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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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그림자를 먼저 비추시는 하느님
사회에는 매일같이 범죄 뉴스가 넘쳐납니다. 하도 일상적으로 일어나서 선과 악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이 무디어질 지경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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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 대해서 적대시한 사람들은 선을 가장한 내부 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다 종교적인 기득권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던 자들이었으며 자타가 공인하던 경건한 종교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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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구원계획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오늘은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리라는 예고를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받았을 때 그는 요셉의 정혼자였습니다. 요셉은 유다 지파의 유다인으로서 다윗 가문의 후손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와 있는 대로, 하느님께서는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리게 된 다윗 왕에게 그의 후손이 일으킬 나라를 축복해주셨습니다. 사울은 벤야민 지파 출신이었고 다윗은 유다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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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님! 저희는 당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는 동족이 걸어온 역사를 하느님 앞에서 회고하며 참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조상들을 해방시켜주신 후에 하느님과 그 백성으로서의 쌍무계약을 맺으셨는데,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 을 성실하게 이끌어주셨지만 조상과 동족들이 계약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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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 대세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들이 실천해야 할 바를 알려줍니다. 그 첫째는 하느님께 대한 개방성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청하고 구하는 바를 주실 것을 믿고 청하라는 당부의 가르침입니다. 유다인들이 바빌론에 끌려갔던 시절에 그곳 나라의 왕비가 된 에스테르는 모함을 받아 동족이 박해받을 위기의 상황에서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고 동족 유다인 포로들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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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관통한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 메시지가 아니라 그 복음을 들었던 이들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 내리신 예수님의 평을 전해줍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을 인용해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을 천명하신 이래로, 주로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전하시기 전에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치유를 해주셨고, 마귀 들린 이들에게는 마귀를 쫓아내어주셨으며, 배고픈 이들에게는 빵을 먹여주셨고, 이런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시키신 다음에는 듣는 이들이 알아들을만한 소재를 동원해서 비유로 당신의 실천 행동에 담긴 뜻을 깨닫도록 가르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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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 다시는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각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영향력에 대해 강조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이 하늘에로 돌아가는 법이 없이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곡식을 거두게 하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주듯이,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역시 허투루 나오는 법이 없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름지게 하고 깨달음이 돋아나게 하여 영적인 양식을 먹게 하고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만들고야 만다는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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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의 정신은 ‘정의’ 이전에 ‘사랑’
오늘 말씀의 주제는 재판 또는 심판입니다. 레위기의 독서 말씀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당시에 워낙 불공정한 재판을 당해보았을 것이기 때문에 해방된 나라에서는 더 이상 그런 불공정한 재판이 저질러져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후에도 불공정한 재판 관행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율법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율법 학자들이 조상들이 전해준 종교적 전통을 소중히 한다면서도 정작 더 중요한 것을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공정한 재판을 강조하는 말씀 뒤에 따라온 말씀 한 마디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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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이든 식사든 ‘행위의 지향’이 중요하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단식에 대해 설파했습니다. 그러한 단식이란 단지 식사 끼니를 거르는 행위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를 구현하고 사랑의 희생을 실천하는 모든 활동을 다 포함합니다. 단식 행위는 이를 위한 기도로서 욕망을 절제하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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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날짜는 왜 해마다 바뀌는가?
사순 시기가 시작되면 늘 두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첫째, 부활절 날짜는 왜 해마다 바뀌는가? 둘째, 사순 시기는 고난의 40일이라는 뜻인데 왜 40일이 넘는 것인가? 이 두 가지 의문의 답 안에 오늘 복음의 초점인 십자가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