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사 부인·신학자의 아내·사제의 어머니, 저는 전순란입니다 “눈 녹을 적 수선화처럼 노란 옷을 입고 나타나 첫눈에 반하게 만들었던 처녀는 자기의 결혼을 한 주일 앞두고 집을 뛰쳐나와 내게로 왔다. 서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서 이룬 사랑이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내내 행복하였고 지금도 그러하여 둘을 맺어주신 성모님께 저녁마다 감사의 로사리오를 바친다.” - 아내 전순란 여사를 소개하는 성염... 2019-08-23 염은경
- ‘지리산휴천재일기’ 3650 꼭지 시우가 껍질을 벗고 사라진 매미를 찾는다. “할머니 매미는 옷을 벗고 어디로 갔을까요? 매미 우는 소리가 통 안 들려요.” “옷을 벗고 어디서 목욕하는 중인가 보다. 물소리에 우리가 매미 우는 소리를 못 듣는 거고…” 한 달 전 제주 붉은오름 산보길에서 작은손주와 나누던 얘기다. 그 길고 더운 여름날 뜨겁... 2019-08-19 전순란
- 사소한 시비라도 분별있게 가리는 여인들의 지혜 어젯밤 여수에서 온 생선회가 내 위장에서 사고를 쳤다. 대부분이 멀쩡한데 어쩌다 재수 없는 사람은 한 조각의 회에 심한 바이러스 감염으로 간이 완전히 파괴되어 24시간 안에도 죽는다니 배탈정도는 애교로 봐줘야 한다. ‘태제 기도’ 후 내놓은 푸짐한 횟감을 몇 점 먹었는데 그게 오늘 하루 종일 단식을 해야 할 만큼 심한 설사를 초래할 줄이야. 2019-08-16 전순란
- “지가 혼자 일을 다함시로 냄편만 살아있으믄 업고 다니겄다 해싸” 밤늦도록 책을 읽었다는 핑계로 아침잠을 더 자려는데 2층 서재 뒷문 계단에서 드물댁이 날 부른다. 아침 일곱 신데 해가 왕산 위 구름위로 덜렁 올라앉아있다. 오늘 가을무와 배추 심을 밭을 만들러 온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서 얼른 얼굴을 씻고 야쿠르트만 들이키고서 텃밭으로 내려갔다. 2019-08-14 전순란
- 엄마가 평생 사랑을 고백한 첫 남자 비 내리는 날 이사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커다란 집이라도 사서 살림을 늘여간다면야 그 구질스러움을 참을 수도 있겠지만, 단간 셋방에 사는데 방세를 올려 달래서 반지하로 이사해야 한다면…. 20cm쯤 되는 창으로 세상이 좀 보이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신발이 창문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마구 밟고 지나다닌다면… 오늘 서울을 떠나며 왜 이런 서글픈 생각이 들까? 2019-08-09 전순란
- 왜 서양에서 저 사람들을 ‘경제인(經濟人)’으로 부르지 않고 ‘경제동물(經濟動物)’로 하시하는지… 건너편집이 팔렸는지 한 달 가까이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다. 이 지역 개인주택들이 60년대와 70년대에 지은 집들이어서 약간의 평수가 있고 그래서 팔겠다고 내놓는 족족 건축업자들의 먹이가 된다. 싼값에 사서 헐고 4~5층의 다세대주택을 지어 분양하고서 떠나버린다. 때로는 주택공사소유의 임대주택이 되거나 돈 좀 있어 임대소득을 노리는 자들의 투기대상이 된다. 2019-08-07 전순란
- ‘인공시대’를 겪어 밥 한 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의 마음 달력은 어느새 8월로 넘어왔다. 한 해의 3분의 2가 지났다. 보스코 인생은 시속 80, 내 인생은 시속 70으로 굴러내린다. 오전에 평화방송에서 보스코에게 “평화 단상”이라는 2회분 강연을 녹화한다고 했었다. 10시 30분에 사람들이 온다는 약속이 있어서 손님맞이 청소를 하고 9시 30분에야 아침을 먹기 시작했는데 대문 벨 소리가 났다. ‘아무리, 벌써 왔을 리가?’ 하고서 인터폰을 보니 그 사람들이 맞다. 2019-08-02 전순란
- ‘까도, 내가 깐다!?’ 창문을 두드려 대는 빗소리에 밤새 잠이 설었다. 오늘은 주일이니 저 꼬맹이들을 앞세우고 성당엘 가려면 내가 더 바쁘다. ‘빨리 먹어라!’, ‘빨리 입어라!’, ‘빨리 챙겨라!’ 외국에서 두세번만 한국 관광객을 맞은 사람이라면 가이드의 입에 붙어 있는 ‘빨리빨리’라는 말을 모를 수가 없다. 2019-07-29 전순란
- “아빠! 미사 중에 웬 잔소리가 그리 많으셔요?” 시우와 시아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마을길을 달려 내려간다. 성당 가는 길이 즐거워서라기보다 아이들이 가는 길은 직선이 없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갈지자로도 목표에는 도달한다. 매일 하교시간에 집에 늦는 아이가 도대체 귀갓길에 무슨 해찰을 하나 아이의 뒤를 밟은 엄마가 있었다. 학교 교문에서부터 아이의 뒤를 따라가는데 은행에 들어가 한참을 있다 나오기에 그 점이 무척 궁금했단다. 호기심을 꾹 참고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뒤를 밟았는데 똑같은 코스에 똑 같은 시간이 걸리더란다. 학교 정문에서 집에까지가 그리도 멀고 그리도 구불구불한지 처음 알았단다. 2019-07-24 전순란
- 물까치떼의 인간 공략? 어제 밤에도 비가 내렸다. 초봄에 심은 오이가 병이 들었는지 누런 잎에 오이 끝이 휘어지고 달린 오이도 누렇게 말라 떨어져 버리니 올핸 더 이상 따먹기는 글렀다. 새로 포트낸 오이 모를 3000원에 다섯 개 사다 먼저 심은 오이 곁에 심었다. ‘덩쿨을 뻗어 먼저 올라간 형님들한테 의지해서 잘 감고 뻗어가서 튼실하게 달려라.’ 축원해 주었다. 어제 밤늦게는 전주를 묻으려고 파낸 구덩이를 메운 자리가 수북해서 아주까리 여남은 포기를 옮겨 심었더니 밤새 내린 비로 아침에 보니 싱싱하게 살아남을 것 같다. 2019-07-19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