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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없애라” 신성국 신부의 ‘요한, 생명이야기’ 11 신성국 2018-02-20 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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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3-22절은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이 아니라 ‘성전 파기 사건’이다. 예수가 판단하기에 그만큼 예루살렘 성전은 타락과 부패의 온상이었다.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사라졌기에 예수는 호되게 채찍을 휘두르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예수가 성전에서 벌인 행동에는 표징이 담겨있다. 


유대인들은 의무적으로 1년에 세 차례 성전을 방문하여 축제를 지냈다. 파스카 (과월절, 해방절) 축제, 초막절, 오순절 축제다. 이 본문은 해방절 축제 때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예루살렘 인구는 6만 여명 정도였는데, 축제 중에는 순례자들로 인해 12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해방절을 맞아서 희생되는 양은 무려 18,000마리였다. 


예수도 해방절 축제에 참가했는데,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다.” 예수의 이런 거침없는 행동은 예루살렘 성전 역사 이래 초유의 충격적인 사건이고, 종교적으로는 독성죄에 해당하는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예수의 이런 행위는 파문에 해당하는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었다. 


예수는 성전체제와 율법체제, 식민지 억압체제에 도전장을 내미셨다. 성전을 중심으로한 사제들, 사두가이, 바리사이, 로마 식민지 지배자들은 3대 축제가 엄청난 돈벌이 수단이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인 세금과 헌금을 쌓아두는 대형금고가 있었고, 성전이 아니라 돈을 섬기는 신전이었다. 


모든 유대인들은 해방절 축제에는 성전에 가서 성전세와 국세를 내는데 반 세켈을 바쳤다. 반 세켈은 두 데나리온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40만 원 정도였다. 세금뿐 아니라 축제 때에 희생제물로 바칠 양, 소, 비둘기 등을 구입하면서 10만 원 정도 비용이 들고, 해외의 순례자들은 환전을 해야 했다. 타 지역과 해외에서 오는 순례자들은 여행경비를 포함하면 1인당 축제 참가비로 기본 100-200만원은 지불해야 했다. 


엄밀히 말해서 축제가 아니라 착취와 갈취였다.



백성들은 율법에 따라 축제의 의무를 지켜야 했지만 실제로는 성전의 사제들을 위한 축제에 불과했다.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기에도 힘겹고 허덕이는데, 종교마저 백성들에게 율법이라는 무거운 짐으로 착취를 일삼고 있으니 백성들은 노예 생활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예수는 성전으로 상징되는 유대교의 억압구조를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해방절에 성전에 가셔서 아수라장으로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본래 성전의 시초는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탈출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 하느님은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이끌어내어 시나이 광야로 데려왔다. 광야 생활하면서 파스카 축제를 벌이고, 초막절과 오순절 축제를 거행하면서 해방과 자유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의 기념 예배를 올렸다. 모든 축제는 탈출 사건에 기원을 갖고 해방 정신을 구현하는 데서 뿌리가 있는 것이다. 사막 한 가운데에 천막을 치고, 하느님과 함께 누리는 자유와 해방을 노래하던 그 신앙이 성전 신앙이다.  


그런데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이러한 탈출기 원정신은 사라지고, 오직 돈벌이에 눈이 먼 사제들의 장터가 되어 타락했으니 예수의 심정은 가만히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성전을 제대로 세우는 일, 성전 신앙을 회복하는 일, 억압에 짓눌린 백성들의 삶을 해방시키는 일을 당신 사명으로 삼으신 예수는 성전을 마침내 뒤엎어 버리고야 말았다. 


명동성당은 언제 부활하려나?


오늘날 한국의 성전들을 바라본다. 예루살렘 성전과 다를 바가 없다. 돈 없으면 신앙생활에서도 주눅 들고, 부담이 되어 나가기도 힘들다는 서민들이 의외로 많다. 한국 교회의 성전들은 거룩한 하느님의 집을 건축한다는 미명하에 화려하고, 웅장하고, 값비싼 장식들로 치장하고 있다. 그 성전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거두어들이는 헌금이 만만치 않다. 사람 위에 성전이 있고, 성전을 위해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뒤바뀐 상황이다. 


한때는 전국의 다방보다 더 많은 교회가 있다는 냉소적인 비판을 받았고, 지금은 어둔 밤에 서울 남산에 올라가 보면 온통 빨간 십자가만 보인다고 할 정도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교회가 있지만 세상은 왜 이리 더 어둡고, 더 불평등하고, 혼란스러운가? 


매년 수많은 신학교에서 목사와 신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세상의 어둠이 더 짙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고 지친 사람들이 가는 곳은 기성 종교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신천지 같은 이단 종교로 몰려가고 있다. 오히려 그곳이 더 인간이적이고 사람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할 말이 없다. 따뜻하지도 않고, 겸손하지도 않고, 소박하지도 않은 교회는 이제 버림받았다. 사람들로부터, 예수로부터.  


하느님의 성전은 십자가를 걸어둔 건물이 아니라 예수의 몸이다. 예수의 삶과 체취가 물씬 나는 성전을 세워야 한다. 예수의 말씀이 생활 속에 살아있는 성전을 만들어야 한다. 건물이 아니라 삶 속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몸이 성전이다. 


성전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곳이다. 하느님을 품고 사는 자들이 살아있는 성전이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고 민주화와 인권의 보루가 된 명동성당의 빛은 사라지고 상업주의에 찌든 예루살렘 성전이 되어버린 암흑의 명동성당은 언제 부활하려나?      




[신부열강]은 ‘소리’로 듣는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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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신성국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파견사제다.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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