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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같이 딱딱한 마음, 율법주의자들 신성국 신부의 ‘요한, 생명이야기’ 9 신성국 2018-02-13 16: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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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 1-12절. 가나의 혼인잔치이야기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제자들이 가나 마을의 혼인 잔치에 참석했을 때에 일어난 표징 사건이다. 가나는 예수의 고향 나자렛에서 15km 떨어진 조그마한 마을이다. 가나 지역은 유대의 권력층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살던 마을이다. 예수가 이런 지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당시 사회 제도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이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가나(Cana)’의 뜻은 ‘얻었다’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새 백성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 ‘마리아’는 이스라엘의 구약 백성을 상징하고 있다. 혼인잔치는 구약이 종결되고 신약의 시작을 알리는 표징이다. 예수와 제자들은 구약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새 시대의 새 백성이다. 말하자면 가나의 혼인은 새신랑과 새신부의 결혼을 상징하며 구약이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마리아가 예수께 이 사실을 알렸다.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여인이여, 나에게 어쩌란 말입니까? 아직 제때가 오지 않았습니다”고 한다. 마리아의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는 알림은 구약시대의 종결을 선언한 것이다. 돌 항아리에 포도주가 없다는 뜻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마감되고 예수가 오심으로 인해 새 시대가 도래 했고, 새 신랑이신 예수와 새 신부인 새 백성과의 만남, 혼인이 이루어진다. 


포도주가 떨어진 돌 항아리는 율법이다.


왜 비어있는 돌 항아리인가? 돌 같이 딱딱한 마음, 움직이지 않고 경직된 사람들이 율법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사랑으로 맺지 않고, 율법의 잣대로 맺게 한다. 율법 조문을 얼마나 잘 지켰느냐? 안식일 규정을 얼마나 잘 따랐느냐에 따라 하느님이 축복을 주고 구원을 준다는 율법 절대주의가 텅 빈 돌 항아리다. 


속은 텅 비어있고, 공허한 껍데기다. 속이 알차지도 않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해줄 컨텐츠가 없는 종교는 빈항아리와 같다. 수십억, 수백 억 짜리 성전을 건축하지만 종교가 사회 안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다면 속빈 항아리다. 사회의 부패와 불의를 수수방관하거나 동조하는 종교는 회칠한 무덤에 불과하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적으로 증거 하지 못하는 종교는 율법주의에 빠진 낡은 유대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예수는 그것을 종결짓고, 새 시대를 여신다고 선언한 것이 가나의 혼인잔치 표징이다. 새 신부인 새 백성은 누구인가? Logos의 백성이다. 생명과 빛과 진리이신 예수를 맞아들인 사람들이 새 신부, 새 백성이다. 마리아께서 하인들에게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지시한다. 하인은 새 백성이고, 예수의 협조자들이다.


새 시대가 왔다. 과거에 머무를 때가 아니다.


마리아와 대비되는 인물로 잔치 책임자(The Headwaiter)가 등장한다. 마리아는 잔치에서 사람들의 처지를 잘 알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그래서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예수에게 간절히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잔치 책임자는 백성들의 처지를 모르는 자이며 관심도 없다. 잔치 책임자가 ‘아무 것도 모른 채’라는 표현이 나온다.


오늘 가나 혼인잔치는 표징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새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다. 나아가 “여인이여,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는 예수의 말씀을 통해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신약의 시대가 완성됨을 미리 예고하고 있다.


새 시대가 왔다. 그러나 새 시대가 왔음에도 구시대에 안주하며,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는 교회라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가 없다. 중세시대에 누렸던 교황 권력, 영주와 주교들의 권력에 취해서 과거의 영예를 그리워한다면,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새 시대는 경직된 권력이 아니라, 하인들처럼 예수와 함께 봉사하며 부드럽고 유연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자세가 예수 추종의 길이다.




[신부열강]은 ‘소리’로 듣는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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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신성국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파견사제다.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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