각변동을 두 손으로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종교는 성스러움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속(俗)의 공간에 성(聖)이 침투하는 사건, 엘리아데는 종교의 본질을 이러한 신성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바닥에 금을 긋고,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일상의 시공간에서 의미로 충만한 존재와의 만남, 즉 성스러움을 경험한다. 문제는 종교성 근원에 있는 신성(the sacred)이 세계 안에서 구현되는 방식이다. 신성이 갖는 공간성은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이 세계를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이끌고 하나의 질서와 정체성을 제공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권위에 기반한 위계질서를 형성하기에 안정적이고 보수적이다. 이 점에서 신성은 현실을 정당화하기에 이데올로기적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성이 아니라 거룩(the holy)을 추구하는 종교다. 신성이 안정과 질서의 현실을 살아가게 한다면, 거룩은 유토피아적 상상, 즉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는 역동성을 부여한다. 성서 어느 곳에서도 신성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정결하게 구별됨을 의미하는 거룩을 말한다. 성서는 하나님이 거룩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고백하고, 이와 함께 믿는 자들과 공동체에게 거룩함을 요청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특정 장소에 얽매여 그의 신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넘어 성별된 거룩함으로 존재하신다. 그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거룩함은 구원이라는 일회적 체험이 아니라 지속적인 결단과 행위를 통해 그것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안주하지 않고 행위로 드러난다. 따라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그분의 명령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인 것이다. 그것은 비단 교회 공간에 특정하여,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구조에 기대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동안 세속적 교회의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부합한 신성을 거룩한 신앙의 자양으로 착각하고 그 안일함에 매몰돼왔다. 신성과 거룩을 구분하지 못하고, 경계 밖에서 주변인으로 살았던 예수, 그가 선포한 거리두기의 거룩함을 잃어버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거룩함은 신성과 다르게 지금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철저한 거리두기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거리, 인간관계에서의 거리, 그리고 질서와 풍요를 약속하는 사회적 이상과의 거리를 통해 이 세계를 통찰하는 힘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선 존재가 세상에 파묻히지 않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거룩하기 위해 의미있는 한 걸음을 내딛는 과정이다.


어쩌면 진즉에 교회를 벗어나야 했던 그리스도인들―가나안 성도, 병환과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해 각 처소에서 예배해왔던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홀로 서는 과정을 통해 몸소 거룩함을 실현해왔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위기는 지금의 교회가 잃어버린 것,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음으로 경험하는 거룩한 과정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공교회의 이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가 경홀히 해왔던 것, 세상과의 거리 두기 그 거룩함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어느 곳이든 장소를 떠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나의 변화와 교회의 변화를 위해 기도해야 하리라. 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함께 우리의 거룩한 공교회성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장소와 시간 그리고 매체를 넘어 온라인 예배는 잃어버린 개인의 영성과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민주적이고 건강한 교회 생태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송진순(이화여자대학교)


⑴ 양명수, “신성과 거룩”,  「기독교사상」 1998년 8월호: 107-124.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6489
기자프로필
관련기사
댓글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비회원 이름 패스워드 자동등록방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