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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
  • 이기우
  • 등록 2023-02-01 07:25:57
  • 수정 2023-02-01 2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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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수요일(2023.2.1.) : 히브 12,4-15; 마르 6,1-6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서 무시를 당하신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독서는 신앙인들이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한 수련으로서의 고난에 대해 권고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마을 주민들은 그분을 어려서부터 봐 왔기에 더욱 그분의 신성에 대해 알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고향 사람들뿐만 아니라 바리사이들을 비롯하여 그분을 알면서도 믿지 않았던 유다인들은 죄다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선입견 때문에 그분이 일으키신 기적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설마 그분이 메시아이시랴 하고 지레 불신과 의심의 늪에 빠져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복음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과 독서의 대상들이 보여주는 믿음의 수준은 거의 극과 극으로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이러한 신앙 수준의 편차 현상에 대해 잘 설명해 주는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대체로 무신론에 기울어져 있는 편인데 비해서 심리학자들도 존경한다는 그는 신앙에 대해 이해가 깊은 인본주의 심리학자 머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입니다. 


그는 믿음의 심리를 말하기 전에 인간의 기본 욕구에 대해 파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식주와 수면 등 생존을 위한 기본적 생리 욕구를 채워야 하며, 그 다음에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편안하기를 원하는 필수적 안전 욕구를 채우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자아를 확장하고자 어딘가에 소속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받기를 원하게 되고, 이 단계에까지 욕구를 성취하고 나면 소속된 집단에서뿐만 아니라 더 큰 집단에서 그리고 사회에서도 존경을 받고자 하는 명예 욕구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대략 이 정도의 욕구가 성취되는 단계까지 이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머슬로우는 그 다음 단계에까지 지망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고 전제합니다. 이 단계는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 그러니까 그저 보존하거나 조금 확장하는 정도를 넘어서 - 그 이전의 욕구들을 초월하거나 심지어 희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그 이전의 욕구들 이상으로 강력한 동기가 부여된다고 설명합니다. 신학의 관점에서는 이 자아 초월 내지 자아실현의 욕구가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무시했던 고향 사람들이나 심지어 친척 형제들은 생리적이거나 안전하기를 원하는 욕구에서 멈추거나 기껏해야 소속 욕구 단계에 주저앉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여러 기적들을 일으켜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는 심리에 이끌리고 만 것입니다. 자기들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요.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할 뿐 아니라 믿음의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길은 대개 이 단계는 종교적인 열성으로 채워지는데, 신앙인들 안에서나 교회 안에서 존경을 받을 만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작은 옛 자아를 초월하여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새로운 큰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익보다 가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더 끌어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속한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의 공동선을 증진시킬 수 있게 되고 따라서 행복 지수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는 종교적인 열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애덕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믿지 않고 무시하는 고향 사람들이나 친척 형제들을 못마땅하게 여기시기는 했지만 미련을 두지도 않으셨습니다. 믿음이야말로, 또 다른 표현으로는 자아 초월의 의지라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계발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요 최고의 심리 상태로서 믿음의 심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믿음을 이끌어내시고자 숱한 기적을 일으키시기는 하셨어도 다른 이들의 믿음을 당신 능력으로 이끌어내실 수는 없었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인간에게 고유한 최고도의 정신 능력이고, 당사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런 믿음을 지닌 사람을 만나시면 크게 놀라셨고 또 기뻐하셨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예수님이나 하느님께 대해서 일으킬 수 있는 기적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우리가 이런 높은 수준의 믿음을 간직하게 되도록 이렇게 권고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모든 훈육은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히브 12,4.7.11.14)


이상의 말씀으로 간추릴 수 있는 덕목은 거룩함과 의로움, 또는 그 순서를 바꾸어서 의덕과 성덕입니다. 어느 것을 먼저 내세우든 이 두 가지 덕목은 신앙인 개인에게는 자신의 구원과 영적 성장을 위해서 중요하고, 가정으로서도 다음 세대에게 희망과 진리를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데 중요하며, 교회로서는 이웃 사랑의 대상인 겨레의 구원과 공동선 증진을 위해서 중요하며, 민족으로서는 고작 물질적 부유함으로 선진국 행세를 해 온 나라들을 흉내내지 않고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풍요로움으로 인류를 평화와 진리의 길로 이끌어서 사랑의 문명을 선도하는 데에 중요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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