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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시민칼럼] 시민윤리로서 관용과 계율정신
  • 편집국
  • 등록 2015-08-05 10:28:34
  • 수정 2015-10-28 1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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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시민이 주인공인 시민사회이고, 그 시민은 다시 자신의 행복을 주된 관심사로 삼는 개체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하는 개인주의적 기반을 지닌다. 이 시민과 시민사회가 우리에게 실체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부터다. 


이 과정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가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투쟁과 우리 자신의 저항의 산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함께 지니게 했다. 그 후 30여년에 가까운 시간들이 흐르면서 1997년 구제금융사태(IMF사태)를 계기로 급속한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라는 총체적인 위기를 온몸으로 감당해내야만 하는 비극과 절망으로 다가왔다. 


이런 흐름이 조계종단으로 상징되는 불교계 내부에서는 이른바 ‘서의현 사태’를 계기로 ‘94년 개혁 정신, 즉 청정비구(니)를 중심으로 하는 사부대중공동체로서의 조계종단의 기반이 소리 없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탄식과 절망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교윤리에서 관용은 범죄를 저지른 자와 내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불이(不二)의 관계론을 토대로 그가 저지른 죄를 철저히 규명하여 응징함으로써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면서도 그 인간 자체를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불교적 관용론이 현실 속에서 잘못 해석되어 마치 죄지은 사람을 무조건 용서해주는 것이 높은 수준의 관용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용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해석과 적용이 화쟁(和諍)과 관련해서도 가끔씩 발견되곤 한다. 화쟁은 자신의 주장과 관점이 진리의 한 부분만을 보고 있거나 아예 진리 자체를 빗겨나간 것일 수도 있다는 겸손의 미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각자의 주장을 적극 펼쳐 보이는 쟁(諍)의 과정을 그 핵심으로 삼는다. 


화쟁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적용을 통해 자율적 계와 타율적 율을 포용과 엄격함의 조화로서의 계율정신 또한 제대로 살아날 수 있고, 이것은 다시 사회로 확산되어 시민윤리로서의 관용이 제대로 자리 잡는 계기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박병기 ㅣ 화쟁문화아카데미 상임운영위원,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동양윤리교육학회장


덧붙이는 글

화쟁시민칼럼은 화쟁문화아카데미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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