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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문명을 이룩하는 것이 한류의 복음화
  • 이기우
  • 등록 2023-03-04 12: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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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 Leading the Apostles to Mount Tabor - Lorenzo Lotto(1512)


사순 제2주일(2023.3.5.) : 창세 12,1-4; 2티모 1,8-10; 마태 17,1-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하얘지셨습니다”(마태 17,2). 이는 오로지 세 제자만 데리고 오르신 타볼산에서 일으키신 특별한 기적이었는데, 평소에 선포하시던 복음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시는 한편, 장차 그들이 목격하고 체험할 부활 상황의 진수(眞髓)를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뒤덮더니,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하는 말씀도 들려왔습니다. 


타볼산에 오르기 직전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마태 16,16)이시라고 신앙을 고백하여 수제자로서 모범을 보였는데, 그 직후에 스승이 십자가 수난을 예고하시자 어이없게도 대놓고 반발하고 나섰습니다(마태 16,22). 


스승의 안위를 염려하는 충정에서 나온 돌출행동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겠으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가르침은 물론 복음을 선포하시던 심경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버린 사건이었습니다(2023년 사순시기 교황 담화 참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작정을 하시고 베드로를 포함한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타볼산에 오르시어 거룩하게 변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느닷없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자 더욱 놀란 나머지 초막을 지어 아예 그 산에 눌러 앉자는(마태 17,4) 엉뚱한 제안까지 했습니다. 베드로가 엉겁결에 내뱉은 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소리가 구름 속에서 들려왔던 것입니다. 


이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던 자리에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께서 소환하신 배경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섭리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도 그들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애초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던 역사적 뿌리를 상기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창세 12,1-4). 아브라함은 노아의 11대손입니다(창세 11,27). 


그런데 아브라함의 직계 조상들은 노아의 큰 아들 셈의 후손이면서도, 작은 아들 함의 3대손으로서 바벨탑을 지은 니므롯(창세 10,8) 무리와 어울려 칼데아 우르에서 살아왔는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이들은 영락없이 당신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기에 그곳을 떠나라고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후 전개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올곧게 지켜온 인물이어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대표합니다. 계명과 예언을 무시하고 하느님과 끊임없이 엇박자를 내기 일쑤여서 ‘거짓 목자’(에제 34,1-10)로 지탄받았던 지도자들과는 다릅니다. 


모세 이후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려온 이 사이비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거룩하게 변화되기는커녕 주변 민족들의 우상숭배 풍조에 물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회개시키고자 하느님께서는 남북 왕국에서 여러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죄다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그러자 기성 지도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던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더욱 엄중하게 달라지기 시작했으니, 이제 바야흐로 하느님께서 직접 인류 역사에 개입하실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머지않아 메시아께서 오실 것이며, 회개를 거부해온 백성 대신에 새로운 믿음의 백성을 불러 모으시리라는 예언이었습니다. 


특히 이사야 예언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당하시게 될 수난기약(受難旣約)에 대해 예언해 놓았습니다(이사 42,1-9; 49,1-7; 50,4-11; 52,13-53,12). 이사야는 이 새로운 시대에는 하느님을 닮는 거룩한 변화가 화두가 될 것인데, 메시아가 오셔서 불러 모으실 하느님 백성이 거룩하게 변화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수난이 메시아의 일생에서 먼저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수난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모세와 예언자들의 정통 노선을 따라서 메시아를 기다리던 소수의 아나빔들은 사도들을 따라서 그분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새 백성의 주축이 되었고, 이들이 그리스도교의 초대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이스라엘로 부르심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옛 이스라엘을 따라하지 말고 진정으로 거룩한 변화를 이루라는 말씀이 오늘 둘째 독서에 배치된 사도 바오로의 권고였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 


그래서 자신이 개척한 에페소 교회의 첫 주교로서 제자인 티모테오를 임명하면서 써 보낸 이 편지에서 사 도 바오로는 복음을 위한 고난을 솔선수범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 우리를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2티모 1,9)라고 썼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이 들은 부르심보다 더 비중있는 부르심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셨음을 상기시켜 준 것으로서, ‘복음을 위한 고난’이란 거룩한 변화를 위한 수난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것이 하느님을 닮기 위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타볼산에서 미리 보여주셨고, 또 실제로도 십자가 수난과 부활로 증거하신 거룩한 변화를 계승하라고 하느님께서 새로운 백성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타볼산의 거룩한 변모 기적 사건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거나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활동하시고 존재하셨던 분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영적 현실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이것이 전례입니다. 


우리는 미사에서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봉헌합니다. 말씀 전례에서는 첫째 독서로서 모세의 율법과 엘리야를 비롯한 여러 예언자의 예언이 봉독되고 이어서 둘째 독서로서 사도들의 권고가 봉독되고 있어서, 예수님의 복음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줍니다. 이것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타볼산의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찬 전례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성찬례가 거행됩니다. 이 거룩한 변화에 감추어진 신비에 대하여 교회는 마침 영광송을 장엄하게 바치며 찬송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거룩하게 변화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 예식은 이 거룩한 변화를 우리가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차원에서도 우리가 실현하겠다고 다짐하는 ‘아멘!’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렇듯 미사는 타볼산의 기적이 전례적으로 재현되는 현장입니다.


재위 25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주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편 순교 복자들을 시성하는 예식을 바티칸 대성전에서 하던 관례를 깨고 이례적으로 방한하여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백만여 명의 신자들 앞에서 주례함으로써 한국교회와 신자들을 크게 격려해 주었습니다. 


한편 기회가 닿는 대로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한 한국 교회의 역할을 당부하였습니다. 당신이 열 번이나 방문했던 폴란드 교회를 당신 도구로 쓰신 하느님께서 동구권과 소련의 공산진영을 붕괴시켜 동서냉전을 종식시켰던 것처럼, 지구상에서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도 이미 2백여 년 전에 실로 세계 교회역사상 유례없이 오묘한 섭리로 복음을 한민족에게 전하신 하느님께서 다시 한 번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복음화를 위해서 한민족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어 평화와 진리의 섭리를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청하여 오신 두 번째 방한에서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주제로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열어서 전 세계의 나라에서 온 주교들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언론이 이를 보도하게 만들어서 한반도 평화를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시켰습니다. 


이런 흐름을 익히 잘 알고 있던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 요한 바오로 2세의 당부를 전제로, 한국 주교단을 만난 자리에서 ‘기억의 지킴이,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달라고 당부하심으로써 복음화를 위한 교회 쇄신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보편교회의 여망을 반영하는 이 두 교황의 메시지는 이제 한민족을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복음화를 위한 당신의 도구로 쓰시고자 부르고 계신다는 것과, 이런 지향으로 한국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와 인류 평화를 위해서 맞갖은 노력을 봉헌하면 한반도의 평화는 선물로 얻어지리라는 복음적 훈수였습니다. 


최근 아시아와 전 세계에서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류 현상은 한민족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기에 손색이 없는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명백한 징표입니다. 백여 년 전에는 한민족의 운명을 자신들 멋대로 주물렀던 강대국들이 한민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으며, 더 많은 나라의 국민들도 한민족의 문화적 저력을 발견하게 되면서 전 세계에서 한민족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류 현상도 일종의 문화 수출이어서 돈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한계가 있는데, 한류가 사랑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게 해서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는 것이 한류의 복음화입니다. 


교우 여러분,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는 교회를 쇄신하여 아시아 복음화에 나서달라는 두 교황의 특별한 메시지도 기억해야 합니다. 유독 한국의 신앙인들에게만 전해준 이 메시지는, 모세의 계명도, 엘리야의 예언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말씀과 성사로 하느님과 통공을 이루고 기도와 선행으로 겨레와 통공하면서 한류의 복음화를 이루어달라는 당부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타볼산에서 세 제자에게만 복음의 진면목과 부활의 진수를 보여주신 예수님께서 한민족에게도 부활의 사기지은(四奇之恩)으로 이 거룩한 변화의 여정을 몸소 이끄시며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룩할 거룩한 변화는 머지않아 아시아 대륙과 전 세계에서 진리와 평화로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는 거룩한 변화의 밀알이 될 것입니다. 문화의 힘으로, 그리고 이를 복음화시키는 신앙의 힘으로 한민족이 세계 역사 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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