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한중간이다. 산야에는 봄꽃들이 가득하다. 목련도 있고, 개나리와 진달래도 있다.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함성을 지르는 것도 같다. 계절의 변화로 여러 가지 봄꽃들이 차례를 잊고 일시에 한물지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봄의 향연은 찬란하고도 아름답다.
그러나 봄꽃들에는 애잔함이 있다. 봄꽃들을 보면서 애잔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4월에 피고 지는 꽃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봄꽃들을 보면서 4·19혁명을 연상하기도 한다. 4·19 때문에 봄꽃들이 더욱 애잔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4·19혁명에는 핏빛이 어려 있다. 화사하게 피었다가 무참하게 저버리는 목련과 같은 단명의 애련함이 얼비쳐 있다. 이래저래 4·19혁명은 봄꽃들의 운명과 이미지를 반영한다.
하지만 무릇 꽃들에는 생명의 순환 법칙이 내재해 있기 마련이다. 꽃이 지는 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새로운 생명의 이어짐을 위해 꽃이 지는 것이다.
4·19혁명은 그래서 더욱 꽃이다. 4월의 한중간에 봄꽃들과 함께 피었던 4·19혁명은 오늘도 분화를 계속한다. 4·19혁명의 꽃이 피어 있는 저 역사의 둔덕으로부터 오늘도 민주주의가 고동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무릇 기술들에는 앞머리에 4·19혁명에 관한 논급이 자리한다. 그래서 4·19는 오늘도 혁명이며 위대하고도 값진 민주주의의 꽃이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후미진 곳에 4·19혁명의 실화를 간직하고 살면서 우람한 나무로 키워내는 이가 있다. 일찍이 청년 시절 서울에서 4·19혁명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홍영유 선생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경복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다녔다. 4·19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4월 혁명사인 「기적과 환상」을 공저했다. 1963년 육군 보병학교 간부후보생반 수료 후 장교로 임관했고, 제대 후 1966년에는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에 근무했다. 1968년부터는 신민당 기관지 < 민주전선 >편집 자문위원으로 일하다가,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쫓기며 1971년부터 절필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7년 후인 2008년 < 혁명과 반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 어떤 4월의 기억들 >을 발간했다. 그 후 기존 저서의 내용을 확대하고 승화시켜 4·19혁명 50주년이던 2010년 「4월 혁명통사」(전10권)을 발간했다.
선생은 제1권의 책머리에 ‘헌정사(獻呈辭)’라는 글을 올렸다. 세상의 모든 저술들에는 책머리에 ‘발간사’나 ‘추천사’ 따위 글을 올리게 마련이다. 그와 달리 홍영유 선생이 제1권 책머리에 헌정사를 올린 것은 저 봄꽃들처럼 무참히 저버린, 그러나 새로운 생명으로 재생하는 4·19혁명의 모든 영령들 앞에, 그리고 진정한 역사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을 소망하는 이 나라의 모든 생령들 앞에 자신의 저서를 바친다는 뜻이다.
선생은 이 헌정사의 말미에 자신의 뜻을 명료히 천명한다.
“우리들은 다 같이 머리 숙여 / 자유와 민주를 위해 투쟁하시고 / 자손만대에 고결한 승리를 안겨 주신 / 빛나는 용사들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 어떠한 명분으로라도 / 독재정권은 조국 산하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 역사에 길이 남겨 / 영겁토록 증거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이곳에 우뚝 섭시다”
선생은 10권의 책 표지마다 각권의 지표가 되는 말을 표지 머리에 올려 각권의 유기성과 특색을 반영한다.
제1권은 ‘독재의 쇠사슬을 끊고’이고, 제2권은 “그 치솟는 혁명의 불기둥‘이며, 제3권은 고요한 합포만의 성난 파도’이다. 제4권은 ‘국민혁명의 불을 당 긴 젊음의 절규’, 제5권은 ‘선혈로 씻어 내는 독재의 피고름’, 제6권은 ‘폭정의 거리를 뒤덮은 반정의 물결’, 제7권은 ‘피의 화요일, 이름 없는 별이 되어’이다. 또 8권은 ‘ 저마다 피어난 진홍빛 야생화’, 제9권은 ‘반정의 거센 물결 언 땅을 갈아엎다’, 마지막 10권은 ‘그대, 천년을 읊어줄 종이 되어라’로 되어 있다.
선생은 고대생으로 4·19혁명 대열에 참여했던 자신의 이력과 기억을 바탕으로 당시의 모든 사실들과 논증들을 망라하여 4월 혁명의 전모를 체계적으로 기술한다. 4월 혁명에 주역이나 조역자로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새기며 그들의 활동 내역이나 사건 개요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고 있다.
선생의 이 저서는 ‘통사’라는 이름이 반영하듯 당시의 크고 작은 일화들을 모두 모아 백화점처럼 예시해 놓았지만, 사료적 가치를 염두에 둔 듯 사실성을 현미경처럼 비추고 있다.
4월 혁명과 관련하는 당시의 모든 사건들과 인물들을 세세히 탐색하고 검증하는 범상치 않은 노력들과 치열성은 절로 머리를 숙이게 한다. 선생의 거대 작업을 놓고 감히 허튼 소리를 피력한다는 것에 큰 죄송스러움을 느낀다.
선생의 「4월 혁명통사」를 처음 접하고 오랜 시간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우리 고장 출신은 아니로되, 안면도에 터를 잡고 노년의 삶을 알뜰히 꾸려 가시는 선생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컸다. 더욱이 선생이 안면도에 터를 잡은 이후에 「4월 혁명통사」를 발간한 사실은 내게 각별한 정감을 갖게 했다. 허튼 소리나마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의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안면도에 사시면서 < 태안문학회 >에 참여하시는 박풍수 선생에게서 홍영유 선생에 관한 말들 듣고 「4월 혁명통사」한 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직 홍영유 선생을 뵌 적은 없다. 선생에 대한 외경심으로 선생을 뵙는 것조차 죄송스러울 것 같다.
지면의 한계를 느끼면서 홍영유 선생의 거대 저서 「4월 혁명통사」에 대한 이 작은 논급이 혹여 선생께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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