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2024.1.3.) : 1요한 2,29-3,6; 요한 1,29-34
가정 성화 주간의 다섯째 날인 오늘은, 주님 공현 전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먼저 알아본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기의 가능성을 역시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고 또 알아 보아야 할 부모의 특권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모는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특권을 부여 받은 생명의 화가입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책임을 맡은 부모라는 존재는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처럼 자녀가 부여 받고 있는 존엄성과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알려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자렛 성가정의 부모는 예수님을 잉태하기 전부터 천사의 알림으로 그분의 존재를 알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분은 큰 인물이 되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루카 1,32)이라고 전해 들었는가 하면, 요셉은, ‘그분은 하느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마태 1,21)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낳기 전부터. 그분을 알 수 있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어렵사리 구해 찾아 들어간 동굴에서 아기 예수를 낳았을 때, 알리지도 않았는데 목동들이 찾아와서 축하를 하는 일이나, 더구나 먼 동방에서 나이 지긋한 현인들이 세 명이나 찾아와서 아기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리고 예물을 바치는 뜻밖의 사건을 겪으면서 부모가 천사로부터 들었던 전갈은 확신으로 굳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던 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아기를 하느님께 봉헌하려던 요셉과 마리아는 미리 알고 와서 기다리던 두 명의 노예언자를 만났습니다. 시메온과 한나가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기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고 장차 겪게 될 운명까지도 하느님의 눈으로 내다보고 알려주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부모로서 예수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알려준 또 다른 천사들이었던 셈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 남녀들이 요셉과 마리아 부부를 본받아 성가정을 이룩할 수 있도록 혼인 교리를 통해서는 혼인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알려주고, 혼인 성사를 통해서는 혼인을 축복해주면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선언하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의 세례식을 통해서는 아기의 앞날을 축복해 줍니다. 첫 영성체 교리와 주일학교 과정을 통해서도 자라나는 아이들이 하느님의 축복 안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가능성을 찾아가도록 부모를 도와줍니다.
이 같은 교회의 배려는 그리스도인 부부들이 요셉과 마리아의 나자렛 성가정을 닮아서 성가정을 이룩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베푸는 것입니다. 혼인과 출생이라는 사건들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나타났을 뿐 크게 보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기본적인 영적 통찰을 전제로 한 사목적 조치입니다.
그래서 아기와 아이들은 자신들의 존엄성과 가능성을 알아보는 부모의 안목과 통찰의 크기와 범위 내에서 성장합니다. 귀하게 알아보고 정성 들여 키우는 부모를 통해서는 예수님처럼 큰 인물로 자라날 수 있겠으나,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별 정성도 기울이지 않는 부모를 통해서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자라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아기-어린이-청소년의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안목과 통찰 그리고 배려는 신체와 정신과 영혼 등 전인적으로 작용하며 그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19세기 독일에서 식물의 성장과정을 관찰하여 무기물질에서 유기물질로 합성되는 과정을 연구한 화학자 리비히(Justus von Libig)는 식물의 생장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에 의해 달라진다는 ‘최소량의 법칙’을 발견하여 세상에 알렸습니다. 높이가 다른 작대기들을 돌려 붙인 물통에 물을 부으면, 아무리 긴 작대기들이 둘러싸고 있어도 결국 물통에 담기는 물의 높이는 가장 낮은 작대기가 결정하는 이치가 식물의 생장에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는 식물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전인적 성장과정에도 어김없이 작용합니다.
나자렛 성가정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들의 가정을 성화시키려는 현명한 그리스도인 부부들은 자녀들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섭생과 운동에 신경을 쓸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학식과 인성이 고르게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영혼도 건강하도록 기도와 희생을 통해 영성이 자라나도록 배려합니다.
그런데 꼰대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성은 고사하고 인성조차도 엉망인 상태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녀들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기도할 줄 모르고, 사랑할 줄 모르며, 봉사할 줄도 모르는 괴물들이 수두룩합니다.
2024년 12월, 한 달 내내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했던 내란 정국을 지켜 보면서, 주동자 윤석열과 김건희, 공모자 김용현과 주요 안보 책임 사령관들 그리고 추종자 국민의 힘 당과 전광훈 목사와 그 지지자 등 온갖 괴물형 인간들을 목도하다 보니 이 같은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리승만과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진 괴물 계보가 아직도 끊이지 않았는가 생각하니, 이 민족의 고난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고 하느님께 탄원하게 됩니다. 이들 모두가 기도와 사랑, 봉사를 배우지 못하고, 그저 돈과 권세 그리고 힘이 최고라는 세속적인 가정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자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그분을 알아보고 이렇게 알려주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ㄴ) 우리는 미사에서 영성체를 하기 전에 사제로부터 이 외침을 되풀이해서 상기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는 일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된 바, 우리도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는 자녀로 태어나 자라고 있음도 깨닫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1요한 3,1) 깨달음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우리네 가정들에서 자녀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12월 14일 국회에서 대통령 윤석열이 탄핵되어 직무가 정지된 후에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파면되기를 촉구하며 연일 열리는 시민 집회에서 두드러진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도 몰려드는 수많은 인파도 감동적이지만 시위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연령층이 2~30대의 젊은이들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엄중한 시위 분위기를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축제로 바꾸고 있어서 놀랍습니다. 이래서 괴물들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적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느니만큼, 우리나라는 이 위기를 능히 이겨내고 승리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있어서도 모범이 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