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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는 골프하면 안 돼 김근수 편집장 2015-05-28 11: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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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골프장에 드나드는 성직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골프하는 이유와 목적은 취미, 건강, 성직자 사이의 친목, 평신도와 교류 등 여럿일 수 있다. 성직자들과 함께 골프장에 나가는 평신도들도 있다. 골프하는 사제를 보는 평신도들의 의견도 다양할 수 있다. 골프 하나 가지고 성직자의 삶 전부를 잴 수도 물론 없다.


골프가 건강에 유익한 운동인지 아닌지, 평신도가 골프를 해도 좋은지 등을 여기서 논의하는 것은 아니다. 골프하지 않는 사제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문제다. 골프가 성직자의 본분에 어울리는 일인지 다만 보려 한다. 골프가 사제의 삶에 미치는 세속화 측면보다는 골프가 성직자의 삶에 어울리는지 그 신학적 논의에 집중하고 싶다.


마르코복음은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집, 형제, 부모, 자녀, 토지를 자발적으로 버린 제자들의 모습을 소개하였다.(마르코 10,28-31) 루가복음은 공동체 안팎에서 활동하던 방랑 선교사들의 자발적 가난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들의 자발적 가난은 부자 신자들에 대한 경고의 표현이었다. 부자들을 비판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예수의 모습을 루가복음 저자는 그리스도교에 전해주었다.


골프하는 사제가 있다는 사실로도 충격이지만, 그 숫자가 많다는 것은 큰 충격이다. 골프하는 주교도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골프 가방을 차에 싣고 골프장으로 향하는 사제의 뒷모습에 신자들은 우울하다.


교포사목 사제들이 골프장에 들락거리거나 해외여행 중에 골프장에 가는 사제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사제들끼리 골프대회를 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않다. 은퇴사제가 골프장에 있는 모습은 신자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수십 년 사제생활의 노고를 스스로 망가뜨리는 풍경이다.


골프하는 성직자가 가난한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위해 애쓰고 있을까. 불의한 세력에게 저항하고 있을까. 골프하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자랑스럽게 고백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골프채를 쥔 손으로 그리스도의 고귀한 성체를 당당히 모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골프가 사제직에 잘 어울리는 운동이라면, 골프를 다른 나라 사제들에게도 우리가 적극 알리고 권해야 할까. 한국 사제들의 골프하는 소식을 교황청에도 자랑하고 교황에게도 알려야 하는가. 골프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회쇄신 노력을 빈정대고 비웃는 일에 속하지는 않을까.


골프하는 사제도 교회법상 성직자로서 존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골프하는 사제가 예수그리스도의 참 제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골프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핑계를 개발하고 해명하느라 쩔쩔매는 사제의 모습은 보기 딱하다. 골프를 용기 있게 중단하는 사제가 아름답다.


골프하지 말자고 사제들끼리 서로 권면하고, 스스로 골프를 중단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자비의 희년이 시작되는 올해 12월에는 한국에서 단 한 사람의 주교나 신부도 골프장에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제의 자발적 가난은 돈이라는 우상에 빠진 신자들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경영자 마인드에 더 물들어가는 교회 현실에 대한 반성의 표현이 될 수 있다. 가난의 의무가 없지만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하는 성직자가 늘어나길 바란다. 가난하지 않으면 아직 성직자가 아니라는 말씀을 감히 드리고 싶다.


부자나 권력자들과 어울리거나 그들과 친분을 자랑하는 성직자의 모습은 보기 추하다. 예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부자나 권력자들과 어울리면서 망가지지 않는 성직자를 보기는 아주 어렵다.


가난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스스로 가난하게 살려 애쓰는 성직자의 모습은 존경스럽다. 예수는 그렇게 살았다. 가난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스스로 가난하게 살려 애쓰는 성직자는 로메로 대주교처럼 언젠가 회개의 영광을 맛보게 된다.



성직자가 있어야 할 곳은 골프장이 아니라 고난의 현장이다. 주교는 순교하는 사람이지 경영자가 아니다. 사제는 골프채를 잡지 말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엘살바도르 가난한 사람들은 로메로 대주교를 보며 “이런 목자와 함께라면, 우리가 착한 양떼 되는 일은 어렵지 않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그렇게 자랑스레 말하고 싶다. 골프하는 사제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고통 받는 저 백성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 칼럼은 쓰는 내 마음은 편하지 않다. 이런 칼럼을 쓸 필요가 없었어야 했다. 이 글로 마음 아플 사제들에게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 골프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사제들을 예우하고 존경하자고 나는 평신도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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