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과 ‘초월’이라는 단어가 그리워지는 시대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극복과 초월의 실체를 접하기란 매우 어렵다. 어쩌면 현재로써는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극복과 초월의 세계를 실체화할 수 없기에 남북 대화와 교류도 단절되고, 경제도 활력을 얻지 못하고, ‘헬조선’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극복과 초월은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고, 과감성을 내포한다. 창의력뿐만 아니라 순발력과도 관련이 있다. 극복과 초월은 한순간에 발화한다. 그 한순간이 미래를 창조하고 역사를 견인한다.
한순간에 극복과 초월의 실체를 보여준 청년 대왕 알렉산더의 일화는 유명하다. 여러 겹의 매듭을 풀어보라는 과제가 제시되었을 때 그는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매듭을 풀려고 애쓸 것 없이 칼을 한 번 내려침으로써 그 과제를 단숨에 해결해버렸다.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의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달걀을 반듯이 세우는 내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콜럼버스 차례가 왔다. 그는 지체 없이 달걀의 한쪽 끄트머리를 깨서 둥근 부분을 없앤 다음 반듯이 세울 수 있었다.
사람들이 항의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달걀을 반듯이 세우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항의였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그럼, 자네들이 먼저 그렇게 할 것이지.”
최고 권력의 손안에 있었던 극복과 초월의 기회
나는 3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할 때 극복과 초월이라는 단어를 그가 양손에 잘 쥐고 있기를 빌었다. 그에게는 극복과 초월의 명제가 주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극복과 초월을 실체화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대략 40%로 가늠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해줄 부류다. 전임 대통령 이명박 당시 구축된 종편방송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의 엄호도 받고 있다. 영남 패권주의로 똘똘 뭉친 관료들과 보수 정권에 우호적인 국정원, 검찰, 군료들이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 조건 속에서 극복과 초월의 날개를 편다면 순식간에 상승기류를 탈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만약 문재인이 당선되어 개혁의 기치를 든다면 보수언론들부터 난리를 치고 방해를 해서 어려움에 봉착하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리라는 생각이었다.
극복과 초월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집착하지 않는 일, 과거의 아버지를 따라가는 일을 피하는 방향이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사사로운 정리를 극복하고 초월하는 것이야말로 큰 정치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쉬울 수도 있는 길이었다.
최근 전국 도처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기념하는 대규모 사업들이 실시되고 있다. 총 비용은 자그마치 1873억 원이다. 갖가지 사업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울릉도에 가서 하룻밤 묵고 온 것을 기념하는 ‘1박기념관’ 건립도 있다. 12억 원이 들어간다. 경북 문경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교 시절 하숙집 복원비로 17억 원을 쓰기로 했다. 전국 도처에 동상이 세워졌거나 세워질 예정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신’이 되어가고 있다.
갖가지 박정희 기념사업들이 추진되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 때문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그런 사업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임 후에도, 또 먼 훗날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사업들이 천년만년 이어지리라고 믿는 그 ‘착각’이 실은 더욱 안타깝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갖가지 기념사업들을 미리 알고 단호히 불허하거나 만류를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것은 그대로 극복과 초월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매듭에만 의존하는 ‘매듭정권’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불허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념사업들이 실시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가 더욱 탄력적으로 살아나지 않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가지 않고, 5년 단임의 한계를 깊이 명심하고 겸허한 자세로 오로지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민주화·민생 쪽으로만 전력투구했다면 어땠을까.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회복은 물론이고, 제18대 대선 부정선거 시비도 잦아들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 ‘테러빙자법’이라고도 불리는 테러방지법, 독소조항 논란이 제기된 ‘국민감시법’을 밀어붙이는 무리수도 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테러방지법은 정치가 아닌 통치, 독재를 위한 법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인권을 침해하고 헌법에 위배하며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에 야당 의원들은 수정안 관철을 위해 무려 192시간 26분 동안 국회 본회의장에서 릴레이 필리버스터를 전개했다.
총 38명(더불어민주당 27명, 국민의당 5명, 정의당 5명, 무소속 1명)이 무제한 자유토론에 나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한 테러방지법은 새누리당의 단독 표결로 통과되고 말았다. 가슴 아픈 일이다. 시민의 자유를 제약할 수도 있는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은 과거로의 역주행과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게 됐다.
참여정부 5년 동안의 재정 적자는 10조 원이었지만,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98조로 늘었고, 박근혜 정부 3년 동안에 167조로 늘어났다. 또 국가채무는 600조 원을 넘어섰고, 가계부채는 120조를 넘겼다. 이에 반해 30대 재벌기업들의 사내 보유금은 710조원에 이르고 있다. 한국 서민경제는 갈수록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헤어날 길이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부자 감세를 고수하고 있다.
남북교류·경제협력의 문을 열지 않고서는, 또 재벌보호 정책을 탈피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의 경제 회생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여러 겹의 단단한 매듭이 대한민국의 목을 옥죄고 있다. 도저히 세워지지 않는, 자꾸만 넘어지는 달걀이 우리 앞에 있다. 한 순간의 발화, 극복과 초월의 세계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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