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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작가 윤성희 인터뷰 : 손편지는 자비의 편지 편지 한 통에 자비로움과 사랑이 담겨있어 편집국 2016-01-08 10: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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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편집장) 오늘 인터뷰는 손편지로 유명한 윤성희 아가다 자매입니다. 손편지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 (윤성희 작가) 어렸을 때부터 손편지 쓰는 것을 좋아해서 학창시철에는 거의 매일 친구들한테 손편지를 썼어요. 결혼하고 나서는 편지를 멀리하다가 어느 날 문득 ‘사람들은 왜 손편지를 쓰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손편지를 널리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먼저 ‘누가 제일 손편지가 필요할까’를 고민하던 중에 보험설계사처럼 사람들과 만나는 분들한테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업에 대한 공부도 하고 제가 글쓰기를 하면서 터득한 방법, 영업에서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적어서 강의 기획안을 만들었어요. 그 다음에는 국내 보험사에서 교육을 담당하시는 분들에게 제안서를 직접 손으로 써서 보냈어요. 그 분들 중 70%에게 연락이 왔는데, ‘내가 읽었을 때 감동을 느꼈다면 우리 고객들도 감동을 느끼겠지’라는 마음으로 제게 강의 의뢰를 했어요.  


인문학적으로 더 넓혀서 강의도 하고 학교에서는 부모님들을 위해, 선생님들을 위해 맞춤형 강의를 하게 됐어요. 처음에 손편지를 시작할 때는 나같은 사람들이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좋아하셨어요.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손편지를 쓰면서 아름다운 감동도 많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 서울교구 청소년사목국에서 청소년주보 ‘하늘마음’을 만들었는데 8년 동안 원고를 쓰고 첨삭하는 일을 했어요. 주일학교 교사처럼 봉사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저와 같이 활동했던 언니한테 ‘앞으로 내가 널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라는 문자를 받고 놀란 마음에 연락을 했죠. 언니가 말하기를, 글씨가 안 써져서 병원에 갔더니 뇌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검사를 했는데, 뇌종양이라고 했어요. 5살짜리 아들이 있던 언니인데, 수술할 수 없는 부위고 치료를 해도 6개월 밖에 못 산다고 했어요. 제 억장이 무너졌어요. 


‘어떻게 하면 이 언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봤어요. 그랬더니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는 것, 나를 잊지 않을 거라는 말이 힘이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당시에 언니와 제가 활동했을 때 알던 사람들에게 다 연락을 해서, 언니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면 직접 손으로 옮겨 적어서 언니에게 주겠다고 했어요. 이 사람들하고도 연락을 안 한지 거의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동참해줄지 걱정했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그렇게 받은 메시지를 다 적어서 네 번을  갖다 줬어요. 편지들을 언니에게 읽어주면서 눈물이 참 많이 났어요. 그때 언니가 많이 아파서 갈 때마다 얼굴이나 몸에 마비가 오고 상태가 안 좋았는데도 편지를 읽어주면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이제 언니가 떠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어느 날 그 남편분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아이가 크면 그 편지들 보여주면서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그 편지들은 환자는 물론,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 손편지를 자주 쓰시면 글씨도 잘 쓰실 것 같습니다. 


▶ 전 글씨를 못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언제 한번 못 쓴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웃음). 그때 느꼈죠.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글씨체가 다르다는 걸요. 흔히 글씨를 못 쓰면 악필이라고 하지만, 악필이 아니라 사람들의 개성이 담긴 ‘개성체’에요. 그리고 편지를 보면 글씨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보게 돼요. 내용에 감동을 하는 것이지 글씨체에 감동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내 글씨가 이상하게 보여도 열심히 편지를 쓰면 좋겠어요. 편지는 글씨가 아니라 내용이 감동을 준다는 걸 기억하면서요!


- 신부님이나 수녀님들 중에도 손편지를 쓰거나 강의를 받은 분이 계신가요?


▶ 네, 주일학교 교사 후배였던 신부님이 계세요. 이 신부님이 제 강의를 듣고 수능을 앞둔 고3 아이들에게 손편지를 썼더라구요. 감동 받았어요. 


- 혹시 자녀분에게도 손편지를 써주시나요?


▶ 자주 쓰는 편이에요. 한동안 필(feel)이 통한다는 의미의 ‘필통편지’를 썼어요. 편지를 써서 필통에 넣으면 아이는 모른 채 학교에 갔다가 필통을 열고 편지를 발견하죠. 굉장히 좋아했어요. 보통 편지를 쓰라고 하면 많이 부담스러워 하시는데, 상대방에게 전하는 간단한 메모도 편지가 될 수 있어요.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한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가까이 할 수 있을까요?


▶ 글을 쉽게, 말하듯이 쓰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편지로 글쓰기 연습하는 게 정말 좋아요. 저를 작가로 키운 팔할이 편지에요. 편지 자체가 습작이 되는 거죠. 어떤 글을 써야 하는데 잘 안 써질 때는 친구에게 이것에 대해서 말해준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 거예요. 그렇게 글을 쓴 후에는 문장을 다듬고 고치면 돼요. 글은 배운 사람들이나 타고난 사람들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 글쓰기를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까?


▶ 책을 많이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다보면 생각이 잘 안 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다른 사람 글을 보면서 생각을 확장해나갈 수 있죠. 많이 읽을수록 생각의 범위가 확장돼요. 


-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눈높이에 맞춰서 말씀하세요. 교황님 말씀은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서 하세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비유도 잘 하세요. 최근에 「베르골료 리스트」를 읽었는데 그 책에 교황님이 쓰신 편지가 나와요. 당시에 교황님이 감시를 받고 있는 중에 멀리 계신 분에게 ‘여기 오면 잡히니 아직 오지 말라’는 말을 전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교황님이 ‘여기 기후가 맞지 않아 당신 건강에 좋지 않으니 거기에서 더 쉬어야 한다’는 식으로 돌려 말하셨어요. 사실 이런 비유를 쉽게 하기 힘들어서, 교황님이 정말 비유를 잘 하신다는 걸 느꼈죠.


- 자녀들의 신앙 교육은 어떻게 하시나요?


▶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 있는 성당을 찾아가서 묵상도 하고 주변을 둘러봐요. 저는 보여지는 신앙의 힘이 굉장히 크다는 걸 느꼈어요. 지난 가을에 가족 여행을 가서 그 지역 성당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이는 성호경을 긋고 기도를 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가 신심 깊으신 분인데 아이들을 많이 돌봐주셨어요. 지난번에 함께 외출했을 때 세월호 천막 앞을 지나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아이들 영정사진을 보고 울컥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저희 어머니는 성호경을 긋고 기도 하셨어요. 아마 우리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들을 봤을 거예요. 부모가 스스로 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들을 재울 때, 달래줄 때 성가를 많이 불러줬더니 아이들이 크고 나서도 기억을 해요. 


제가 프랑스 WYD에 가서 들었던 건데요, 프랑스 청년들은 성당에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해요. 그런데 보니까 저희가 ‘배운 신앙’이라면 프랑스 친구들은 ‘젖어든 신앙’이었어요. 그 친구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느님은 내게 배터리같은 존재야. 내가 힘이 없을 때 힘을 충전해주시는 분이거든.’ 그때 이 친구들은 삶 속에 신앙이 녹아있다는 걸 느꼈죠.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여러 성당에서 성서 필사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근에 저도 마르코 복음과 야고보서를 필사했는데, 첫 영성체 받는 아이들의 부모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였어요. 자발적으로 성서 필사를 하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손으로 쓰면 다시 한 번 머리에 새길 수 있어서 머릿속에 오래 남아요. 그리고 눈으로 읽을 때보다 더 가슴에 와 닿고 묵상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원해서 하는 성서 필사는 은총 받는 것이지만 분위기에 휩쓸려서 남들도 하니까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필사보다 더 좋은 것은 성서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거예요. 성서 필사를 열심히 하면 상을 주기도 하는데, 그 상 받는 분들을 보면 ‘성서 말씀대로 실천하시는 분들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사실 성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죠. 저도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고요.


- 한국 천주교회의 평신도의 역할과 비중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 한국 천주교회가 평신도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떠올릴 때 마다 이건 정말 중요하단 걸 깨달아요. 평신도로 시작된 신앙!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들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평신도들과 성직자 중에서 평신도가 말도 많이 하고 교회에 활발하게 참여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반대잖아요. 성직자들이 가장 말을 많이 하고 평신도는 그 말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됐어요.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신앙과 활동, 그것들을 인정해주고 배려해주는 교회가 아쉬워요. 주임신부님이 바뀔 때마다 성당의 시스템이나 모습들이 확 바뀌어 가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에요. 왜냐면 정작 그 성당에 계속 다니는 건 신자들이니까요. ‘이 성당의 주인은 누구인가?’ 생각해볼 때가 많아요.


- 성당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닐까 싶은데요, 혹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편지를 쓰셨을까요?


편지 자료를 찾다보니까 기원전 100년 전에도 쓴 편지들이 있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편지를 주고받은 거죠. 그래서 예수님 시대 때도 편지를 주고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편지를 쓰셨을 거고요. 바오로 사도와 야고보 사도, 베드로 사도 등이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 이유도 예수님께 편지를 받아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편지를 쓰면서 느끼게 된 것은, 편지를 받아본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편지를 쓴다는 사실이에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편지를 쓰셨기 때문에, 그 편지를 받았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 게 아닐까요?


- 프란치스코 교황이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늘 외할머니의 편지가 들어있어요. 손편지를 쓰시는 선생님에게는 남다르게 보이실 것 같습니다. 


▶ 책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찌릿!’했어요. 교황님도 손편지를 사랑하시는 분이구나 싶어서요(웃음). 그 편지에 담긴 할머니의 진심과 축복하는 말씀, 그리고 ‘우리 집은 늘 열려있다. 돌아오고 싶을 때는 언제든 돌아오라’는 구절을 보고 정말 자비로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사람의 편지가 다른 한 사람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큰 힘이 있다고 느꼈죠. 교황님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시는 데에는 할머니의 편지가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쓰는 손 편지가 한 사람의 인생을 구원할 수도 있다고 믿어요. 


- 12월 8일부터 자비의 희년이 시작됐는데요. 그래서 손편지를 ‘자비의 편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 제가 갖는 하느님의 이미지는 자비로움이에요. 예전에 제가 신앙을 멀리 했을 때 생활성가 ‘하느님의 그 사랑’을 들었어요. 돌아온 아들에 비유한 가사인데 그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어요. 하느님은 날 계속 기다리고 자비로운 분이라는 생각을 가졌죠. 우리 모두가 ‘작은 사도’니까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마음 안에 갖고 상대방을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하느님처럼 우리가 자비로워진다는 건 힘든 일이지만, 노력은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안 되면 내일 또 하고, 내일도 안 되면 모레 또 하고요. 그런데 이것을 말로 하기는 힘드니까 자비로움을 손편지에 담아서 전하면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요. 


- 사복음서에는 자비로운 아버지 모습의 하느님은 자주 볼 수 있지만 자비로운 여성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생각하는 성모 마리아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 제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성모님은 예수님을 어떻게 키우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수님 잃어버리고 찾아다녔더니 예수님은 ‘내가 여기 있는 줄 모르셨냐’고 반항하시고, 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건 가장 큰 불효인데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을 부모가 보기도 하고… 성모님이 정말 마음에 아프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성모님이시니까 우리를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는 분이기도 하고 가슴 아픈 엄마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 아닐까 싶어요.


- 아이를 낳는 고통과 기쁨이 선생님 개인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합니다. 


▶ 첫째는 양수가 터져서 3주 일찍 나오는 바람에 순산을 못하고 수술 했어요. 마취에서 깨어나고 아이를 처음 봤는데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내가 이런 아이를 낳았구나!’ 감격스러우면서도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들었어요. 여자들이 아이를 낳는 건 은총이지만 키우는 과정이 쉽지 않아요. 그래도 고비를 넘고 나면 그것도 은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죠. 첫째를 낳고 우울증도 오면서 어려웠는데, 그때 성모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먼저 그 길을 걸은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성모님도 힘드셨지만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것이 큰 은총이듯이, 제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은총이죠. ‘힘든 은총’이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 손편지의 인문학에 대한 포부를 밝혀주세요. 


▶ 제가 사람들에게 60세가 되면 ‘편지로 보는 인문학’이란 책을 내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인문학자가 아니라서 인문학 책을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한편으로는 삶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인문학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편지로 보는 인문학’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편지 속에서 문학, 철학, 역사를 다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편지로 보는 역사라고 해서 역사 속 편지들을 모아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거죠. 이런 것들을 소개하면서 편지가 사소한 것 같지만 당신이 쓰는 편지 한 통이 역사에 남아서 역사를 증명하는 도구가 될 수 있고, 편지 한 통이 후에 큰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실제로 강의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더라고요. 편지 한 통이 인문학이 된다는 것! 참 매력적인 일이라고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선생님에게 어떤 분이신가요?


▶ 지금 제 서재에 예수 그리스도 이콘이 있어요. 램브란트 그림인데 예수님 눈이 굉장히 슬퍼요. 그 이콘을 본 사람들이 왜 이렇게 슬픈 예수님을 걸어뒀냐고 물어보는데 전 그 이콘이 정말 좋아요.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예수님인데, 예수님에게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요.


제가 좋아하는 이콘 중에 ‘그리스도의 우정’이 있어요. 예수님이 수도원장 멘나스와 어깨동무를 한 그림인데 자세히 보면 멘나스는 발이 있지만 예수님은 없어요. 난 발이 있어서 언제든 떠나갈 수 있고 돌아올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발이 없어서 항상 그 자리에 계신다는 의미에요. 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항상 저를 지켜봐주시는 예수님인거죠. 


- 한국 천주교회에 가톨릭 문인들 수가 적은데 가톨릭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작가 중 한 분으로 많은 활동 하시고, 손편지가 고통 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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