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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서품식과 첫미사를 검소하게 가난하게 사는 사제가 진짜 사제 김근수 편집장 2016-01-06 10: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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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 교구와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식이 시작되었다. 오랜 세월 정진해온 새 사제들과 스승, 은인, 가족, 본당 공동체, 수도회와 교구에 축하인사를 드린다. 그동안 애쓰셨다. 길 잃은 양들이 여전히 착한 목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 우리 시대에 사제직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서품식에서 새 사제들은 바닥에 엎드려 하느님께 기도한다. 그때 겸손과 봉사를 다짐할 것이다. 성직자 중심주의나 골프장 생각을 하는 새 사제는 없을 것이다. 부디 초심을 변치 않고 살기를 간곡히 바란다. 여기서 서품식과 첫 미사를 검소하게 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래서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위한 좋은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언제부턴가 실내체육관에서 서품식을 치루는 모습이 흔해졌다. 많은 신자들이 참여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일까. 큰 성당들과 교구 소유 학교의 강당도 있지 않은가. 전례적 의미나 비용을 생각하면 체육관 서품식은 이해하기 어렵다. 조금 비좁고 불편해도 서품식은 성당에서 거행하는 게 적절하고 아름답다. 


첫미사 준비에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첫미사를 좀 더 조촐하고 검소하게 지낼 방법은 없을까. 새 사제들은 신학교 시절에 가지고 있던 물품을 그대로 쓸 수 있다. 돌아가신 사제들이나 선배 사제들의 제의, 성작 등을 빌려 쓸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추기경의 옷을 수선하여 입었다. 


신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첫미사 선물에도 돈을 적게 쓰면 어떨까. 성서 구절을 넣은 상본을 주던 관행이 어느새 대부분 묵주로 바뀐 것 같다. 성물업체에 따르면, 가장 저렴한 묵주가 개당 수천원이다. 최소 주문단위라는 500개 묵주 가격만 해도 이미 수백만 원이다. 


첫미사 준비에 드는 비용은 대부분 새 사제의 출신본당 신자들이 맡아왔다. 신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다. 어려운 경제에 각종 헌금에 신자들의 어깨는 이미 무겁다. 새 사제들의 부모님도 평신도이고 새 사제도 한때 평신도였다. 평신도의 부담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애쓰는 자세가 요청된다. 


첫미사에 드는 비용 거의 전부를 새 사제가 부담하는 모습도 좋다. 사제 된 이후 몇 년에 걸쳐 갚는 것이다. 재학 시절 학비를 대출받고 취업 후 상환하는 대학생들도 있지 않은가. 새 사제들은 과분한 선물을 사절하는 것이 좋다. 돈봉투 등 물적 예물은 가능하면 사양하는 것이 좋다. 


새 사제들은 가난과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서품식에 간다. 가난이 무엇인지, 을의 처지가 무엇인지 경험할 기회가 앞으로도 드물 것이다. 관찰과 체험은 하늘과 땅 차이다. 가난과 민주주의를 잘 모르는 약점이 새 사제들을 평생 고뇌하게 만들 것이다. 


새 사제들은 예수의 첫 설교를 잊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 세속화에 물들지 않고 가난하게 사는 사제가 진짜 사제다. “어떻게 하면 가난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이 할 수 있을까” 고심하길 바란다. 


사람들이 예수를 보며 이렇게 말했었다.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4,22) 새 사제들을 보며 우리 평신도들이 그렇게 말하게 되길 빈다. 해방자 예수를 따라 가난하게 살아갈 새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듬뿍 내리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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