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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기 위해 왔어요” - 난민+활동가, 난민활동가 활동기록 ①
  • 문미정
  • moon@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9-29 17:00:53
  • 수정 2020-09-29 17: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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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멘 난민, 인천공항의 루렌도 가족, 이란 친구를 위한 친구들의 호소… 우리 사회 안에서도 난민 이슈가 수면 위로 불쑥불쑥 떠오르기는 했지만 첨예한 대립과 혐오를 낳고, 그마저도 금세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는 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난민은 정말 무서운 존재일까? 난민을 우리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그들을 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 난민으로 세상을 떠도는 것은 정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일까? 


그렇다면, 나는 난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을 천주교 의정부교구 ‘1본당 1난민가정 돌봄사업’ 난민활동가 양성 교육을 시작으로 천천히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의정부교구에서 올해로 세 번째 열린 ‘1본당 1난민가정 돌봄사업’ 난민활동가 양성 교육이 지난 8월 22일에 시작돼 9월 26일 수료 미사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 교육은 ‘난민과의 만남’으로 진행이 됐는데, 이날 자리에는 ‘비아프라 공동체’가 참석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비아프라 공동체와의 만남


▲ 비아프라 공동체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 문미정


비아프라인들은 받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기 위해 있다.


비아프라(Biafra) 생소한 이름이다. 나이지리아의 부족 중 하나였던 이보족이 1967년 5월 30일 분리 독립을 선언하며 비아프라 공화국을 세웠다. 하지만 하우사족이 비아프라를 침공하고, 비아프라에서 발견된 원유를 노리던 소련이 하우사족을 지원하면서 전쟁이 계속 됐다. 전쟁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결국 비아프라는 1970년 1월 나이지리아로 흡수됐다. 이후 나이지리아의 박해를 피해 전 세계로 흩어진 비아프라인들은 비아프라 독립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비아프라 공동체도 나이지리아의 위협을 피해 한국으로 왔으며 한국에서 지낸 시간도 어느덧 10년이 넘는다. 이들은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으로 오는 길에 나이지리아 정부에 필요한 서류를 빼앗기거나 미처 챙기지 못하고 오기도 했다. 한국 출입국에서는 서류를 요구했고 서류가 없는 비아프라인들은 다시 나이지리아로 돌아가게 됐지만, 그들은 나이지리아에 도착하자마자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나이지리아에 돌아간다는 것은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지내면서 난민 지위를 얻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난민들이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한 소송을 진행할 때 무료 변호사를 지원해주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지원조차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체류 연장을 하기 위해 출입국관리소에 가도 이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아 체류 연장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는데, 사업장에서는 신분증을 요구하기 때문에 신분증이 없는 상태에서는 취업도 어렵다고 하소연 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아프라 공동체는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힘을 보태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동두천시청에 손소독제 370개를 기부했으며 양주 지역 독거노인들의 집을 청소하고 삼계탕을 대접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헌혈이 감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헌혈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의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며 “비아프라인들은 받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눠주기 위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사는 삶 


▲ 난민활동가 45명이 교육을 수료했다. ⓒ 문미정


난민과의 만남 일주일 후, 교육의 마지막을 알리는 수료 미사가 봉헌됐다. 선배 활동가가 새내기 난민활동가를 축하하기도 했다. 


전수환(베드로) 씨는 동두천 지역에 이주민과 난민들이 많기도 하고, 약자와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가톨릭교회 정신을 따라 난민활동가 양성 교육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1년 전 동두천으로 이사를 온 전수환 씨는 교적을 전주교구 본당에 두고 있었지만, 이번에 교육을 받기 위해 의정부교구 본당으로 교적을 옮기기도 했다. 


교육 과정을 수료한 소감을 묻자, “마음이 무겁다”고 입을 열었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것 같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만만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뜻이었다. 종교·문화적인 차이들도 있을 테고 서로 다문화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고 노력해야 하니 그 의미가 다소 무겁게 다가오는 듯 했다. 


그럼에도 난민들과 함께 하고 말벗도 되어주고, 우리 식구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낮은 곳에서 난민들과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황성환(도미니코) 씨는 이전부터 이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는 라파엘클리닉에서 활동을 해왔다. 그러던 중 먼저 난민활동가 양성 교육을 받은 선배에게 이 교육을 추천받고 시작하게 됐다.


황성환 씨는 이전부터 난민, 이주민들과 만나왔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면서, “(이번 기회에) 난민, 이주민들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지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민철(바오로) 씨도 이전부터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빈첸시오 활동과 사회사목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동두천 지역사회에서는 이주민들이 중요한 이슈라면서, 그들을 보듬고 가야 하는 것이 주요 현안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활동가를 통해 난민의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되면서, 난민에 대해 좀 더 교육 받고 관련 활동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민철 씨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큰 계명 안에서, ‘이웃’의 범주에 난민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난민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상황에 맞게 힘닿는 데까지 난민들을 지원하고 싶다는 각오를 다졌다. 


활동가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난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교육에까지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앞으로 본당과 난민가정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교적을 옮겨왔다는 전수환 활동가의 말처럼, 앞으로의 과정이 만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난민’과 ‘활동가’, 그래서 결국은 하나인 난민활동가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나 되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립과 혐오의 문화에 맞서나갈 것인지 기대하며,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다음 기사에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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