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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신학생들의 ‘진짜 농부’ 되기 2부 "감을 따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 최진 2016-08-22 10: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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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부산교구 신학생들의 생태농촌체험이 진행됐다. 이번 농촌 체험은 기획부터 준비, 예산마련, 실제 진행을 모두 신학생들 스스로 해결했다. 식사까지 스스로 해결했다는 신학생들의 ‘진짜 농부되기’ 프로젝트를 3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 밀양분회에서는 밭농사와 과수원 중심의 농활이 이뤄졌다. ⓒ최진

천주교 부산교구 신학생들이 농활을 하는 밀양분회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 밀양터미널로 향했다. 언양분회가 논농사 중심이라면 밀양분회에서는 밭농사와 과수원 중심의 농활이 이뤄졌다. 간밤에 내린 비로 서늘한 날씨를 기대했지만 정오를 채 넘기기 전부터 다시 폭염이 시작됐다.


밀양터미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달려 인산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기사를 포함해 5명이 탔던 마을버스가 떠나자 논으로 둘러싸인 외딴 곳에서 외톨이가 됐다. 도심에서는 그토록 넘쳐나던 차들도 보이지 않았다. 


인산 정류장 앞에는 미리벌중학교가 있었는데, 이 학교 학생들은 군것질도 안하는지, 분식점이나 문방구 등 학교 인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게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아무 가게도 보이지 않았다. 농가와 논밭, 학교와 하늘, 산, 그리고 방금까지 달려온 외길이 전부였다. 청정 교육환경이 이런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산중학교를 뒤로하고 과학문명의 열매인 휴대폰의 안내에 따라 목적지로 향했다. 과수원 나무그늘을 생각하며 폭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농장으로 향하는 길은 뙤약볕 내리쬐는 논길이었다.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맑은 하늘을 감상하고 갈만한 넉넉한 농촌 환경이었지만, 상대는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 밀양시 청도면 인산리에 위치한 감고을농장은 주품종인 감 이외에도 밤이나 자두, 매실, 대추 등을 줍거나 따면서 생태계 체험을 할 수 있는 자연교육농장이다. ⓒ최진

그렇게 30여 분을 걸으니 감고을농원 교육농장(이하 감고을농장)이 나왔다. 산 초입에는 창고와 주택 등 4개의 건물이 있었고, 산 중턱부터 정상까지는 감농장 이었다. 밀양시 청도면 인산리에 위치한 감고을농장은 주품종인 감 이외에도 밤이나 자두, 매실, 대추 등을 줍거나 따면서 생태계 체험을 할 수 있는 자연교육농장이다. 


감고을농장에서 농활을 하고 있는 신학생은 6명이었다. 밀양분회로 농활을 온 19명의 신학생들은 각각 감농장과 사과농장, 그리고 채소밭으로 6명씩 나뉘어 활동하고 있었다. 오전 6시부터 10시까지 산에 올라 일을 했던 신학생들은 오후 3시경엔 휴식 중이었다. 풀빛으로 물든 목공용 장갑이 고단했을 오전 농활 내용을 대신 증명하고 있었다. 


임윤철 감고을농장 사장은 “너무 더워서 이 시간은 원래 농민들도 쉬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하필 휴식시간에 방문한 기자가 야속할 수도 있었다. 휴식중인 신학생들이 하나 둘 방에서 나왔다. 그 사이에 임윤철 사장께 감농장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백남기 선생과 관련한 농민 생존권 문제도 함께 물었다.


“언론에서 떠드는 농민지원정책은 실질적인 우리 농민들 생존권과는 거리가 멀다”


임 사장은 “지금 농민들은 전두환 시대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쌀값이 20년 전 가격과 똑같다는 말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가에 비해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라며 “경제적인 여건이 너무 안 좋아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간다”고 털어놨다.


그는 “작년과 재작년 피해로 완전히 적자 상황이다.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럽다”며 “경제적 생존권이 제일 문제다. 정부가 농민을 돕는 정책은 보여주기 식이기 때문에 농민들은 20년 전보다 더 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 11일 416연대와 백남기대책위는 새누리당사 앞에서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 청문회를 요구하는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최진


보여주기 식 정책이 어떻게 행해지는지 묻자, 임 사장은 “나라에서 시범적으로 선정한 몇몇 농가에게만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그 농가를 제외한 다른 농가들은 지원을 받지 못한다”며 “그렇게 한 농가를 선정해 지원을 해주고 방송이나 텔레비전에서 그것을 홍보한다. 언론에서 (정부의 농민지원 정책을) 떠들어대는 것은 실질적인 농민 생존권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농에서 도와주기 전까지는 감을 팔 곳이 없어서 버려야 하는 위기도 많았다고 말했다. 농민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정부는 언론을 통한 홍보 위주의 정책만 시행하기 때문에, 농민이 살아남으려면 각자 자구책을 간구해야 한다고 했다. 


임 사장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심적으로나 영적으로 마음이 참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부산교구 학사님들이 농민의 삶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 찾아주니 희망이 생긴다”며 “눈물 속에서 절망에 빠져있는 농민들의 현실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셔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신학생들은 햇빛에 그을려 붉게 상기된 얼굴, 자고 일어나 뻗친 머리 모습을 하고 거실에 모였다. ⓒ최진

오전 작업의 성과를 탐문해봤다. 그러자 “학사님들은 일을 엄청 잘한다. 다른 곳에서 농활을 오면 그늘에서 쉬거나 시간 때우기 식인 경우가 있는데, 학사님들은 쉬라는 말을 할 때까지 쉬지도 않는다”라며 “사명감으로 농촌을 스스로 찾아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남다르다”고 칭찬했다. 칭찬이 이어지는 사이, 6명의 신학생이 거실에 모두 모였다. 자신들에 대한 칭찬을 옆에서 묵묵히 듣던 신학생들은 햇빛에 그을려 붉게 상기된 얼굴, 자고 일어나 뻗친 머리 모습을 하고 거실에 모였다. 


옷을 잘 만들거나 집을 잘 지으면 디자이너를 칭찬하듯이 음식이 맛있으면 당장 눈에 보이는 요리사에게만 신경을 쓴다. 최근 텔레비전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에게 감사하거나 농민들의 힘든 현실에까지는 의식이 닿지 않는다. 

감마을농원 농활에 참여한 송승윤 신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이틀째로 접어드는 농활에 대해 “34일 일정으로 농활을 한다고 해서 크게 농촌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본당별로 바쁘게 돌아가는 여름방학 때, 짧은 시간이나마 시간을 맞춰 이렇게 농촌을 찾는 것이 의미 있다고 여겨진다며 짧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농활에 임할 수 있다고 했다. 농활이 끝나면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오는데, 방학 마지막을 이렇게 모여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어서 기쁘다며 수줍게 웃었다.

 

▲ 먹는 것은 몸속으로 들어가고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인데, 옷이나 집에 비해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을 이번 농활을 통해 깨달았다. ⓒ최진

이승우 신학생은 먹는 것은 몸속으로 들어가고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인데, 옷이나 집에 비해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을 이번 농활을 통해 깨달았다며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됐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감 농장 신학생답게 감을 하나 따려고 해도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좋은 감을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농민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것은 한순간이다라며 그 동안 나의 생명을 유지시켜준 수많은 음식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에게 왔고, 나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옷을 잘 만들거나 집을 잘 지으면 디자이너를 칭찬하듯이 음식이 맛있으면 당장 눈에 보이는 요리사에게만 신경을 쓴다. 최근 텔레비전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에게 감사하거나 농민들의 힘든 현실에까지는 의식이 닿지 않는다. 농촌에 대한 것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는 농활을 통해 하나의 감을 따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힘들게 가지 하나를 잘라내고 보살피는 작업을 통해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요리중심의 음식문화가 아닌, ‘생명중심의 음식문화를 체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삶에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음식이 감사와 생명으로 다가오는 것은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중요한 것이라고까지 덧붙였다.

 

▲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농민의 수고로움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최진


기도의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기도의 대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농민의 수고로움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고 요약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감나무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송승윤 신학생은 이러한 체험을 신앙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신앙인들은 소자를 위한 기도’, ‘성인들을 위한 기도등 다양한 기도를 바친다. 그 중에는 농민을 위한 기도도 있다. 농활은 바로 이 농민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기도들은 특정 시기에 따라 바치기도 하고, 지역적인 특성을 이유로 바치기도 하는데, 단순히 의무감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자기만족에 그치는 기도가 될 수 있다라며 기도의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기도의 대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평소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을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 했다.

 

농민을 위한 기도에 마음을 담고, 그것을 하느님께 올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번 정도는 농활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듯 우리도 농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번 체험이 신학생들에게 얼만큼의 무게로 다가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 감고을농장에서 농활을 하고 있는 신학생은 6명이었다. 밀양분회로 농활을 온 19명의 신학생들은 각각 감농장과 사과농장, 그리고 채소밭으로 6명씩 나뉘어 활동하고 있었다. ⓒ최진


뜨거운 이틀이 지나고 다시 이틀이 남았다. 연일 지속되는 폭염가운데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하지 않듯이 짧은 농촌체험활동이 하루아침에 곡식을 여물게 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스스로 일을 찾아 하늘을 보고 땅을 손으로 더듬는 과정에서 문득 몸으로 느껴지는 고단함과 뿌듯함이 조금이나마 우리 농민들의 삶을 이해하게 할 것이다.

 

이제 겨우 하루 일을 끝냈다. 저녁을 지어 먹어야 잠을 자고 또 내일 일을 할텐데 저녁 당번은 누가 됐는지 솜씨가 좋기를 하늘에 기도할 뿐이다



** 다음 이야기는 3부(기사보기)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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