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수 편집장)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님과의 인터뷰입니다.
먼저, 요즘 교수님께서 고민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문학평론가 김명인 교수) 2000년대 초반까지 민주화 흐름이 굉장히 오래 가서 “이제는 민주화의 추세가 불가역적인 것으로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아닌가”하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우리 사회는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이후부터 이명박 정권 전까지 거의 20년 정도 민주화국면을 누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전두환, 노태우 씨에 의한 신군부 지배 기간에서도 헤게모니적 차원에서 보면 민주화 헤게모니가 강했습니다. 그 시기가 권위주의적인 통치기이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민주화 대의를 전면으로 거스르지 못하고 민주화 세력의 지분이나 권위를 인정해준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민주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깊고 빠르게 뿌리내려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불가역이 아닌 가역이었고 그 가역성도 더욱 악화되는 상황이어서,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극복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합니다. 지금은 그때처럼 이념적 선명성이나 충성심이 뚜렷한 것도 아니고 과거처럼 운동의 연대가 끈끈하지 않고 조직적이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사회에 각자도생의 논리가 강하게 자리 잡아서 과거와 같은 일사불란하고 조직적인 운동방식에는 거부감이 크고, 그렇다고 수평적인 네트워크형 운동도 충분히 자리 잡은 것 같지 않거든요.
- 지난 20년간 민주화 국민이 주도적이었고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자본 권력의 시대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말씀인가요?
▶ 한국적 특수한 상황인데요.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관철되더라도 정치적‧사회적 민주주의 가치와 공존이 가능합니다. 신자유주의에는 자유주의라는 측면이 있고 자유주의는 그야말로 일정한 자유와 방임을 전제로 하니까요. 정치적 자유와 신자유주의는 함께 갈 수 있어서, 서구의 다른 나라들도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지만 그것이 곧 정치적 보수주의와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년 동안 숨죽여 지냈던 보수 세력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특히 4.3사건, 광주민주화항쟁 같은 과거사 문제가 그들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 대한민국의 냉전체제를 형성하고 원초적인 비극을 만들어낸 주범들이 곧 한국사회의 보수 기득권 세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그들에게는 굉장한 위협으로 다가갔던 모양입니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보수 기득권세력의 반동적 단결이 공고해 진 것 같습니다. 결국 지금 한국사회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공동체적 가치가 위협받는 신자유주의의 나쁜 측면들과 보수 기득권세력의 전횡이라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수립 과정에서 형성된 씻을 수 없는 역사 경험의 나쁜 후유증이 결합된 상황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주는 시스템이 아닌 추방하고 배제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이데올로기와 남한 사회의 지배적인 보수 세력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상당수의 민중들을 적대시합니다. 심지어 학살까지 자행한 그런 역사경험이 결합하면서 더 극악하게 차별을 만들어 끝없이 재생산하고, 잠재적 적대세력들을 배제,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난국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현상과 한국 특유의 보수지배세력의 아픈 점이 맞물려서 현재 과거사 문제와 노동탄압 문제로 나타나는 군요. 그렇다면 왜 국정화 교과서에 손을 대려고 하는 것입니까?
▶ 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보수진영 전체의 합의가 이루어진 프로그램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짧은 시간 안에 추진된 데에는 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 같은데요, 자신이 재임하는 동안에 아버지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보수 세력도 교과서 국정화라는 카드는 쉽게 선택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굳이 무리를 해서 선택할 카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면서 한국 사회 전체에서 공동체의 가치가 붕괴됐습니다. 배려와 연대가 과거의 유물처럼 여겨지는 상황인데 이것이 심화되면서 사회 전반에 보수적 가치가 내면화되고 반복되어 복제됩니다. ‘일베’의 예에서 보듯 현재 젊은 세대들의 보수 성향이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우리 학교 홈페이지 내 자유게시판을 보면 과거엔 정당하고 진보적인 논의가 나오면 누구도 정면 반발을 못했는데, 요즘에는 조직적으로 융단폭격을 당하는 형편입니다. 그만큼 안티진보세력의 논리가 강화된 것인데 사실 조금만 들여다보면 허술한 논리이지만, 사회적 분위기에 힘을 얻어서 이제는 반진보주의가 하나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현재 젊은 세대가 보수화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 지금 젊은 세대는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 삶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힘이 들어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없고, 돌아보라고 하면 고통스럽고 짜증이 나는 것이죠. 그리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도 있어서 ‘당신들은 여태까지 열매만 따먹고 다 누렸으면서, 왜 우리에게는 나쁜 부산물을 물려주고 감내하라고 하느냐’ 라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겁니다.
- 정치권력이나 자본세력이 의도적으로 젊은 세대를 보수화시킨다고 볼 수도 있나요?
▶ 저는 요즘 ‘헬조선’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기존 이데올로기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스펙을 쌓으며 자기계발에 노력해도, 결국 만족할만한 삶을 살기가 힘들 것이라는 패배감이 강합니다. 또 청년들의 생존 조건은 열악하지만 정보의 개방성이 큰 편이라 다른 나라들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삶이 얼마나 노력 대비 성과가 적은 삶인가를 판단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그것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가능하게 했겠지요.
젊은 세대는 우리 사회의 갈등축을 기득권세대(어른 세대)와 비기득권세대(젊은 세대)로 나누어서 봅니다. 그리고 그 양상이 간단하지 않고 광범위합니다. 부정부패의 만연이라든지 기성세대의 이데올로기적 억압 등을 접하면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이 기성세대들에 의해 부당하게 억압받고 제약 받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존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납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를 보며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라는 회의감이 들고 이것은 국가시스템에 대한 의문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때는 안 그랬다’면서 계속 참고 노력하기만을 강요하는 등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을 옥죄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현상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심정적으로 부담이 되고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리하여 헬조선을 떠나자는 탈조선 캠페인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최근 ‘수저론’을 통해 한국사회에서는 계급이 세습되고, 정상적인 신분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만큼 절망감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나아가 ‘금수저’를 물었든 ‘흙수저’를 물었든 ‘죽창 한 방’이면 다 똑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죽창이 전통적인 저항의 상징인데 현재는 허무적인 폭력 내지는 뒤틀린 평등주의로 나타납니다. 어쨌든 기존체제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식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앞서 젊은 세대가 보수적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얼마 전까지의 현상이고 최근, 특히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부터는 한국 사회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절망과 더 이상 바닥으로 내려갈 수 없다는 자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해외로의 탈출을 생각한다거나 폭력적이거나 혐오적인 경향이 강하다거나 하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분명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의 물꼬가 잘 트여진다면 지난 20년간 젊은 세대들의 흐름과는 다른, 대단히 강력한 저항적 흐름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젊은 세대들이 정치적인 감수성은 뛰어나지 않지만 문화적인 감수성은 높아져서 지금 시대에 저항하기도 하고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하는군요. 선생님 글에 보면 ‘제국주의의 민족운동을 할 때마다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 현대문학’이라고 하셨어요. 그 시대를 문학가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떠한가요?
▶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문학은 90년대에 들어서부터 탈정치화가 이루어졌습니다. 80년대 말에 활동한 ‘진보적’ 문학평론가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진보주의 전체가 조급했고, 금방 큰 혁명적 변화가 도래할 것처럼 생각했었죠. 사실 직선제 개헌 하나를 쟁취했고 민주적 가치들이 재호명 됐을 뿐인데도 그 흐름을 너무 과대평가한 점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80년대 말의 문학에 지나치게 급진적인 전망을 들씌워서 오히려 리얼리즘을 역행했습니다. 혁명 판타지에 젖어서 한국 사회 변화를 냉정하게 보지 못한 것이지요. 사실 민중들은 당시에 지배적인 경제 호황기를 누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른바 운동권들은 혁명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그것을 추구했죠. 문학계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컸습니다. 당시에 작가들 중 일부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기 문학의 개성을 억압하면서 민중 운동에 자기 문학적 재능을 헌납하기도 했습니다. 불행한 일이었지요.
그에 대한 반동으로 90년대의 문학은 민족, 민중에 대해서 조금도 이야기 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에 집중 했습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개인이라는 주제는 역사적으로 희소한 주제였는데 90년대 문학에서 만개했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개인은 주로 자아를 찾아가는 중산층이었는데, 이제는 그 부분만 너무 확대되고 또 작가, 독자 등 문학담당층에게 즐겨 소비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학에서 소외된 민중에 대한 관심 등 공동체의 가치를 오랫동안 다루지 않게 되고, 이것이 문학의 상업주의와 연결이 되면서 바람직한 문학적 경향인 것처럼 고착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문학에서의 개인은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경제적‧사회적 논리의 하중을 견뎌야 하는 소외된 젊은 세대들인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정당한 제재와 인물들을 다루면서도 거기서 정치적인 문제의식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그저 소외되고 보잘 것 없는 개인들의 비루한 일상만이 반복적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이후로 젊은 작가들에게 어떤 변화가 감지됩니다. 이러한 거듭된 참사는 개인의 문제로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관심으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처럼 민족‧민중문학이 등장할 것 같지 않습니다만, 낙관적으로 보자면 70, 80년대처럼 새로운 정치성과 사회성을 확보하되, 풍부한 문학성을 갖춘 문학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 문학에서 ‘역사’라는 주제가 사라진 후 등장한 ‘개인’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연구주제이기도 한데, 역사라는 주제가 사라진 우리 시대에 김수영 시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 김수영 시인의 시 세계는 개인과 사회, 역사가 하나여서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자신을 바꾸려면 세상이 바뀌어야 하고,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김수영 시인에게 있어서 세상은 바뀌지 않고 자신만 문제 삼는다든지 반대로 자신은 안 바뀌는데 세상 탓만 하는 것은 나태함 입니다. 김수영의 시는 나태함을 일깨우는 항체로서의 의미를 가지는데 그런 면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지녔습니다.
개인적으로 80년대 말에 운동을 포기하고 대학원에 들어갈 무렵, 이런 상황을 나 개인이 뚫고 나아가지 못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는 개인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김수영 시인의 작품을 다시 읽었던 것이지요. 김수영을 읽으면서 자신과 세계를 일대일로 놓고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주체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과 세계 양측에서 보면 어떤 하나를 포기하거나 둘 다 포기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아주는 항체가 김수영 시인의 작품에 오롯이 들어있습니다.
- 최근 ‘역사 없이 개인 없고, 개인 없이 역사 없다’는 김수영 시인의 생각과 비슷한 말씀을 하는 분이 나왔습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종교 없이 문학을 할 수 있습니까?
▶ 김수영 시인은 종교가 없지만 태도에서 종교적 분위기가 풍겨 나옵니다. 그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여러 가지가 함의되어 있어서 아직 이 ‘사랑’에 대해 해명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그 안에는 다분히 종교적 스펙트럼이 있다고 봅니다. 김수영 시인은 유토피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기에 목전의 정치적 저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거죠. 김수영 시인은 언론자유,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시적 자유를 확대하고 사랑이라는 풍부한 메타포를 넣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과학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것 같아서 불만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설사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전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사랑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인정하는 편입니다.
- 사회비평을 하다보면 종교에 대해도 많이 생각하게 되시죠?
▶ 저는 예수의 생애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가 어떤 혁명가의 삶보다도 더 혁명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당대의 지배적인 가치관 전체를 문제 삼고 근원적인 변화를 요구하면서, 철저하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자기 자신을 내주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셨죠. 정치적 해방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짧지만 큰 예수가 걸어간 행적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종교로서 무조건적 숭배라든지, 맹신은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역사적으로 한국 3대 종교가 지금처럼 돈을 많이 소유하고 부패한 때가 없었습니다. 한국 사회를 개혁하는 데 방해세력이 될지 개혁세력이 될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 종교가 어떻게 사회를 이끌어야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 미국식 자본주의와 연결된 개인적이고 기복적인 면이 개신교를 통해 한국 정치 보수주의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한국 개신교는 친미주의와 보수주의와 기복주의가 결탁하면서 대형화되고,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진보적 가치들과 대립하게 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세력은 한국의 정제계의 지배세력과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인맥, 혼맥이 서로 연결 되어 있어서 분리하기도 어려운 상태입니다.
천주교는 교황이 바뀌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교회, 사제가 어떤 입장이고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에 따라 교회 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교회의 변화가 평신도들의 변화를 결정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시민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자신의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거리를 두고 성찰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사회는 실질적인 문맹률이 높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의 교육이 잘못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 절실합니다. 한국인들은 남을 밟고 올라가는 무한경쟁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느낄 수 있고,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에 대한 연민을 품을 수 있는 「꽃들에게 희망을」같은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오늘 긴 시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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