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사랑의 황금율에 따라서 살아가기를
  • 이기우
  • 등록 2023-06-27 16:11:59

기사수정



연중 제12주간 화요일(2023.6.27.) : 창세 13,2-18; 마태 7,6-14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나서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땅 가나안으로 가서 자리 잡은 아브람은 일단 열심히 노력해서 가축과 금과 은을 많이 모았습니다. 함께 동행한 조카 롯도 양과 소와 천막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함께 살기에는 좁아서 하인들끼리 다툼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지켜보던 아브람이 롯에게 권했습니다.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세 13,9).


양보와 관용을 보여주는 아브람의 이러한 권고는 평소에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받은 말씀대로 살아온 처신에서 자연스레 나온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돌로 제단을 쌓고 가축을 제물로 바쳐 제사를 드리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조카인 롯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쭈어보고 고민도 하면서 얻은 결론인 셈입니다. 낯선 땅으로 가는 곳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이 제사였습니다. 인간관계를 위한 윤리의 뿌리가 하느님 제사에서 행하는 봉헌입니다. 아브람이 양보와 관용으로 조카 롯에게 행한 아름다운 처신의 비결이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인간관계의 윤리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인간관계에서 요청되는 사랑의 최대한을 일러주신 이 말씀은, 남이 우리에게 해 주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우리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사랑의 최소한일 것입니다. 이 사랑의 최대한과 최소한의 요청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좁은 문’입니다. 사랑의 황금율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이러한 최대한은커녕 최소한도 실행하지 않는 무뢰한(無賴漢)이라면 더 이상 엮이지 말고 현명하게 손절(孫絶)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6)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제자들을 당신이 가지 못하시는 방방곡곡으로 파견하시면서도,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마태 10,11).


그러나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태 10,14) 하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 주셨던 것입니다. 결국, 거룩하고 고귀한 삶은, 최선으로서는 남이 자신들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선행을 먼저 남에게 해 주는 것이고, 적어도 최소한 남이 자신들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죄악은 결코 남에게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자연에서 이 황금율에 의한 질서가 나타납니다. 자연계의 동식물들은 약육강식의 무법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상호의존되어 있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현상을 관찰한 수학자들은 앵무조개의 껍질이라든가 해바라기의 디자인에서도 수학적 황금비율을 찾아내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 같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에도 이 황금비율이 적용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자신의 그림에 이 비율을 적용했습니다.


계산하기를 좋아하는 수학자들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이 황금비율을 재생산하여 응용할 수 있도록 연구했습니다. 그 비율을 따져보니, 1:1.618 정도가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처음 발견한 이 황금비율은 이를 활용하여 황금분할을 할 경우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신용카드, 주민등록증 등이 이를 응용한 사례입니다. 이를 적용하면 오래 바라보아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황금율은 신성에서 우러나오는 영성과 인성에서 우러나오는 투신의 조화와 안정입니다. 균형과 순환입니다. 역사상 알려진 성인들은 이 신비로운 이치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하고 자신의 삶에서 추구했던 선구자들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나와 깊은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힘과 기운을 얻어서, 세상에서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처럼 보잘것없는 이웃을 만나면 하느님을 대하듯이 정성을 기울여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람이 태어나 자랐던 칼데아 우르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곳은 바벨탑 이래로 하느님을 믿지 않고 힘만 자랑하던 니므롯(창세 10,8-9)의 뜻을 좇아서 우상숭배 풍조가 만연했었기 때문입니다. 수메르 문명으로 발달한 그 풍조가 역겹고 지겹게 느껴질 무렵에 아브람의 그러한 마음을 읽으신 하느님께서 낯설지만 새로운 곳으로 가서 하느님의 황금율에 기반한 새로운 문명을 일구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사랑의 황금율에 따라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으로, 그러나 사실은 좁아 보일 뿐 생명으로 이끄는 그 넓은 문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네 삶이 하느님의 황금율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고결한 안정성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