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공원을 걷다 보면 꿀벌이 꽃에서 꽃으로 바쁘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그 이동 과정에서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돕는다. 꿀벌이 의도하지 않은 이 '수분(授粉) 효과' 없이는 꽃도, 과실도, 농업도, 생태계 전체도 유지될 수 없다. 꿀벌이 만드는 꿀의 경제적 가치는 수백억 원이지만, 꿀벌이 수분을 통해 유지시키는 생태계의 경제적 가치는 수천조 원에 이른다는 추계도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얀 물리에르-부탕(Yann Moulier-Boutang)은 이 꿀벌 이야기를 현대 인간 경제에 적용했다. 그의 2011년 저서 <인지 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그동안 꿀만 보고 수분을 무시해온 것은 아닌가?
논쟁의 지형
최근 기본소득 논의가 다시 활발하다. 기술 발전, 일자리 불안, 불평등 심화 등이 주요 배경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두고 의견은 여전히 크게 갈린다.
찬성 측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한 존재이며, 최소한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자동화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에 기본소득은 강력한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노동 의욕을 떨어뜨리고 재정 부담만 키울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 논쟁을 오래 지켜보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든다. 양측 모두 '노동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찬성론은 자동화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도덕적 자비'의 언어에 기대고, 반대론은 '노동 대가의 공정성'이라는 언어로 맞선다. 그러나 이 논쟁은 결정적인 질문 하나를 빠뜨리고 있다.
'우리는 정말 노동할 때만 경제에 기여하는가?'
꿀벌이 남기는 것
물리에르-부탕은 말한다. 고전 경제학은 꿀만 계산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고, 논밭에서 곡식을 거두고, 사무실에서 계약을 성사시키는 직접적 생산 — 이것만이 가치 창출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경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로 움직인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행위를 생각해보자. 한 사람의 이동은 교통 데이터를 만들고, 카드 결제는 소비 패턴 데이터를 남기며, 스마트폰 위치 정보는 도시 인구 흐름의 지도를 그린다. 이 데이터들은 교통 시스템을 최적화하고, 상권을 분석하고, 도시 계획을 수립하는 데 활용된다. 카카오맵이 수백만 명의 경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교통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그 수백만 명이 매일 이동하며 데이터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식당 리뷰를 남기는 행위는 어떤가. 그 리뷰는 알고리즘이 음식 취향을 학습하는 훈련 데이터가 되고, 식당의 신뢰도를 구성하며, 지역 상권 전체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저녁에 넷플릭스에서 어떤 영화를 선택하고 어느 장면에서 멈추는지는 콘텐츠 산업 전체의 제작 방향을 조형한다.
이것이 수분이다. 꿀벌이 꿀을 모으려는 의도로 날아다니지만 수분이라는 부산물로 생태계 전체를 살리듯, 우리는 각자의 목적으로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경제 생태계 전체가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물리에르-부탕은 이것을 '인지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본다. 지식, 정보, 네트워크, 관계가 가치의 원천이 된 시대에, 단순한 근육 노동이 아닌 인간의 존재 방식 전체가 경제적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세 가지 수분 효과
이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경제 기여는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 적어도 세 가지 차원에서 '수분 효과'가 일어난다.
첫째, 정보 유통
사람들이 검색하고, 공유하고, 댓글을 달고, 소셜미디어에서 반응하는 모든 행위는 정보 생태계를 유통시킨다. 미국의 기술사상가 재런 러니어(Jaron Lanier)는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2013)에서 이를 '데이터 노동(data labor)'으로 명명했다. 우리가 구글을 '무료'로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검색 데이터로 구글 AI를 훈련시키며 '노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동은 지금 이 순간도 진행 중이지만, 임금은 한 번도 지급된 적이 없다.
둘째, 공간 이동
도시학자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는 현대 경제를 '흐름의 공간(space of flows)'으로 개념화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버스를 타고, 공항을 통과하는 이동 자체가 네트워크 가치를 만든다. 실제로 우버, 에어비앤비, 배달 플랫폼의 기업 가치는 수백만 명의 이동 데이터와 위치 데이터가 축적된 결과다. 이 데이터를 '기증'한 것은 우리 모두지만, 그 가치를 독점하는 것은 플랫폼 기업들이다.
셋째, 연결과 관계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Hardt & Negri)는 <다중(Multitude)>(2004)에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은 관계, 돌봄, 소통, 신뢰 같은 '비물질 노동'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고, 이웃이 서로를 돕고, 시민이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는 행위들은 사회적 자본을 만들고 경제가 작동하는 토대를 형성한다. 이 역시 측정되지 않고, 보상받지 못한 수분 효과다.
배당의 논리
이 세 가지 수분 효과를 종합하면, 기본소득에 대한 새로운 정당화 논리가 열린다. 기본소득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는 자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미 수행하고 있지만 한 번도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한 기여에 대한 '사회적 배당'이다.
이 관점은 역사적 선례가 있다. 18세기 말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은 토지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보고, 그것을 사용하는 대가로 모든 시민에게 배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영국의 G.D.H. 콜(Cole)은 시민을 생산자이기 이전에 소비자이자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고, 공동체 기여에 기반한 사회적 배당을 제안했다. 제임스 미드(James Meade)는 공동 자산에서 발생한 수익을 국민 모두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경제 모델로 정식화했다.
페인이 토지를 공동 자산으로 봤다면, 오늘의 공동 자산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십억 명의 이동 데이터, 검색 기록, 소셜 관계, 소비 패턴이 쌓여 만들어진 디지털 생태계다. 물리에르-부탕의 언어로 하면, 우리 모두가 수분 노동을 통해 함께 가꾼 '인지 공유지(cognitive commons)'다. 기본소득은 이 인지 공유지의 수익을 다시 모두에게 돌려주는 메커니즘이다.
반론과 현실
물론 이 관점도 만능은 아니다. "그렇다면 가치 기여를 어떻게 측정하느냐"는 질문이 즉각 제기된다. 모든 사람의 수분 기여가 동일하지 않을 텐데, 획일적 기본소득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도 남는다.
재정 문제도 현실이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디서 마련하느냐는 질문에 "데이터 배당"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무료로 수취해온 데이터 노동에 세금을 매기거나, 알래스카 영구기금처럼 공동 자산의 수익을 모든 시민에게 배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이미 일부 정책 실험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노동 의욕 저하 우려도 있다. 그러나 수분 비유는 이 반론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꿀벌에게 꿀 이외의 보상을 준다고 해서 꿀을 모으지 않는 게 아니듯,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활동을 그만두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존의 공포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여를 가능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노동의 시대
꿀벌이 꿀만 만드는 것이 아니듯, 인간은 공식적인 노동을 할 때만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걷고, 이동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고, 관계를 맺는 — 살아가는 행위 전체가 경제 생태계를 유지하는 수분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사실을 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기본소득 논쟁의 진정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날이 온다면, 기본소득은 더 이상 '게으른 자에 대한 자비'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가꾼 공유지에 대한 배당'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논쟁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건설적인 언어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