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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성소수자 공동체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
  • 문미정
  • 등록 2021-04-24 11:38:12
  • 수정 2021-04-24 13: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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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기』는 교회가 성소수자 공동체를 ‘존중하고 공감하며 민감하게’ 대하도록 초대하며, 성소수자 공동체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제도교회와의 관계에서 그 덕(존중, 공감, 민감함)을 성찰하도록 초대한다.

 

미국에서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 서고 있는 제임스 마틴 신부의 책 『다리 놓기』(원제: Building A Bridge)가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가톨릭교회와 성소수자 공동체가 서로 ‘존중하고 공감하며 민감하게’ 관계 맺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임스 마틴 신부는 “이 책은 논쟁과 반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화와 기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둔 사목을 향한 초대”라며 “모든 그리스도교의 사목 활동이 예수님에게 뿌리를 두지만, 특히 주변으로 밀려났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LGBT클럽 총기난사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 사건을 두고 가톨릭교회 250명이 넘는 주교들 중 단 몇 분만이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라는 표현을 쓰며 위로했다고 말했다. 

 

마틴 신부는 “단지 몇 안 되는 가톨릭 주교님들만이 성소수자 공동체를 인지하고 있으며 이런 위기의 때조차 ‘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아직도 교회에서 성소수자들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성소수자 공동체와 제도교회 사이에 엄청난 단절이 생겨났고, 이제 이 단절을 연결해줄 다리를 건설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제도교회와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 양쪽 모두가 상호 존중과 공감 그리고 민감함을 갖고 대화하도록 초대하지만, 이 과정의 무거운 짐은 먼저 제도교회가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양편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의 주된 책임과 의무는 주교와 사제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몫입니다.” 

 

제임스 마틴 신부는 존중, 공감, 민감함을 여러 번 강조하며 가톨릭교회와 성소수자 공동체 사이의 양방향 다리를 놓기 위한 작업을 한다. 또한 성경구절을 통해 성찰과 묵상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성소수자 부모, 친구, 지지자들 뿐 아니라 주교와 사제를 포함해서 모든 본당과 교구의 구성원들을 염두에 정리한 것”이라고 밝힌 만큼, 이러한 성찰과 질문은 성소수자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통용되기도 한다.  

 

존중한다는 의미는 성소수자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존재를 인정하면, 이미 다리는 놓인 셈이다 

 

개신교에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움직임과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움직임이 대립각을 세우는데 반해, 한국 가톨릭 안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분명히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리 놓기』 한국어판 발간은 발간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책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 성서와함께 >에서 나왔고, 예수회 심종혁 신부가 번역했다. 심종혁 신부는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2년부터 서강대학교에서 신학을 강의했다. 현재는 서강대 총장으로 있다.  

 

책을 번역하고 출간하는 과정에서 이미 사람들 사이에 다리가 놓여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가톨릭 여성 성소수자 단체 < 알파오메가 >와 < 성소수자 부모모임 >이 감수를 맡아서, 성소수자 공동체에서는 잘 쓰지 않는 용어나 이들이 원하지 않는 용어를 바꾸는 등 이 책이 좀 더 성소수자를 향해 다리를 놓는 일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서로 의견을 내고 조율하고 양보하는 과정도 있었다. 책 표지 디자인이 한차례 변경되기도 했는데 처음 표지는 지금과는 다른 톤의 무지개색이었다. 이건 게이 프라이드 무지개색과는 다르다, 무지개는 우리에게 중요한 상징이라는 < 알파오메가 >의 요청에 디자인을 수정했다. 기존 무지개는 7가지 색이지만, 게이 프라이드 무지개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 6가지 색으로 이뤄져있다.

 


출판사 < 성서와함께 > 편집부장 이제희 데레사 수녀는 “무지개색이 그렇게 중요한 상징이라고 생각 못했다”며, “그분(성소수자)들을 위한 책이라서 그 요청에 맞췄다. 이 책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임스 마틴 신부님은 우리는 잘 모르니까 그들(성소수자)이 뭐라고 불리기를 원하는지를 먼저 알고 그렇게 불러줘야 한다고 했다. 감수를 받으면서 많이 배우고 도움이 됐다”면서, “이 책을 통해 서로 만나고 알게 되면 좋겠다. 저도 무지했지만 그분들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성서와함께 >는 어떻게 이 책을 펴내게 된 걸까. 2016년도 < 성서와함께 >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서 성소수자를 다뤘던 적이 있다. 이제희 수녀는 그때 처음 < 성소수자 부모모임 >을 알게 됐다. 하늘 대표는 자신도 가톨릭 신자라면서, 어떻게 가톨릭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왔느냐고 놀라워했다. “그분이 처음에 많이 우셨다. 수도복 입은 사람이 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당신에겐 위로라고 했다. 저에겐 그 일이 큰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알게 된 후,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중에, 심종혁 신부를 통해 『다리 놓기』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심종혁 신부에게 번역을 제안했고,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여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책 초판은 판매보다는 여러 곳에 알리기 위해 기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교들 그리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도자들이 있는 본당에도 보낸 상태다. 책은 < 성서와함께 >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서점에서도 구입 가능하다.  


누구는 왼손잡이로, 또 누구는 오른손잡이로 태어난다


『다리 놓기』 번역을 하는데 부담감은 없었을까. 번역을 맡은 심종혁 신부는 국내 본당, 미주지역 한인 본당 등에서 피정이나 특강 같은 모임을 통해 신자들을 상담하는 사목활동을 많이 해왔다. 이 과정에서 심 신부는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나 성적지향성으로 고민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웨스톤신학대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했는데, 성윤리 과목을 수강하면서 성소수자 주제와 더불어 성윤리와 관련된 주제들을 심도있게 공부하면서 교수, 동료들과 함께 사목적인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토론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심 신부는 “이런 분위기에서 성소수자에 관해 비교적 편견이 없는 태도를 지닐 수 있었다. 그래서, 자녀들이나 본인 자신이 힘들어하는 분들을 만날 때 어려움에 공감해주며 도움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주제가 아직은 한국 가톨릭계에서 약간은 민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또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지닌 분들도 많이 있겠고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도 많다고 여기기에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번역하기로 마음 먹었다.”


제임스 마틴 신부는 표현이나 용어에 많은 신경을 썼다. 심종혁 신부도 번역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이것저것 찾아보고 그 표현의 보편성을 따져보고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주위 신자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물었다. 심 신부는 “적합한 비유는 아니지만, 누구는 왼손잡이로 태어나고 누구는 오른손잡이로 태어나는데, 지배문화가 오른손 문화이니 왼손잡이가 한때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오해받은 시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표현 자체도 ‘옳은-오른’손, 영어로도 ‘right’ hand 한 것처럼 말이다. ‘성소수자’를 일종의 치유해야 할 병을 앓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분들에게 설명하는 방법이다. 성적지향성이 문화적인 요소뿐 아니라 태어나길 그런 성향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설명할 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끝으로, “마틴 신부님이 언급한 대로, 이 시대에 가장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이들이 어쩌면 성소수자들일 수 있으니, 교회가 그분들께 좀 더 관심가져 서로 존중하고 공감하며 민감하게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책 발간 이상의 의미, 『다리 놓기』로 무엇을 해 나갈 수 있을까 

 


< 알파오메가 > 대표 크리스티나 씨는 『다리 놓기』가 한국에 나오기까지 몇 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며 놀라워했다. 2년 전 원서로 처음 접하고 한국에도 소개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가톨릭 출판사를 통해 출간돼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보수적인 한국가톨릭 출판사에서 내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어야 했다. 


크리스티나 씨는 책 발간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책이 나왔으니 책을 갖고 무언가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자책으로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성소수자 당사자가 이 책을 집에 보관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이 책을 펼쳤을 때 성소수자 이야기 나오는 것을 보면 원하지 않는 아웃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티나 대표도 성서와 동성애 관련 책이 나오면 서점 귀퉁이에서 조용히 읽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만약 나였다면...’하고 생각해봤다. 아무 거리낌 없이 책을 책장에 꽂아두거나 집안에 버젓이 놔둬도 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소한 일이 자기를 숨겨야 하는 소수자에게는 사소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차별 받는 자, 소수자의 서러움은 이렇게 일상 속에서도 드러난다.  

 


크리스티나 씨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사회적 틀에 맞추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남에게 본모습을 감추고 거짓말하게 된다. 자신이 게이이면서도 게이를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사회적인 틀에서 죄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제임스 마틴 신부가 한국어판 소식을 자신의 SNS에 알리니, 아직 책이 번역되지 않은 국가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됐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남긴 것을 봤다면서, “책이 한국에 나왔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도 내자는 분위기가 생겼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는 뉴 웨이즈 미니스트리(New Ways Ministry)라는 단체가 있는데 사목자, 앨라이, 봉사자들이 연합해서 함께 피정도 한다. 우리도 이 책을 통해서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앨라이, 수도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 씨는 이 책을 시작으로 또 다른 책이 나왔으면 좋겠고, 신자들이 이 책으로 독서 모임도 하고 교회에서 신자 재교육을 위한 책으로 쓰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그러면서, “가톨릭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제 교회가 성소수자 사목을 하려는 분들의 목소리를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자도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와 이들 사이에도 다리가 놓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크리스티나 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게이 프라이드 무지개가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을 것이고, 누군가는 거리낌없이 볼 수 있는 책도 또 다른 누군가는 눈치를 보며 몰래 읽어야 한다는 현실을 몰랐을 것이다.  

 

이제희 수녀, 심종혁 신부와 대화하지 않았다면, 교회 안에도 이렇게 소수자를 존중하고 공감하며 민감하게 대하는 수도자들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다리 놓기』를 읽고, 내가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먼저 다리를 놓아보는 작업을 하는 날이 오기를, 그들에게 향하는 다리가 여러 개 놓이기를 기대해본다.  

 

함께 건너자고 초대하는 이 다리 위에는 돌부리나 구멍과 같은 크고 작은 장애물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 안의 그 누구도 완전하기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수백만의 가톨릭 형제자매들이 당신 옆에서 함께 걸으며, 가톨릭교회의 많은 지도자도 그러하며 우리 모두는 이 다리 위를 비록 불완전 하지만 함께 걷고 있습니다.  

 

질문 제일 끝부분은 가족, 친지, 그리고 함께 해주는 이들을 위한 것인데 사실 교회는 이들을 종종 등한시했습니다. 성소수자들을 위한 교회의 사목 활동은 단지 가톨릭교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친지, 즉 조부모와 부모, 형제자매, 친척, 친구와 이웃, 직장 동료 모두를 위한 사목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은 분들은,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성소수자 사목을 위해 제안한 존중, 공감, 민감함이라는 세 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다리 위를 함께 걷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실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다리 위에도 통행료 계산소가 있습니다. 통행료는 바로 당신이 존중과 공감과 민감함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다리놓기


⑴ 존중하고 공감하며 민감하게(Respect, Compassion, and Sensitivity)라는 표현은 가톨릭 교리서 2358항에 나오며 교리서에서는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라고 번역했으나, 심종혁 신부는 ‘존중하고 공감하며 민감하게’라고 번역했다. 동정보다는 공감이, 친절보다는 민감함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LGBT : 성소수자 공동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의 앞글자를 따서 LGBT라고 한다. 


앨라이(Ally) :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 속의 차별을 관심 있게 찾아보고,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성적소수자의 앨라이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소수자들의 인권 개선을 지원하고, 차별에 반대하며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출처: 비온뒤무지개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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