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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보다 자비를, 탐욕보다 나눔을, 미움보다는 포용을
  • 이기우
  • 등록 2023-06-20 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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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화요일(2023.6.20.) : 2코린 8,1-9; 마태 5,43-48 


어제 예수님께서는 폭력을 단념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각성된 개인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에 이어지는 산상설교에서는 나눔으로 부유해지고 원수를 용서함으로써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닮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폭력과 함께 돈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많이 죄가 저질러져 온 문제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영성이 미숙하고 개인들 역시 각성되지 못하여 손쉬운 해결책에 매달려온 업보입니다. 세상에서는 원래 인간의 본성이 악에 취약하다고 보고 있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대책은 폭력에는 자비로 대체하고, 탐욕에는 나눔으로 대체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없는 이들의 것에 탐을 내고, 가난한 이들이 당하는 불행과 비극에 처해서는 나눔에 인색한 지경을 감안하시어 봉헌이라는 절차적 대책을 마련하셨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야 인간이 쓰는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시지만, 당신께 봉헌하여 모아진 돈으로 필요한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금고로 활용하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치에 따라서 사도 바오로는 비록 예루살렘의 주류 사도들에게 무시당하고 이방인 입교희망자들에게 할례를 주는 문제로 한바탕 곤욕도 치룬 비주류의 처지였지만(갈라티아서 참조; 사도 15,1-35), 깨끗한 정성으로 흔쾌하게 극심한 가뭄으로 곤란하게 된 예루살렘 공동체를 돕자고 코린토 공동체 신자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사실 코린토 공동체의 신자들도 가문이 좋거나 부유한 신자는 거의 없었지만(1코린 1,26-28), 본시 나눔은 가난한 이들이 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법이어서 그 가난한 신자들에게 십시일반으로 모금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 것이었습니다. 


이 나눔을 통해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공동체 신자들에게 깨우쳐주고자 했던 진리는 그리스도의 가난으로 우리가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다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2코린 8,9)이었습니다. 


즉, 예수님 덕분에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서 섬기고 나누게 된 우리가 먹고 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졌으니, 너그러이 나눔으로써 갑자기 궁핍해 진 예루살렘 공동체의 신자들이 그 위기를 벗어나게 되면 코린토 공동체의 신자들이 궁핍해질 때 그들이 또 나눔으로 도와줄 것이므로 모두가 부유해 질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이나 돈과 함께 사랑이 필요한 문제가 원수를 대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조국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무단으로 통치하던 로마군의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살려주심으로써 원수 사랑을 실천하신 바가 있었으며(마태 8,5-13), 헤로데 왕실의 고관 아들이 죽어간다며 살려달라고 청하던 그에게도 같은 원수 사랑을 보여주신 바도 있었습니다(요한 4,43-53). 


두 경우 모두, 죽어가는 당사자에게 가지도 않고 멀리서 말씀 한 마디로 고쳐주셨고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동족인 유다인 병자에게 대해서보다 훨씬 더 한 기적 능력을 발휘하시어 사랑을 보여주신 셈이었습니다.


이러한 당신 모범과 체험에 바탕하여, 예수님께서는 원수는 당연히 미워해도 좋다고 여기던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을 수정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고르게 사랑하시는데 이 사랑을 본받고 닮아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것이 완전하신 하느님을 따라 완전하게 사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예수님께서 당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며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던 원수들, 즉 사두가이나 바리사이들에게 굴복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사두가이들의 우두머리인 대사제가 장악하던 예루살렘 성전을 위험을 무릅쓰고 정화시키셨고, 바리사이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십계명을 과감하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계명으로 줄이셨으며 당신 제자들에게는 “서로 사랑하라.”는 단 한 가지 계명으로 또 줄이셨습니다. 이를테면 성전 종교와 율법 종교에 대한 혁명적 저항이었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올바른 제사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올바른 윤리를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폭력을 단념하고 가진 돈을 나누며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한 기준이며 우리가 죽은 후에 받게 될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의 삶을 가려줄 잣대입니다. 하느님의 엄정하심을 믿는 신앙인들이라면 최후의 심판에서 단죄받기 전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심판의 영성을 살고자 합니다. 


즉, 폭력보다 자비를, 탐욕보다 나눔을, 원수를 미워하기보다 차라리 원수를 포용함으로써 이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제사이며, 진정한 윤리입니다. 


돈은 가진 것만큼이 아니라 쓴 만큼만 자기 재산입니다. 죽을 때까지 쓰지 않고 모은 돈을 막상 죽을 때는 단 한 푼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자식들에게 남겨준 재산은 거의 100% 재산 다툼의 빌미를 남겨주고 가는 것입니다. 또한 흔히 원수로 보여지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또 다른 모습, 특히 자기도 싫어하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기에 싫어지고 미워하게 되는 수가 태반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결국 자기의 미운 구석을 끌어안는 일이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성화의 길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그 혜택을 받는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자비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믿게 만드는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원수에게 보여주는 정의롭고 관대한 처신이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또 다른 정성스런 봉헌을 할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결국 자기자신의 성화를 위한 영적 투자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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