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5주간 금요일 (2026.05.08)
: 사도 15,22-31; 요한 15,12-17
초대교회에서 이방인 입교자들의 할례 문제로 열린 사도회의는 자칫하면 신생 교회가 분열될 뻔했던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교회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이 모여서 숙의하는 전례가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에는 공의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스물 한 번째 공의회입니다. 2천 년 교회 역사에서 평균 백 년에 한 번꼴로 열린 셈입니다. 이 전통에서 교회의 문제를 다루는 기준이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지켜야 할 계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우선 이 사랑의 계명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요한 15,9) 하신 말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이 계명은 다른 복음사가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전해 주었던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서, 요한 복음사가는 “서로 사랑하라”는 한 가지 계명으로 간추려 가르치셨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계명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분명한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풀이하여 말씀하시기를,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하셨는데, 과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목숨을 바칠 만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사랑의 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전반부에는 불특정 다수의 유다인 군중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시던 활동(케리그마)에 정성을 기울이셨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열두 명을 눈여겨보신 다음에 이들로 제자를 사도로 양성하시던 활동(디다케)에 정성을 쏟으신 것이 그 첫째요, 제자 중 하나인 이스카리옷 유다의 밀고로 말미암아 초래된 때이른 죽임을 저항하거나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신 것이 그 둘째이며, 유다만큼은 아니어도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하여 나머지 제자들 모두가 체포되어 가시는 예수님을 보호해 드리지 않고 도망쳐버렸는데도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단 한 번도 제자들을 원망하지 않으셨고 도리어 제자들을 포함하여 당신의 죽임에 가담한 모든 유다인과 이방인들을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고 돌아가신 것이 그 셋째입니다. 특히 이 셋째의 용서 행위가 제자들을 크게 회개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도 더 이상의 비겁함과 소심함을 떨쳐버리고 담대한 믿음을 지닌 사도로 변신하여 용감하게 자기 목숨을 예수님을 위하여 바쳐드렸습니다. 요한 사도만이 성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박해를 받아가며 선교하다가 백 살 무렵에 죽었고, 나머지 열 사도는 모두 순교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과 열한 제자는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목숨 바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인간의 눈높이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그분은 늘 기도로써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통공하셨고, 하느님께서 일러주시는 말씀을 가르치셨으며, 하느님께서 하라고 분부하시는 대로 행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이룬 하느님 아버지와의 통공을 바탕으로, 제자들과도 통공하는 가운데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승의 갑작스럽고 억울한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한결같은 사랑으로 대해 주시려던 그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나서 제자들은 완전히 바뀌어 스승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각오로 살았습니다. 스승의 사랑을 깨달은 그 힘이 그들을 사도로 부활시킨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면제하는 결정을 한 사도들이 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바르나바와 바오로에 대해서도 이렇게 신원을 보증하였습니다: “이 두 사도 역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사도 15,26). 그러니까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을 담은 유일한 계명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 척도는 “목숨을 내놓는 사랑”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실증한 바 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아시아의 전통적 가치로 알려진 불가(佛家)의 자비(慈悲)나 유가(儒家)의 인(仁)과 비교할 때, 그 선명한 생애와 실제 죽음의 역사성에 있어서 뚜렷하게 대비되는 진리입니다. 바로 이 점이 아시아인들, 특히 불교적 가치관과 유학적 가치관을 신봉하는 아시아 종교인들과 대화하고 협력할 때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으로 가르치거나 행동으로 입증해 보여야 할 가치입니다.
고대와 중세 또 근세 이래 동방에 선교하려던 서방 교회의 행동 동기는 유럽식의 교회 모델과 서구적 가치를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식민정책에 기대어 일방적으로 강요하려던 것이었습니다(아시아 교회, 9항). 아시아에 선교하고자 하면서도, 그들은 자비(慈悲)나 인(仁)과 같은 아시아적 전통 가치를 존중하지 않았음은 물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계명대로 아시아인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도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늘 독서에서 예루살렘에 모인 유다인 사도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그리스적 가치의 건전한 윤리를 보전하도록 관용을 베풀면서 그리스도 신앙을 지키도록 선교한 행동 동기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가톨릭교회의 아시아 선교는 성공할 수 없었고 아시아의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당해야 했는데,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하려던 치명자들의 순교조차도 아시아에서 만난 이웃을 위한 사랑의 동기로 여겨지지 못하고 그저 자기네 종교를 위한 충성으로만 보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103위 순교 성인과 124위 순교 복자를 공경하는 한국 천주교 신자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그러합니다. 이제 아시아의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아시아 복음화는 인류와 아시아인들의 구원,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톨릭적이고자 하는 우리 교회의 미래가 이 사랑의 가치를 증거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1,2,50항).

이 미래를 전망함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이 하느님 사랑으로 겨레 사랑을 목숨 바쳐 증거한 안중근 토마스입니다. 그는 백여 년 전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면서 조선 백성 2천 만의 가슴에 나라 사랑의 불을 질렀습니다. 프랑스 선교사가 교회 책임자로 있던 그 시절에 한때 그는 살인죄를 범한 죄인으로 몰렸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역대 교구장 주교들이 시복 시성 대상자로 올릴 만큼 명예가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세상에서는, 조선은 물론 중국과 심지어 일본 내 일부에서도, 그를 동양평화의 아이콘으로 삼아 왔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게 국권을 빼앗긴지 겨우 십여 년만에 삼일만세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난 배경, 그것도 비폭력적인 평화 시위로 일어난 배경에는 분명이 안중근 토마스의 의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 전쟁을 치룰 당시에 프랑스 백성을 이끌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쟌 다르크 성녀에 그를 비교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순교자의 후손답게 목숨을 바쳐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겨레를 사랑했던 안중근 토마스처럼, 진정성 있게 민족의 공동선을 위하여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민족 복음화의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