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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10-2: 절망 속의 희망 종교인이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지만 사회가 평화롭기는커녕 폭력이 교묘하게 구조화되고 도리어 내면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섯 명의 참석자가 원음방송 신개벽포럼과 공동으로 레페스포럼을 진행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종교와 국가가 교묘하게 결합되는 지점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하고, 그 극복 가능성 및 대안에 대해 모색했다. 2017-10-31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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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10-1 : 종교와 국가, 그 교묘한 결합 종교인이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지만 사회가 평화롭기는커녕 폭력이 교묘하게 구조화되고 도리어 내면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섯 명의 참석자가 원음방송 신개벽포럼과 공동으로 레페스포럼을 진행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종교와 국가가 교묘하게 결합되는 지점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하고, 그 극복 가능성 및 대... 2017-10-23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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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8-2 : ‘우리’의 ‘그들’에 대한 차별 오늘 토론거리 중의 하나가 ‘정체성’의 문제다. 영어로는 ‘아이덴티티’(Identity)다. 독일에서 나치의 억압을 피해 온 미국으로 온 심리학자 에릭슨이 자신의 뿌리를 고민하고 학문화하면서 학계에 알려진 낱말이라고 한다. 2017-04-21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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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8-1 : ‘우리’의 ‘그들’에 대한 차별 일본의 문학자 고모리 요이치의 「인종차별주의」는 우리가 분명히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매일 ‘새로운 인종주의’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담론을 펼치고 있다. 과거에는 생물학적인 외적 차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했는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인종차별주의를 광범위하게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2017-03-28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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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7-2 : 폭력은 왜 구조화하는가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라는 말은 지라르 입장에서 보면 상대적인 것이다. 상대적이라는 말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와 비교해보면서 나에게 부족하거나 없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그래서 네가 누리고 있는 그 이상의 것을 모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2017-02-22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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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7-1 : 폭력은 왜 구조화하는가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인간은 ‘모방하는 인간’(Homo Mimeticus)이다. 모방의 근간은 타인과 같아지거나 그 이상이 되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은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어떤 ‘모델’(매개자)을 보면서, 2017-02-02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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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6-2 : 종교와 국가가 만드는 폭력 - IS의 경우 오늘날의 중동 분쟁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 지역을 분할하면서 본격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배경에서 영국, 프랑스 등이 중동 지역 전체를 임의로 분할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2016-12-07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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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6-1 : 종교와 국가가 만드는 폭력 - IS의 경우 종교인이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지만 사회가 평화롭기는커녕 폭력이 교묘하게 구조화되고 도리어 내면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하는 제6차 “레페스포럼”(REPES Forum)에서 박현도 교수(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이슬람학)가 “IS: 국가, 종교,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내용의 요약이다. 이를 통해 종교와 평화의 관계에 대해 상상해본... 2016-11-24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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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5-3 : 난민과 환대 간혹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면 피해자 중심의 편견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사진에서 중요한 건 시각적 재현이다. 평화가 만들어지려면 갈등의 현장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갈등의 당사자들과 함께 해야 하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함께 고민하면서 시각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은 하나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지만, 평화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치들을 재현해 내는 중요한 평화의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2016-10-05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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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페스포럼 5-2 : 난민과 환대 평화에 관한 담론 확장과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판적 저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성찰을 바탕으로 거기에 저항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무조건적 환대를 ‘종교’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할 때 그 ‘종교’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논의를 위해서라도 환대 자체가 종교인지, 환대를 하는 사람이나 조직 같은 주체를 종교라고 해야 할지 먼저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16-09-05 이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