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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 [이신부의 세·빛] 부활에 대한 믿음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05-27 16:37:20
  • 수정 2021-05-27 16: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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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간 목요일(2021.5.27.) : 집회 42,15-25; 마르 10,46-52

 

마르코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만나신 눈먼 사람이 두 사람 나옵니다. 하나는 8장에 나오는 벳싸이다의 소경이고 다른 하나가 오늘 복음인 10장에 나오는 예리코의 소경입니다. 벳싸이다의 소경은 이름 없는 무명씨이고 예리코의 소경은 바르티매오입니다. 마르코가 이렇게 소경 치유 기사를 배치한 이유는 8장의 말미에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하고, 이어서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는데 베드로가 펄쩍 뛰며 만류하다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는 야단을 맞았습니다. 


묵시적으로 베드로에게 동조하던 나머지 제자들도 군중과 함께 예수님께로부터 누구든지 당신을 따르려면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야 한다는 특별 교육을 받았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과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시고 타볼 산에 오르시어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기적까지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과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의지에 있어서 왜 믿어야 하는지 하는 이유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 목표를 보여 주셨다고 하겠는데, 그 목표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현실이요, 그 이유가 바로 거룩한 변화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이 목표와 이유를 눈을 뜨고 보게 된 사도를 상징합니다. 벳싸이다의 무명씨 소경은 비록 눈을 뜨기는 했으나 처음에는 희미하게만 보다가 나중에야 뚜렷이 보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다니시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마르코의 편집 의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벳싸이다의 무명씨보다 예리코의 바르티매오가 되라는 듯합니다. 부활과 십자가의 진리에 눈을 뜨라는 것이지요. 이는 복음선포의 공리입니다. 

 

복음선포의 목표요 이유가 되는 부활에 대한 믿음은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실 미래를 미리 보는 눈을 뜨게 해 줍니다. 이 전망의 근거는 과거에도 그렇게 이끌어주신 섭리에 대한 역사의식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의지는 하느님께서 변화시키라고 우리에게 명하시는 사회를 멀리 보게 해 줍니다. 나와 우리의 이해관계나 관심사에 갇히지 않고 공동의 선을 볼 수 있는 사회의식에 눈을 뜨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느님께서 열어 주실 미래를 보고, 이 미래를 함께 열어 갈 공동선도 볼 수 있는 눈을 뜨기를 바라셨습니다. 미래를 보는 눈은 역사의식에 근거한 부활 신앙이요, 공동선을 보는 눈은 사회의식에 근거한 십자가 의지입니다. 우리가 눈을 뜨면 예수님께서 비추어주시는 세상의 빛이 보입니다. 

 

교우 여러분, 용기를 내어 일어나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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