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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운동, 복음의 사회적 창안
  • 이기우
  • 등록 2023-05-02 16: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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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로치데일 협동조합 설립자들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2023.5.2.) : 사도 11,19-26; 요한 10,22-30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잘 알아 듣는다고 자신하셨습니다(요한 10,27). 그분의 가르침을 알아듣게 된 사람들이 안티오키아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삶의 형태는 공동체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는 부활신앙이 녹아있기 마련이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발휘하시는 사기지은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즉, ‘상하지 못함’의 은총은 공동체가 세상의 죄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사랑을 지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빛남’의 은총은 서로가 불신하는 세상의 어둠 속에서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이 지닌 하느님 사랑의 신앙과 상호간에 나타나는 인간 사랑의 신뢰로써 비추어주는 빛으로 나타납니다. 


그런가 하면 ‘빠름’의 은총은 공동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도직 활동을 사회에서 해 나감에 있어서 서로 증거하는 신용으로 나타납니다. 필요하다면 일에 있어서든 돈에 있어서든 약속을 지키는 행태로써 신용을 쌓아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해도 과연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으며 무슨 용도에 돈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 말만 믿고 아무런 담보가 필요 없이도 빌려줄 수 있을 만큼, 말에 힘이 있고 그 말만 듣고서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말이 말씀의 무게를 지니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대단히 중요한 점입니다. 사람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변화되는 장이 전례인데, 공동체에서도 전례에서처럼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느라 주고 받는 말이 말씀처럼 무게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동체가 인간의 구원에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웅변과도 같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은총이 종합된 결과가 ‘사무침’의 은총으로 나타납니다. 시간적 통공과 지역적 연대로 나타나는 이 은총은 공동체들끼리의 관계와 유대가 물 흐르듯이 맺어져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과 서로를 믿는 신뢰와 일과 돈에 관한 사회적 신용이 조화를 이룹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비유되어 온 교회의 뿌리요 원형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로서 교회적으로 공인받은 형태가 수도 공동체라면 사회적으로 공인된 형태는 협동조합입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이 공인하게 되면서 신앙의 질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게 된 위기 속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대책이 수도회 운동이었던 것처럼, 유럽 사회가 하느님 신앙이 위협받게 된 무신론 사태의 위기 속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대책이 협동조합 운동이었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사회적 운동이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에 유럽에서 출현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중세 시대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했습니다. 그 희생자들의 대다수가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던 농노들이었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해진 세상에서 사람 손을 대신할 수 있는 기계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 증기기관을 발명하기에 이름으로써 산업혁명을 촉발시켰고, 이는 또 다시 자본가들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 페스트가 하느님께서 내리신 재앙인 줄만 알고 성당에 모여 기도하다가 전염이 더욱 확산되어 기도하던 신자들은 물론 사제들까지도 많이 사망하게 되자,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해서, 때마침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유입된 이슬람 문명권의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인문주의 사상이 유행하여 문예를 부흥시키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사상이 촉발시킨 시민혁명으로 무신론 사조가 대유행을 하게 됨으로써, 무신론이 만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모두 오늘날 부르조아라고 부르는 신흥 자본가 계급을 위해서만 기능했을 뿐, 정작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돌아가지 못해서 이 두 가지 변화 사태는 빈익빈부익부의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아선상에서 생존에 허덕이던 노동자들의 소비생활을 돕기 위한 소비자 협동조합이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생산자 협동조합은 프랑스에서 시도되었으며, 고리대금의 폐해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도시서민들을 돕고자 독일에서는 신용협동조합 운동이 태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창시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려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들의 노력 덕분에 복음의 사회적 창안인 협동조합 운동이 전 세계로 퍼지는 과정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사기지은을 숱하게 발휘해 주셨습니다. 


이에 따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던 이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들이 벌인 노력에 대해 사회교리 반포 백주년이 되던 해에 특별히 기억하고 찬사를 보냈습니다(회칙 ‘백주년’, 16항). 이단 사상이 판을 치던 3세기에 교회의 정통 신앙을 위해 힘썼던 아타나시오가 바랐던 바가 이것이었으니, 정통 신앙은 정통 실천을 낳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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