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살길을 위해 애국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반정부주의자, 좌익세력, 민족주의자 그리고 항일독립운동가들까지 빨갱이로 몰아 제거했다.
좌우 이념대립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았고 무고한 생명들이 총칼 앞에 쓰러졌다. 한국전쟁 전후로 학살당한 민간인 수는 100만 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민간인학살을 다룬 영화로 <지슬>, <레드 툼>, <작은연못> 등이 있다. 이 영화들이 특정지역에서 일어난 민간인학살을 다뤘다면, <해원>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민간인학살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민간인 학살…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지난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가족들도 참석했다. 불과 60~70년 전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때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면서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해원>은 민간인학살을, 해방이후부터 한국전쟁기까지 반정부인사 학살과 한국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 형무소 재소자 학살, 서울수복 전후 부역자 학살, 전쟁기간 동안 미군 폭격, 인민군측 학살, 지방 좌우익의 보복학살로 분류해 다루고 있다.
전쟁 전후로 일어난 민간인학살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역사교과서’ 같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인천 월미도 마을, 경기도 금정굴, 함평군 월야면,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유림면, 불갑산, 금서면 방곡마을, 삼마치고개…
많은 지역들이 <해원>에 등장한다. 손가락질만으로 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죽일 수 있는 서슬이 시퍼렇던 시대에 학살이 일어난 곳들이다. ‘저런 곳에서도…’ 차라리 이 땅에서 피를 흘리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빠를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구자환 감독은 영화에서 소개되는 사건과 지역은 극히 일부라고 말한다.
해원 :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내다
구 감독은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을 다룬 <레드 툼> 이후로 힘들어서 민간인학살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5년 당시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보고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참혹했던 민간인학살을 국민들에게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역사왜곡을 하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시작한 것이 <해원>이란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구 감독은 국민들에게 참담한 역사를 더 알리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고자 했다. 그 바람은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내다’는 뜻을 가진 ‘해원’이란 제목에 그대로 담겨 있다.
자신이 먼저 다큐멘터리로 민간인학살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이후에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자신보다 더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 민간인학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저는 그보다 앞서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정도만 드러내도 충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을 위해 진실화해위원회가 설립됐다. 2010년까지 168개소 유해매장 추정지를 확인하고 이 중 37개소를 우선발굴 대상지로 정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13개소만 발굴된 채로 종료된 상태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법 개정안이 1년이 넘도록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해원>은 오는 5월 10일 정식 개봉하며, 서울·부산·광주·인천·창원·강릉 등 13개 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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