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간 목요일(2024.12.5.) : 이사 26,1-6; 마태 7,21.24-27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12월 3일 밤 11시에 느닷없이 발령된 비상 계엄령은 불과 3시간만에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로 무산되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이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할 때에나 발령되어야 할 비상 계엄령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치지도 않고 불법적으로 발령되는 바람에 한낱 소동으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국회의사당 포위 작전에 동원되었던 군인들만 하릴없이 헛수고를 하고 부대로 원대 복귀했습니다.
민심에 기초하지 않은 정치 권력이 특별 활동비 등 부당한 예산을 삭감 당하고 김건희의 범죄에 대한 상설 특검법이 발동될 기미가 보이자 불법적인 비상 계엄령을 발동했다가 제 발에 도끼를 찍은 친위 쿠데타요 내란 범죄입니다. 너무도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상황이 벌어진 이제 대통령의 직무 정지는 불가피해졌습니다. 이처럼 황당한 시대의 징표를 보면서 우리는 더욱, 반석 위에 지은 집을 지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 집은 진리 위에 세우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주님 손의 작품”(대림 제1주일)이므로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대림 제1주간 월요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 따라서, 가톨릭 4대 교리를 ‘주님의 빛’을 가리키는 신앙 진리의 공리로 삼고, 그 빛이 인도하는 대로 ‘걸어가기’ 위한 가톨릭 사회교리의 주요 원리 다섯 가지를 신앙 진리의 실천 명제로 삼아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리자면, 믿을 교리와 지킬 교리를 간추린 4대 교리는 천주 존재(天主 存在) · 강생 부활(降生 復活) · 삼위일체(三位一體) · 상선벌악(賞善罰惡)이며, 복음화를 위해 교회가 가르치는 5대 명제는 인간 존엄성(人間 尊嚴性) · 사회 공동선(社會 共同善) · 재화 보편성(財貨 普遍性) · 보조성(補助性) 그리고 연대성(連帶性) 원리입니다.
우선, 첫째 공리인 ‘천주 존재’의 교리에 관해서 화요일과 수요일 두 차례에 걸쳐 ‘가치’와 ‘생명’의 관점에서 묵상한 바를 전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첫째 공리에 대한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둘째 공리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사람’의 관점에서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초점인 ‘사람’은 하느님의 가치에 뿌리를 내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가치도 생명도 주체는 사람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복음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영원한 생명에 희망을 두는 사람들의 삶으로 역사를 완성하십니다. 인류 역사를 하느님 나라에로 완성하는 시점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이 ‘사람’이 성취하는 삶에 따라서 앞당겨질 수도 있고 또는 늦추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완성하실 역사를 앞당기게 될 이 ‘사람’은 가난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신실한 아나빔(anawim)으로서 메시아 백성에 속하며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과 가르침에 따라서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당신 집의 기반이 될 반석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하루를 이루는 낮과 밤은 우리의 노력 없이도 저녁이 되면 어두워졌다가 아침이 되면 밝아지는 자연 리듬이요 자동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사실 대림 시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빛은 때가 되면 그저 어둠을 비추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세상 현실을 밝히 보게 만드는 평면적이고 정적인 기능만 갖춘 게 아닙니다. 오류의 어둠을 사라지게 만드는 진리의 빛은 불의하게 쌓아 올린 모래성을 헐어 버리고 정의의 반석 위에 한층 한층 견고하게 쌓아 올린 집을 세우는,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기능도 갖추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래성과도 같았던 바빌론의 탑을 허무시고 반석 위의 집과도 같아야 할 새 예루살렘의 도성과 성전을 세우시는 역동적인 빛이십니다. 우주 안의 물리적인 그 어떤 빛보다 밝디 밝은 진리의 빛이십니다. 태양 빛이 지구에 사는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이지만, 우주 안에서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 은하계 안의 촛불과도 같이 희미한 빛입니다.
인류는 우주를 관찰하기 위해 거대한 망원경 위성을 1990년에 지구 상공 위에 쏘아 올렸습니다. 이것이 허블 망원경(Hubble Space Telescope)입니다. 이로써 인류는 지구 대기권의 기상 상황과 상관없이 우주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망원경 위성은 지구 상공 559km에서 96분마다 한 번씩 지구 궤도를 돌면서 전방위 각도에서 촬영한 우주의 전경을 지구로 송출하고 있습니다. 허블 망원경으로 바라본 우주에서는 태양 빛조차도 희미할 만큼 우주의 어둠은 짙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심정의 역사적 차원을 마치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처럼 노래합니다.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리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이사 26,1-3).
견고한 성읍과 같고 든든한 성벽이요 보루와도 같이, 한결같은 심성을 지니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메시아 시대의 주역, 즉 아나빔입니다. 이들이 역사의 성문을 활짝 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교만스럽게 스스로 높인 자들의 도시를 헐어 버리면, 가난하고 힘없다고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이들의 발길이 그 도시의 폐허를 짓밟을 것입니다(이사 26,5-6).
이사야 예언자는 “주 하느님을 영원한 반석으로 신뢰하는”(이사 26,4) 아나빔들에 의해 이룩될 놀라운 역사적 상상력을 동족들에게 불어 넣고 있습니다. 이 또한 바빌론의 몰락을 연상케 하며 새 도읍 예루살렘의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메시아로 알아 보고 맞이하는 아나빔들에게 이사야 예언자보다 훨씬 더 현실감 있게 하느님을 기다려야 할 대림의 행동을 촉구하십니다. 매사에 그리고 평소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슬기로운 이들이라는 것이며, 입으로는 ‘주님, 주님!’하고 경건한 척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반대로 자기의 뜻을 앞세운 사람들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교만과 욕망으로 지은 바벨탑은 심판의 비바람이 닥치면 여지없이 무너지기 마련이지만, 겸손과 성실로 쌓아 올린 새 예루살렘 도성은 심판의 비바람에도 끄덕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인들의 오물을 씻어내고 날려버려서 역사 안에서 우뚝 솟아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 말씀은 개별 인생들에 있어서나 인류 전체의 문명에 있어서 모두 관통하는 진리를 밝혀주고 있어서 마치 현미경으로 사물을 미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처럼 또는 망원경으로 먼 곳을 끌어당겨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개인들의 현실이나 역사의 흐름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역할을 보게 하는 계시의 빛입니다.
실제로 바빌론 제국은 기원전 18세기로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약 1,500년 간 아시아 서방을 다스렸던, 당시까지 알려진 세계 최대의 문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산물은 페르시아 전쟁의 패배 이후 주도권을 상실하고, 뒤이어 일어난 핼레니즘 문명과 로마문명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바빌론 제국에 이어 일어났던 로마 제국은 지중해 전반에 걸쳐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세 대륙의 접점을 다스리던 세력으로서, 기원전 27년에 일어나서 동로마제국이 이슬람세력에게 멸망하는 1453년까지 역시 약 1,500년 간 존속한 유럽의 문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서기 1세기경에 로마제국에 의한 박해를 받으면서 이 로마문명의 사악한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었으므로 ‘로마’를 또 다른 ‘바빌론’으로 묘사하였고,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에 입각하지 않은 ‘바빌론’이 순식간에 사막의 먼지로 사라졌듯이 ‘로마’ 역시 그러할 것임을 암시하였습니다. 이미 구약성경 시대의 말기에 다니엘에 의해서도 예언된 바 있었던 내용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세워진 문명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바빌론 제국 임금 네브카드네자르 2세가 꾼 꿈을 다니엘이 해몽한 내용에 첫 번째 나라가 바빌론이요, 마지막 네 번째 나라가 로마였던 것입니다(다니 2,31-45). 로마제국은 바빌론제국의 최전성기 영토까지 포함한 넓은 강역을 정복하였지만, 이 로마조차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릴 것이고 그 다음에 출현할 나라와 문명은 하느님 나라와 사랑의 문명임을 다니엘에 이어 사도 요한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이래로 그리스도교 문명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난 2천 년을 흘러 왔습니다. 로마 제국이 힘없이 무너져 버린 이래로, 가톨릭교회는 로마제국이 다스리던 정치적 영토를 신앙의 힘으로 정신적으로 지난 2천 년 동안 다스려 오고 있음은 물론, 오늘날에 와서는 전 세계에 걸쳐서 정신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한 문명의 설계도를 원래대로 밝혀내고자 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로 이 복음화 제3천년기에 ‘예수의 선교’를, 다시 말하면 사랑의 문명 건설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사명」, 1항, 1990). 그러니까 유럽 대륙에 십자가를 세웠던 복음화 제1천년기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 십자가를 세웠던 제2천년기에 이어서, 이 제3천년기에는 아시아 대륙에 십자가를 세울 뿐만 아니라 지난 2천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본격적으로 사랑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이제, 복음화 제3천년기를 맞이하는 중차대한 역사적 시점에 가톨릭교회가 이 같은 엄중한 선언을 하기에 이른 배경을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사람의 신체가 진화되어온 구석기시대 3백만 년과, 인간 의식이 진화되어온 신석기시대 1만 년, 그리고 물질문명들이 시작되어 문명의 진화를 시작한 역사시대 5천 년을 다 합쳐도,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구를 조성하신 135억 년에 비하면(빅뱅 가설) 1만분의 1도 되지 않는 짧은 찰나(刹那)의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뜻을 비로소 실현할 수 있게 된 이 ‘사랑의 문명’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신 것이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 오신 셈입니다. 사람의 신체와 인간의 의식이 진화되어 이룩한 문명 진화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하느님 나라를 향한 준비 과정이었고, 인간은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현실 안에서 하느님 닮은 영성을 진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서 당신의 집을 지으시려는 튼튼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특히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 신앙을 살아가는 ‘사람’을 통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지으시고 사랑의 문명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 신체의 진화, 인간 의식의 진화 그리고 물질 문명의 진화에 이어 영성의 진화로 이어지는, 이토록 확실한 역사 전망의 근거 위에서 우리네 인생과 미래의 희망을 하느님의 반석 위에 짓는 슬기를 배워야 할 때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