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선생 인터뷰 :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중요해 변방에서 보는 신앙은 아름다워 김근수 편집장 2016-01-01 08:14:10
  • 폰트 키우기
  • 폰트 줄이기


- (김근수 편집장) 인천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선생님과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라는 책을 내셨는데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서영남 선생님) 민들레국수집을 찾는 손님들을 위한 식탁을 조금 더 넓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혹시 책을 내면 이 식탁을 더 넓힐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책이 많이 팔렸어요(웃음). 이 책 덕분에 필리핀에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할 수 있었죠. 수도원을 나오고 난 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책을 통해서 나누고 싶었어요. 


- 그렇게 해서 이 책에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이야기를 담으셨군요. 선생님 혹시 수도원 나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으셨는지요?


▶ 수도원을 나와서 보니 내가 지금까지 정말 좋고 행복한 곳에 있었는데, ‘왜 있을 때는 몰랐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예언자적인 수도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수도원을 다시 들어가게 된다면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었죠. 


-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는 사제직을 그만두면서 전 세계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에 “투쟁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참호를 바꾸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선생님도 계신 곳이 다를 뿐 하느님 나라를 위한 사업은 계속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수도원을 나와서 세속으로 들어왔는데 제 자신이 수사도 아니고, 평신도도 아니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았어요. 혜문스님이 쓰신 글을 보니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니라는 뜻의 ‘비승비속’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이 말을 보고 저와 똑같은 처지라고 느꼈어요.


- 예를 들어 주변부 또는 경계선에 있다고 표현 한다면 주변에 있는 경험, 경계선에 있는 경험이 선생님 개인에게 신앙적으로 더 좋은 자리가 아닐까요?      


▶ 맞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수도원을 나와 다른 사람에게 무시 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정말 은총이라고 느꼈어요.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면 한 3~4년 정도 지날 무렵 정말 큰 유혹을 받는데 그 유혹에 많이 걸려 넘어집니다. 돈과 명예가 모이면 초심은 사라지는데, 저는 수도원을 나온 덕분에 그런 유혹이 없었어요.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건 하느님 은총이다. 내가 이런 준비 없이 시작했다면 몇 년 못 가서 내 자만심이나 욕심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을까.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 선생님께서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영적인 공부를 수도원에서 다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도원에서 책, 영성을 통해 배우셨겠지만 실제로 만난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아무 희망도 없고 보잘 것 없는 분들인데 그 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난한 사람은 사람의 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요. 그 분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면 정말 놀라운 변신을 합니다. 


- ‘해바라기’도 아니고 왜 하필 ‘민들레’국수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2003년에 제 조카가 예수살이 공동체에서 민들레 서원하는 모습을 보고 ‘아, 민들레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민들레가 노숙하는 사람과 거의 흡사해요. 사람들은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고 하는데요, 노숙하는 사람 대다수가 사흘 굶으면 담 넘을 생각도 않고 계속 굶어요. 처음에는 한 달 정도 먹지 못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먹는 것이 해결되고 나면 반드시 일을 하려고 해요. 리어카 끌고 폐지나 고물 주울 때 부자 되려면 물도 좀 슬쩍 넣으라고 했더니 그럴 바에는 굶어죽는 것이 낫다고 했어요. 


- 신체적으로 굶주림에 시달리지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아름다운 정신이,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부자들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아까 보니 사모님이 독후감 발표를 하시던데 여기 오시는 분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시는 거잖아요. 어떤 계기로 인문학 강의를 시작하시게 되셨는지요?

    

▶ 해방신학 신부들이 감옥에서 잡범들을 교육하는 것을 보고 ‘나도 저 방법을 교도소에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감옥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제가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 친구들이 많이 말할 수 있도록 했는데,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친구들이 놀랍게 변했어요. 


그때 교도소에서 ‘10년 전에는 무엇을 했고, 10년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당시에 23살이었던 한 친구가 10년 전에는 소년원에 있었고 10년 후에도 교도소에 있을 것이라고 답했어요. 그 정도로 아무 고민 없이 살던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변하더니 스스로 공부해서 대입 검정고시도 합격했어요. 지난번에 그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출소날짜가 8개월 밖에 안 남았다고 하더라구요. 또 다른 친구는 20대 중반에 만나서 지금 40대 중반이 되었는데 15년 동안 자신의 변한 모습을 편지로 써서 보내오기도 했어요.      


민들레희망센터를 찾는 노숙자들이 스스로 변해야 하는데, 등도 따뜻하고 배도 부른 편안한 상태가 된 후에 사람들은 변할 생각을 해요. 제가 수도원에 있을 때 보니 사람들은 피정을 할 때 용감하게 변해요, 그래서 우리 손님들도 피정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희망센터를 만들어서 책도 구비하고 영화도 볼 수 있도록 했는데 손님들이 책을 읽지 않아요. 그때 베로니카가 손님들을 많이 도와주면서 손 큰 아줌마로 소문이 나니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베로니카와 상의를 해서 손님들에게 3,000원정도 주면서 돕자고 상의했어요. 최소 3,000원이면 그날은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하지만 그냥 드릴 수 없으니 책을 읽도록 하고 간단하게 독후감을 써서 발표하게 하자고 했죠. 이렇게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돈 욕심 때문에 하다가 어느 순간 변해서 스스로 책 읽고 발표도 합니다.   


처음에 민들레국수집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샤워하고 빨래하고 낮잠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이 공간의 모델이 될 만한 사례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자고 했죠.


- 독일의 경우 실업수당을 줄 때 식비만 주는 것이 아니라, 문화생활도 할 수 있도록 배려  하지요.


▶ 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이 변하고 새 삶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가난한 사람이 처한 삶에서 못 벗어나게 해요. 사람들은 생존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에 의식주가 충족되지 않으면 변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게으르다는 등 나쁜 소리만을 하죠. 


-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난한 사람을 대할 때 제일 좋지 않은 것은 가부장주의라고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다보면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잖아요. 혹시 이런 위험도 느끼셨습니까? 


▶ 새해 결심으로 ‘미운 사람 밥 한 끼 더 먹이자’ 하기도 해요(웃음). 


- 12월 8일 자비의 희년이 시작되는데 선생님은 직접 자비를 실천하시는 분 아닙니까? 어떤 것이 자비라고 생각하십니까?


▶ 여기를 찾으시는 분들을 보면 내 자식 같은 느낌이 들어요. 조금 더 잘해주고 싶구요. 식사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 제 또래가 많은 것 같아서 60대가 제일 불쌍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식사하실 때 혼자 사시냐, 어떻게 사시냐고 물으면 가족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숙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렇게 혼자 지내며 국민연금 20만원 조금 더 받는대요. 그런데 이것이 수입의 전부에요. 


- 사실 예수님도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을 다 구제해주지는 못하지 않았습니까. 필리핀에서는 하루에 사람들이 몇 명 정도 찾아오나요?


▶ 현재 칼루칸, 나보타스, 말라본 이 세 군데에서 하고 있는데 제가 있는 곳은 공동묘지 옆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상대로만 국수집을 운영했는데 하다 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들 가족까지 불러서 먹였죠. 또 가족들만 먹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더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지난 10월에 본당 신부님께 25가구를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이 25가구가 총 몇 명인지 세어봤더니 130명 정도 됐는데,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면 큰 게 없어도 됩니다. 


보통 350~400여 명 정도 옵니다. 사람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작년 6월부터 같이 있었던 아이들은 상을 차리면 밥을 덜어요. 다섯 공기씩 먹던 애들이 이제 한 공기도 많다고 그래요. 


- 수도원을 나와서 민들레국수집을 하는 동안 예수님에 대해 바뀌거나 새로 든 생각이 있습니까?


▶ 예수님 흉내를 내려고 애쓰는데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수도원에 있을 때도 가난하게 살면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제가 살았던 수도원이 인원수도 늘고 바른 소리도 나와서 좋습니다. 수도원을 지을 때 신학생들이 천막 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그 친구들이 주축이 된 것 같아요. 그것을 보면서 ‘수사들은 가난하게 살아야 안 나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도원을 나오고 나서 성소자들을 위해서 수도원 본연의 편한 시설들을 일부러 바꿔서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교황님을 보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수도원에 있을 때는 사다리를 거꾸로 타고 내려가는 게 꿈이었는데요, 교황님을 보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 지금 교황님에게서 가난한 사람을 잘 돌보는 모습이 보이실 것 같습니다. 


▶ 그렇죠. 아프리카 순방 가셨을 때도 모기가 더 무섭다고 농담 하셨잖아요. 필리핀에서 지낼 때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필리핀에 있는 우리 애들이 정말 천사에요. 이런 천사들이 다들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 천사들이 제 주위에 모이면 정말 뿌듯해요. 


- 민들레희망센터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교황님이 바티칸에 노숙자를 위한 기숙사를 만든 것을 보고 센터를 다시 만들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난 더 멋지게 만들겠다’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지금 이 집을 보고 햇빛도 따뜻하고 우리 손님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에 점 찍어뒀어요. 공인중개사를 통해서 집 주인을 만났는데 민들레국수집 손님인거에요. 식사하러 오면서도 달걀 사오시고, 고맙다고 말하는 정말 좋은 분인데 우리에게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파셔서 이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됐어요. 


센터를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술 취해서 들어오지 않는 것이 회원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이에요. 이곳에서 샤워도 하고 낮잠 자고 독후감도 쓸 수 있는데 회원이 3,000명 정도 돼요. 하루에 100~150명 정도 이용하는데 절간처럼 조용합니다. 


- 센터에 다문화가족들도 많이 방문하나요?


▶ 인천에 있는 필리핀 이주 여성들이 아이들과 함께 와요. 필리핀에서 지내보니 말 못하는 서러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어서 국내에서 필리핀 엄마들을 우리가 돕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엄마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나눠주면 정말 좋아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그 엄마들한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죠.


- 우리 한국 교회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 한국 교회는 옛날 박해 받던 시절의 교우촌 모습으로 가야 합니다. 가난한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시대의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 요셉의원 최영식 신부님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청했어요. ‘필리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교우촌 같은 곳을 만들면 이곳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최영식 신부님 당신도 교우촌 출신이라며 흔쾌히 도와주시겠다고 했어요. 덕분에 필리핀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미 큰 보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 때 교우촌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사회에 빛이 되고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는 여성들이 부드러운 마음,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부럽고 탐나요. 도로시 데이, 마더 테레사, 성모님 이런 분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당신 아픔처럼 여기잖아요. 정말 놀랍고 본받고 싶은 부분이에요. 우리 손님들은 베로니카가 큰 목소리로 뭐라고 하면 좋아하면서 더 꾸중해달라고 그래요(웃음). 베로니카를 누나처럼, 엄마처럼 따라요. 


- 우리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유명한 노숙자는 바로 ‘예수’ 아닙니까. (새해를 맞아) 가톨릭프레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처음 가톨릭프레스가 나왔을 때 기존 등쌀에 얼마나 버틸까 조마조마했습니다. 예수님 따르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예전에 데모를 하는 곳에 간 적이 있어요. 영 체질에 맞지 않아서 가난한 사람들 옆에서 그들을 돕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몫이라고 느꼈죠. 


-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대로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서 이렇게 좋은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TAG
관련기사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