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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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연중 제11주간 화요일(2020.06.16.) : 1열왕 21,17-29; 마태 5,43-48 오늘 독서에 보면, 희년법에 명시된 이스라엘의 파스카 정신을 짓밟고 나봇을 죽인 북이스라엘 왕국의 임금 아합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를 시켜 왕실 가문이 멸망하리라는 재앙을 예고하셨습니다. 아합을 충동질하여 아합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이세벨도, ‘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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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우리집 소장, 고인 마지막길에 정중히 예의를 다하자
지난 6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다음은 지난 9일 오전,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서 봉헌된 입관 후 미사 가운데 이기우 신부가 전한 강론입니다. - 편집자 주 지금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으로서 할머니들 곁을 지켜 오시다가 현충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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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 교회가 받을 ‘의로움의 화관’
성령강림 대축일 이후 지난 한 주간 동안 우리는 이미 받고 있는 성령의 은사들이 어떻게 복음을 선포하는 데 쓰일 수 있는지를 그날의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곱 번째 은사로서 복음을 들려주시고 주관하시며 완성하실 하느님께 대하여 경외하면서 그분의 심판에 대해서는 두려워해야 할 바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경외심 혹은 두려워함으로 불리어지는 이 은사는 복음선포의 주관자이시고 완성자이신가 하면 심판자이기도 한 하느님의 역할과 그분께 대한 우리의 자세를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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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복음을 위하여 죄인처럼 감옥에 갇혀있다”
사람이 하느님의 빛과 힘을 받지 않고서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속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느님을 닮고 또 다른 이들에게도 하느님의 소식을 기쁘게 전하자면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본성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빛과 힘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하느님께서 이 빛과 힘을 주십니다. 무상으로 그리고 무한히 주시기 때문에 은사(恩賜)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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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산소·바람처럼 되어야”
창조주 하느님께서 생명을 위해 지구에 허락하신 세 번째 축복이 공기입니다. 온 우주 안에서 지구에만 물이 있듯이 공기도 지구에만 있습니다. 태양계 안에서 수성과 금성 같이 태양에 가까이 위치한 별들은 이산화탄소가, 화성과 목성 같이 태양에서 멀리 위치한 별들은 수소가 많을 뿐 공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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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계속 강조하시던 부활의 기쁨에 대한 고별사 말씀을 마무리하시면서 당신의 신원과 사명 그리고 운명에 대해 결정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즉,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분이 제자들에게 남기는 고별사의 백미입니다. 우리도 그러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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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불교의 가르침을 생각해 봅니다”
부활 제3주간 목요일; 2020.4.30 : 사도 8,26-40; 요한 6,44-51음력으로 사월초파일인 오늘은 불자들이 부처님 오신날로 지내는 날입니다. 이웃 종교인 불교의 최대 경축일을 맞이하여 불자들에게 축하드리며 그리스도인이 보는 불교와 그 가르침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불자들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를 부처님이라고 부릅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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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믿음과 그 선택이 이르는 길
오늘 독서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역사 초창기에 생명의 빵을 먹고 부활에 참여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한 사람인 스테파노는 순교자로, 또 다른 한 사람인 사울은 그 순교자를 처형하는 데 찬동하는 박해자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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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그 다양한 이름과 동일한 본질에 대하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2020.04.20) : 사도 4,23-31; 요한 3,1-8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기쁨을 노래해 온 팔일 축제를 마치고 본 부활시기로 들어갑니다. 부활의 기쁨을 어떻게 믿는 이들과 나누고 또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이에 따라 사고방식까지 바뀌어도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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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2020.04.16.) : 사도 3,11-26; 루카 24,35-48자본주의 세상에는 부와 기회가 1:99로 나뉘어지는 1%의 냉혹한 현실이 작용합니다. 경제적 평등을 참혹하게 희생시키는 신자유주의 질서 탓으로 자본이 그렇지 않아도 부유한 나라와 개인들에게 몰리는 바람에 99%가 가난한데 1%만 부유한 현실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