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국제문제…교차감시체제 구축하는 길
국제기준 안전관리, 사고 대응에 유리한 방안
아니나 다를까, 한수원사장 공모 심사에서 기대했던 원전엔지니어 출신 후보들이 탈락했다. 민간의 독립적인 안전감시활동을 해오던 전문가들이 후보에 올랐다가 미끄러지니, 원전위험의 교차감시체제를 주장해오던 필자로서는 그나마 내부에서의 교차감시 가능성이 무산된 것 같아서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필자는 교차감시체제의 취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선진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큰 원칙은 주권기관들이 교차감시를 한다는 것이다. 주권자들이 위임한 주권기관들이 교차감시를 하면 직접 감시하는 것 못지않게 안전의 확률을 높여 줄 수 있다. 우리는 오로지 임기제 대통령과 그 산하의 행정부만이 그러한 ‘위험’을 다루고 있다. 이 상황이 올바른 것일까? 헌법 제1조에도 규정하고 있듯이, 국민의 주권은 모든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이다.
그렇다면 이 위험시설의 본질을 이해하고 문제를 포착하고 대처의 방향을 잡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적인 안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기술자들의 현장경험이다. 이름뿐인 안전대책은, 기술체계 혹은 조직의 복합성을 통제 가능한 것처럼 기만할 수 있다. 오히려 당사자인 기술자나 조직원들을 '안전 불감증'과 같은 위험한 행동으로 인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세계의 3대 핵발전 사고는 감시체제의 부실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 (사진 = 경향신문)원전위험은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가령 체르노빌에서 사고가 난 후 800km나 떨어진 독일 남부 낙농지대에 방사능낙진이 대량으로 떨어져 몇 년간이나 우유를 못 먹었다. 일본 핵폐수의 바다방출로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에서 터지면 바람따라 한국도 다치고,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도 다친다.
원전위험에 대한 교차감시체제의 구축은 국가의 의무인 것이다. 이 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한수원의 사장을 민간기술자가 맡았으면 하는 기대를 하였던 것이다.
필자는 3년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원전안전기술 부문에서 독립적 활동을 하는 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다. INRAG라고 하는 독립적 원전기술자 그룹의 대표인Nikolaus Müllner교수(BOKU대학)와 만나 그들 그룹의 활약을 들은 바 있다.
INRAG(International Nuclear Risk Assessment Group)는 유럽의 원전위험을 평가하는 민간전문가 그룹이다. 정부나 특정세력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네트워크다. 지구촌에서 귀중한 존재다.
회의는 뮬너회장의 INRAG소개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인 단체다. 각자 자신의 직장 혹은 독립적 연구자/컨설턴트 로서 원전현장에 관련된 엔지니어 일을 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네트워크다. 원전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구성원이 많은 편이다. 상당수는 현장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비판적인 자세를 갖고 우리 단체에 참여했다.
구성원은 독립적 자율적으로 참여한다. 국제적 인사가 많다. 그리고 30개 단체가 INRAG 네트워크에 가입되어 있다. 독일 불가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버지니아) 등 원전종사자 출신들도 가담하고 있다. 모두 30인으로서 이중에는 세계적 저명인사도 있다.”
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하는 일을 설명한다.
“원전의 위험을 평가하는 프로젝트를 모두 참여해서 공동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부분적으로 소그룹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유럽 전체의 노후원전 수명평가를 했던 사례가 있고, 2018년에는 벨기에 원자로 균열 사건에 대해 그 정부의 조사결과에 반대해 컨퍼런스를 개최하여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에 의한 위험성평가 연구도 한쪽에서 진행하고 있다. 만약 한국정부가 요청한다면 기꺼이 도울 자세가 되어 있다. 그린피스 한국지부의 요청으로 신고리 5·6호기 사고발생 시 피해규모에 대한 분석을 진행중이다.”
이들은 각국 정부로부터 독립적일 뿐 아니라 친원전 국제기구인 IAEA로부터도 독립적이다. 만약 이들 중 혹은 국제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인사가 한국의 안전에 관련된 일을 한다면 어떨까. 위험예방과 안전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준다면 아마도 그는 국제적인 기준에 맞추어 안전관리의 틀을 구축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문제가 발견된다면 그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책을 강구하려 들 것이다. 지구촌의 지혜가 자연스레 동원될 수 있다. 안전의 확률을 훨씬 높일 수 있다.
교차감시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원안위원장을 국제적 안전기술자로 임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원전사고는 그 자체로 국가의 재앙이자 국제적 문제이지만, 사고 후의 국가의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 중대한 문제가 있다. 프랑스 등 유럽 각국 그리고 미국과 일본에 훨씬 못 미치는 교차감시체제 아래에서 경미한 사고라도 발생하면 국가차원의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신뢰추락도 당연하다.
얼마전 이 대통령은 ‘원전이 안전하다면 수명연장해서 쓰고~’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고리2호기는 친원전 국제기구인 IAEA에서 만든 국제적인 안전기준에조차 부합하지 않은데도 원안위가 수명연장을 결정했다. 대통령의 말이 무시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안전에 관한 한 대통령의 말은 주권자 국민의 뜻을 대신한 것이다. 주권자 국민도 무시당한 것이다.
원안위원장에 외국인이 취임하더라도 요즘같은 AI시대는 즉시통역이나 정확한 통번역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국내 기술자문역을 그 위원장 곁에 두면 된다. 다음 위원장을 뽑을 때에는 국제적으로 원전위험의 예방에 대해 자타가 공인하는 안전기술자를 적극적으로 초빙하는 게 좋다. 주권자 국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국제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시기는 앞당길수록 좋다.
이원영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