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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를 두려움으로 가열하면 - [사건과 신학] 두려움과 공포는 ‘혐오’를 생산한다.
  • 박흥순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9-24 15:25:21
  • 수정 2020-09-24 15: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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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팬데믹스: 파국의 징후들’입니다. - 편집자 주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 사용했던 크레파스에 ‘살색’이 있었다. ‘살색’이라니! 피부색을 색칠할 수 있도록 다른 색과 구분해 놓았다.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은 어김없이 ‘살색’을 선택해서 사람 얼굴이나 손과 발을 색칠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당시에도 피부색을 빨간색이나 검정색으로 색칠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구분해 놓은 ‘살색’을 주저 없이 사용했고 사용해 왔다. 그렇게 단일민족신화에 갇혀 낯선 사람이나 다른 사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살색’이 하나만 있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살색’이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결국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살색’이라는 명칭이 인종과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라고 결정했다. ‘살색’이 ‘연주황’으로 바뀌고, ‘연주황’이라는 단어가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차별했다는 이의제기를 수용해서 ‘살구색’으로 바꾸었다. 낯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며 얻게 된 선물 가운데 하나는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익숙함에 관해서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세계에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피부색이 존재할 텐데 ‘살색’이란 단어로 가두어 놓았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성찰할 시간과 공간에 직면한 것이다. 협소한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왜곡과 편견이 생기며, 편견이 확대되면 차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음을 역사를 통해서 배웠다. 그럼에도 계속된 편견과 차별 그리고 혐오가 온 나라를 휘감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전체 인구에 4%를 차지하는 이주민이 다양한 얼굴과 모습으로 사회 곳곳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순혈주의와 단일민족신화에 마음을 빼앗겨 낯선 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과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까닭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묻는다. 사람을 ‘존재’가 아니라 ‘외모’와 ‘겉모습’으로 판단하도록 작동하는 경향성을 질문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공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각과 관점이 무엇인지 비추어본다.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서 한국인은 다양한 인종이 서로 혼합해 왔다는 보도를 접했고,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는 기사를 읽고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일민족신화를 버릴 수 없는 것은 낯선 사람과 다양하고 다채롭게 살아본 경험이 적어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주민이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 거주하기 전에는 고민하고, 질문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주제가 지금은 사회 전면을 장식한다. 이주민이 점점 증가하는 현실에서 다문화 현상이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노동으로 이주한 노동이주자, 혼인으로 이주한 혼인이주자, 난민과 임시체류자, 유학생, 재외동포 등 2백만 명이 넘는 이주민은 한국사회 중요한 구성원이다. 하지만 아직도 ‘외모’와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습성이 교정되지 않고 오히려 지속되고 있다.


‘외모’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한 흑인이 “검은 피부를 갖고 직접 경험하지 않고 흑인 인권과 인종차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지적을 들은 존 하워드 그리핀(John Howard Griffin)은 결심한다. 백인이었던 그는 하루 15시간 일광욕과 피부를 검게 하는 약품과 염료를 사용해서 검은 피부를 갖게 된 후 흑인처럼 미국 남부를 여행했다. 그 여행은 1959년 11월부터 7주간 이어졌고 흑인처럼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1961년에 『블랙 라이크 미(Black Like Me)』라는 책을 썼다. 책을 출간한 후 거듭되는 살해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멕시코로 망명한다. 


존 하워드 그리핀이 흑인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에서 무엇 때문에 차별을 경험했는가는 명백하다. 그가 변한 것은 피부색 외에는 없다. 단지 피부색만 바꾸었을 뿐인데 그는 미국 남부에서 수없이 많은 조롱과 차별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외모’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한 전형적 모습이다. 사람을 ‘존재’가 아니라 보이는 ‘외모’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편견을 갖게 되고, 결국 차별과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환대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결국 어떤 시각과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깨닫도록 ‘해방교육’(pedagogy)을 누구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성서에서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구약성서 신명기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하나님에 관한 언급을 소개한다.


이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도 많으나, 너희의 주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주님이시다. 그분만이 크신 권능의 하나님이시요,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거나, 뇌물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신명기 10:17, 표준새번역)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은 ‘공정하지 않은 선입견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 불공정한 선입견과 편견에 노출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사람은 공정하지 않는 선입견으로 판단할 수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약성서 로마서도 ‘차별’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서술을 소개한다.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이요,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2:9-11, 표준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신다는 말에 오랫동안 머물러 읽고 또 읽는다. ‘차별함’이 없다는 말은 편파적이거나 불공평하지 않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누구든 하나님께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는데 누가 다른 사람을 ‘외모’와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차별’할 수 있는가!


‘외모’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존재’를 있는 모습 그대로 환대하는 것이 성서가 제시하는 가르침이다. 하나님 이름으로 어떤 사람도 ‘차별’하거나 ‘외모’로 판단할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명백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는 두려움과 공포로 이끌고, 두려움과 공포는 ‘혐오’를 생산한다. 결국 ‘무지(無知)’, 즉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외모’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습성과 경향성은 ‘무지(無知)’에서 비롯한다. 한국사회에 광풍처럼 몰아치는 ‘차별’과 ‘혐오’는 ‘무지(無知)’를 인정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하거나, 방치한 결과다. 따라서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한 ‘차별’과 ‘혐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않으면 ‘무지(無知)’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며, 할 수 있는가?


박흥순(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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