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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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나라는 망하는데 교회는 살려는가
2016년 새해가 밝았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시간을 또 선사하셨다. 절망의 땅 한반도에도 태양은 다시 뜬다. 가톨릭프레스 독자들과 그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과 평화가 함께 하기를 빈다. 새해에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사람이 사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이다’(성 이레네우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어둡다. 백성들의 고통은 계속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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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슬픈 크리스마스
지금 한국 상황은 예수가 살던 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당시 유다 사회는 로마군대의 지배하에 살던 식민지 상태였다. 오늘 한국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다. 절망이 모범 정답처럼 권장되는 나라다. 백성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하였다. 절망이 가득한 오늘, 예수 오심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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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인천교구 답동주교좌성당 평신도협의회의 난동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성당 안에서 일어났다. 16일 저녁 7시 40분경 인천교구청 앞 단식농성장에 답동성당 평신도협의회 신자 20여 명이 가위 등을 들고 몰려왔다. 농성장에는 인천교구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인천성모병원 문제를 최기산주교가 해결하라며 16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한 홍명옥 인천성모병원 노조지부장이 있었다.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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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세월호 청문회와 성탄절
‘4·16참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청문회가 16일 끝났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된 지 1년이 지나서 청문회가 열린 것은 정권의 끊임없는 방해 때문이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하던 이승만정권의 작태가 생각난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정부 태도와 어찌 그리 닮았을까, 왜 많은 승객들이 구조되지 못했을까, 침몰 직전까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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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한상균 위원장, 조계사, 명동성당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조계사에서 경찰에 자진 출두하였다. 그 후 언론에 보도된 조계종 일부 스님들의 발언이 시민들 뿐 아니라 종교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12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조계사 부주지 담화 스님은 9일 오후 한상균 위원장을 설득하다 지쳐 “한 사람 때문에 조계사는 물론이고 종단 전체가 이렇게 큰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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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침략군 왜군에 복무한 신부를 기념할 필요는 없다
1592년 5월 23일 천주교 신자이던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장으로 배 700여 척과 30만 왜군이 조선땅과 조선 사람들을 8년 동안 잔혹하게 유린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다.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로 도망쳤다. 1577년 일본에 선교사로 와서 체류하던 예수회 소속 세스페데스 신부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초청으로 1593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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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오늘 자비의 희년이 시작된다
12월 8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된지 50주년 되는 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 시작을 12월 8일 선포한다. 자비의 희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지난 2000년 우리는 희년을 지냈다. 25년 주기로 희년을 맞는 가톨릭교회의 관례를 따른다면 다음 희년은 2025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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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교황청 회계감사를 외부 기관에 맡긴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에서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교황청의 회계를 투명하게 하기를 바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지에 따라 교황청이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기관에 회계감사를 맡기기로 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 큰 문제는 교황청 재정의 투명성 부족”이라며 “지출 근거와 지급 형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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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칼럼] 교회 내부의 다툼과 갈등이 향하는 곳
본당 공동체 안에서 혹은 본당 공동체 사이에서, 또는 교구와 본당이, 그리고 수도회간에 알력과 갈등이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임 사제와 후임 사제 간의 갈등도 문제이고, 세대가 다른 갈등도 문제이며, 나이 많은 후배사제와 어린 선배사제와의 갈등도 문제이다. 그 뿐인가 수도회 사제와 교구 사제 간의 미묘한 대립과 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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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으로 읽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2부
회칙을 불편하게 여기는 세력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강대국과 정치경제 지배층은 회칙을 당연히 싫어한다. 그들의 이익과 계획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가톨릭 보수파도 회칙을 언짢게 여기고 있다. 개신교 일부는 ‘찬미받으소서'를 행업으로 구원을 쟁취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보고 있다.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고 하느님께 받은 권리로 여기는 그들은 회칙의 일부 내용이 하느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는 온난화가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