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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예수 19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7-31 10:32:36
  • 수정 2016-03-23 17: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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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습니까?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습니까?”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루가복음 6,1-5)




실제 일어난 사건에 근거한 이야기라고 보기 어려운 단락이다. 안식일에 왜 예수가 밀밭 사이를 지나갔는지, 제자들이 왜 밀 이삭을 따 먹었는지 설명되고 있지 않다.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예수 곁에, 밀밭 가까이에 있었다는 상황 설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예수와 제자들이 고뇌한 주제가 아니라 루가 공동체 사람들에게 닥친 안식일 지키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율법은 루가 공동체에서 더 이상 큰 효력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주일 의무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공동체에 주류이던 유다교 사람들과 달리 먹고 달리 행동한 부분이 있었다. 소수이고 비주류에 속했던 초대교회에서 생겼던 현안을 다루는 이야기다. 그리스도교는 언제부터인지 자신이 한때 소수파요 비주류에 속했다는 역사를 망각하고 살아왔다.


어떤 경우에 예수는 율법에 대해 초탈하듯 아주 자유롭고, 어떤 경우엔 더 완강하게 율법을 고집한다. 예수는 율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좋게 본 것 같지는 않다. 예수는 규정보다는 인간을,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과 판단의 중심에 먼저 놓고 살았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렇게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예수의 새로운 어법이다. 전통을 무조건 따르기보다 전통의 의도와 배경을 따져 그 본래 참뜻을 밝히는 것이다. 전통 없이 새로움 없지만, 새로움 없이 전통 없다.

마르코 2,24에서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의 행위에 대한 질문을 예수에게 직접 하였다. 루가에서 바리사이는 제자들에게 묻는다. 마르코에서 제자들이 ‘밀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자’(마르코 2,23)를 루가는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라고 더 자세하게 보도하였다. 2절에서 마르코 2,24와 달리 바리사이 ‘몇 사람’이라고 마르코 2,24와 다르게 표현하였다. 마태오 12,1과 달리 제자들이 다윗처럼 굶주림을 느꼈다는 말은 루가에 없다.


안식일 규정에(탈출기 20,8-11; 31,12-17) 따르면 제자들은 안식일 두 가지를 어긴 것이다. 밀 이삭을 뜯었으니 안식일에 금지된 추수 금지를(탈출기 34,21) 어겼다. 안식일에 음식을 장만하지 말라는 규정을 어겼다. 마르코복음에서 아비멜렉 대신 아비아달로 잘못 혼동한 부분을 루가는 발견하여 그 부분을 루가복음에서는 실지 않았다.


4절에서 ‘하느님의 집’에서 다윗의 행동을 소개한 것은 조금 의아하다. 다윗 시절에 예루살렘 성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세가 장막에 들어간 이야기를(탈출 25,30) 레위 24,5-9) 마르코 2,25-와 연결하여 소개한 것 같다. 모세의 빵 이야기는 안식일 규정과 관계없고 오직 ‘거룩한 빵‘과(사무엘상 21,5.7) 관계있었다.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 율법 규정이 효력을 잃느냐를 묻는 단락이 아니다. 다윗이 율법 규정에 대해 가졌던 권한처럼 예수가 율법 규정에 대해 권한을 가지느냐를 다루는 이야기다. 율법의 효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의 권한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아들이 율법을 폐지하였다는 쉬르만의 주장은 나는 찬성하기 어렵다. 루가는 율법의 효력이 사람의 아들 권한 속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루가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규정에 문자 그대로 얽매일 필요는 없다. 예수 정신에 따라 율법을 새로 해석해야 한다. 후대에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의 안식일 노동금지 정신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일요일 노동금지라는 새 전통을 세웠다.


주일미사나 예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우리 시대에 일요일 노동금지는 어떤가. 일요일에도 노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요일 노동금지를 교회는 강요할 수 있는가. 주일 성수 의무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에 그리스도교는 더 관심 가져야 하지 않는가. 전례, 성례전 등 종교 행사보다 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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