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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통일,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좌담] 통하다 : 궁극에 처하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린다 편집국 2018-05-24 17: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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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장면을 각자의 시선으로 실시간 목격한 국민들은 한 층 더 가깝게 통일을 느끼며 기분 좋은 상상을 이어가고 있다. <가톨릭프레스>는 천주교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유철 시인과 천주교 청주교구 신성국 신부, 천주교 인천교구 지성용 신부를 만나 ‘다가온 통일,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야기 나누었다. - 편집자 주


▲ 왼쪽부터 신성국 신부, 김유철 시인, 지성용 신부


Q)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민들은 ‘통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깝게는 ‘평양냉면을 배달시켜먹을 수 있을까’ 부터 ‘통일되면 군대 안가도 될까’, ‘유럽까지 기차여행은 언제쯤 가능해 질까’. 이 기분 좋은 상상의 문 앞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우리는 통일을 앞두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신성국 신부) 저는 1999년에 처음으로 북한에 방문했고 지금까지 총 일곱 번 다녀왔습니다. 제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를 맡고 있을 당시, 사제단 차원에서 지원사업을 하기 위해 수녀님 3명, 성직자 3명이 함께 가서 필요한 농기구나 비료 등을 전달했던 일이 있습니다. 


한반도 정세가 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우리의 70년 역사에서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고 기쁜 소식이 들려오면서 제 삶에도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김유철 시인) 저는 어딜 가든 얘기하지만 탈북자의 자식입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아버지가 이북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에, 저에게 ‘북한을 몇 번 갔다 왔다’는 말은 어폐가 있어요. 가야할 곳을 갔을 뿐이고, 얼마나 정확한 족보인지 모르지만 족보상으로 고려 때부터 그곳에서 산 기록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저 담담하게 지켜봤습니다. 원래의 자리를 회복하고 찾아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성용 신부) 저는 지난 4월 27일, 용유도에서 아침부터 남북정상회담 광경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3~4개월 안에 큰 격변이 일어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큰 감동을 받았고,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까하는 긍정과 의문과 기대가 엇갈렸습니다.


Q) 신앙인으로서의 통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으니, ‘민족화해위원회’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2015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대표단과 장충성당 성가대원들 (사진출처=CBCK)


(김유철 시인) 1984년부터 북한 선교라는 개념으로 한국 가톨릭 전례 200주년 기념 ‘북한 선교부’가 만들어졌어요. 후에 ‘민족화해위원회’가 됩니다. 선교 이전에 화해를 해야 한다는 올바른 생각이고 판단이었을 텐데, 많은 일을 했음에도 어떤 모습 이상으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도와주는 식이었고 일부에서 말하는 퍼주기의 개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탈북자는 못 먹어서 내려온다’ ‘밥그릇을 뺏어간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다 보니 교회 안에서도 접근 방법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신성국 신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 교황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난 평창올림픽 때부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특별히 함께 기도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끝나자마자 응원하는 메시지를 또 냈지요. 


오는 5월 30일에는 남북한의 태권도단을 바티칸에 초청해서 시범공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교황님께서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에 관심을 갖고 메시지를 발표하는 건, 이것이 전 세계적인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에 비해 한국천주교회의 역할이 너무 미흡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어느 위원회 하나의 역할이 아니라 주교회의 차원에서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유철 시인) 한국천주교회는 시대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에 대한 키워드를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잡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총회 때 남북에 대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평화전문가인데도 불구하고 평화를 이야기 하지 않고, 흔히 말하는 ‘도그마’에 갇혀있는 전형적인 모습인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북한선교부로 시작한 민족화해위원회가 이름을 바꿨는데, 바뀔 때까지 얼마나 고난한 말들이 있었겠어요. 공식적으로 나오는 민화위 기관지가 『북한선교』였어요. 거의 10년 동안 이어지다가 1991년도에는 『나눔과 화해』로 바뀝니다. 이것처럼 교회를 이끌고 있는 주교님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하고, 앞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통일문제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과거부터 반성하고

‘선교’가 아니라, ‘일치와 화해’를 위한 일을 해야


(신성국 신부) ‘분단’ 자체가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와 양립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교회는 분단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일차적인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가 추구하는 예수의 사명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자면, 첫 번째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화해’입니다. 증오를 없애고 화해로 가기 위한 그분의 희생이었는데 ‘분단’은 화해를 거절한 상황이에요. 남과 북이 70년 간 이어 온 분단을 거두어 내고 서로가 형제로서 화해하고, 앞으로는 남북이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의 부활은 ‘평화’입니다. 그분이 부활하고 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씀이 “평화를 빕니다”입니다. 평화라는 것은 폭력을 없애는 것인데, 분단 체제는 전쟁이 계속 진행되는 상황이죠. 정치상황이 어땠는지를 떠나서 교회는 분단 체제를 70년 간 유지해왔던 것 자체에 대해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학자들이 분단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올바른 통일신학을 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합니다. 


(김유철 시인) 우리는 살아보지 않은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통일의 길’, 우리가 말하는 ‘화합의 길’은 아무도 안 살아 봤어요. 그래서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고 학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김여정 북한 제1부부장이 평창올림픽에 참석했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할 때 배경그림 생각나십니까? 배경화면에 ‘통(統)’이라는 글자가 크게 보였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쓴 글자입니다. 



통(統)이라는 글자는 주역에 나온 글자인데 그 옆에 이철수 화백의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쓴 주역에 보면, ‘궁극에 처하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립니다. 열려 있으면 오래 갑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신학자도 있고, 성서학자도 있지만 세상의 진리를 좀 더 깊은 눈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궁극에 처했다’는 것은 ‘이게 아니면 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핵문제가 아니고 민족이 낭떠러지에 있는 거예요. 이대로 가면 구한말 시대와 같이 미국은 미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한국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노리개로밖에 안 씁니다. 우리가 궁극이기 때문에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성국 신부) 저도 민족화해위원장을 4년 정도 지냈습니다. 그때 민화위 전국위원회 모임을 가서 지도 주교님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흡수통일’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북한에는 성직자가 없으니 우리가 가서 선교하고 사제들을 파견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북한선교’라는 말 자체가 흡수통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없으니 우리가 가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죠. 


교회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운명이 달린 절박한 전쟁을 끝내고, 모든 생명이 잘 살고 평화롭게 사는 차원에서, 복음적인 관점으로 통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천주교회는 북한을 복음화 시키기 이전에, 장악하고 개척하는 흡수통일 사고방식을 지닌 남한교회부터 복음화 해야 합니다. 일치와 평화를 위해 통일관을 바꿔야 합니다.


Q) 독일 통일 과정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없을까요? 


(지성용 신부) 저도 이번 기회에 자료를 좀 찾아보고 공부를 했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독일 통일 과정에서 천주교회가 한 역할은 없었습니다. 스스로 고백을 해요. 대신 동독과 서독 양쪽 개신교회가 상당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1961년부터 1979년까지 베를린 교구장을 역임한 벵쉬 추기경(Alfred Cardinal Bengsch)은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자 굴에 앉아있습니다. 그는 사자를 쓰다듬지도 그 꼬리를 당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교회는 정치적인 문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중립이 아닌 ‘회피’의 전략을 선택했던 거죠.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한 계산이었고, 소금이나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지와 보전을 위한 방법을 선택했던 겁니다.


그런데 독일 천주교회가 국내적으로는 침묵을 했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동독을 방문해서 지도자를 격려했던 여러 국외적인 상황들이 예측할 수 없었던 동독과 서독의 화해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하는 역사적인 평가들도 있습니다. 


저는 우연치 않게 1992년 봄에 베를린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통일의 현장을 가서 보고 세미나에 참석해서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독일 통일이 가능했던 것은 내부 성원들의 노력보다는 국내외적인 정치 상황의 급변, 당시 소련의 M.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인해 동독이 무너지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 거죠. 소비에트, 즉 사회주의 군락의 해체가 동독이 무너지는 데 영향을 줬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 되면서 더 이상 장벽 안에 가둬둘 수 없었던 경제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이루어진 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경우도 국내외적인 정세 그리고 정보의 혁명을 통해 북한 사회에 도달한 시장경제체제와 스마트폰 등의 새로운 문화가 북한 체제와 체제 유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남북 간의 화해뿐만 아니라 북미간의 화해도 만들어 내야 북한이 활로를 찾아갈 수 있다고 보고 노력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성국 신부) 저는 제 나름대로, 왜 동서독 천주교회나 분단 상황에 있는 우리 천주교회가 통일문제에 대해 소극적인지 분석 해보겠습니다. 


교황청이 1940년대부터 반공주의 정책 교서를 냈습니다. 교회를 흔든 가장 기본적인 교서였어요. 천주교회는 전 세계에 반공주의 노선을 걷는다고 반포했는데, 분단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실질적으로 효과가 없었지만 분단된 독일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구체화 됐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전쟁까지 갔던 것이지요. ‘반공주의’는 전쟁과 학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잃게 한 것을 정당화 시킨 교회 교리였습니다.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때 천주교회가 일본의 동아시아 식민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입니다. 먼저 중국을 침략하고,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죠. 이때 가장 앞장서서 침략 작전을 지지한 게 교황청이었어요. 일본이 가장 앞에 내세운 명분이 우리는 반공주의라는 거였어요. 이것이 바로 대량학살을 일으킨 일본주의 침략전쟁에 천주교회가 함께 동참했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한국교회의 슬픈 사건은 박정희 5·16쿠데타를 가장 앞장서서 승인한 것이 교황청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한국주교회의 자료집에서 찾은 내용인데요, 미국보다 앞서서 박정희 쿠데타를 인정합니다.


“박정희 쿠데타 세력은 자신의 정권 장악을 기정사실화 하고 국제적 승인을 얻기 위해 교회의 협조가 필요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한 교황 사절은 쿠데타 세력이 반공체제를 강화하는데 특별한 호감을 표현하고 미국에 앞서서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였다.”


이렇게 반공주의가 분단을 지금까지 정당화 시켜주고 통일에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반공주의를 말하면서는 분단을 넘어서는 과정을 말할 수 없습니다.


(김유철 시인) 한국교회는, 설사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 쪽에 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신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종교는 문화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폼 잡을 이유가 없습니다. 서태지나 종교직업인이나 같은 급입니다. 남북정상회담 환송할 때 ‘발해를 꿈꾸며’가 배경음악으로 깔렸죠. 발해를 꿈꾸며 마지막 가사가 이렇게 끝나요. 


저 하늘로 자유롭게 저 새들과 함께 날고 싶어. 우리들이 항상 바라는 것 서로가 웃고 돕고 사는 것. 이젠 함께 하나를 보며 나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조금 더 힘을 빼야 하고 교회 구성원들이 깊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표면적으로 나와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에 천착하지 말고, 세상에 많은 문화인들 흔히 말하는 연예인들한테도 배울 수 있어야 해요. 이번에도 남북 문화행사를 통해 먼저 문을 열었습니다. 유명한 목사님, 신부님, 추기경님이 가서 ‘썰’을 푼다고 북한사람들이 박수치겠습니까? 우리는 조금 더 어깨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넓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인정하고 믿는 거잖아요. 하느님이 만든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고 깊고 뜻이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뜻을 읽고 교회가 만든 전례적인 형태로 접근해서는 북쪽의 통일이 된들 로마보다 더한 로마의 교회 지구가 될 따름입니다.


Q)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던 세계교회협의회가 방북 보고대회를 했습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들을 만나 “한반도만 비핵화 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전 세계가 비핵화 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도 판문점 선언을 실질적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교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21세기 통일의 길로 가면서 우리의 담론은 무엇일까


(김유철 시인) ‘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이라는 책도 있지만 논어부터 시작해서 한비자까지, 연대별로 보면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0년. 예수님 태어나기 전이죠. 매일 전쟁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수많은 나라가 생겨나고 죽이고 없어지는 과정에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누구는 ‘인’을, 누구는 ‘사랑’을, 한비자는 법이라고 하는 담론이 나온 것이죠. 


21세기 통일의 길로 가면서 우리의 담론은 무엇일까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파주 땅값이 오르는 게 우리의 담론은 아니잖아요. 


(신성국 신부) 교회가 할 역할에 대해 말씀했는데 이번에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인들이 석방됐는데, 모두 종교 관련된 사람이었어요. 북한을 선교 대상으로 보고 성경을 뿌리고, 무신론자들을 예수님 믿게 만드는 일. 저는 이것이 개신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천주교는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북한을 선교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어요. 솔직해져야 합니다. 이런 상태로는 남북 화해 어렵습니다. ‘그들보다 우리가 더 우월하다, 종교를 갖고 있다, 예수를 믿고 있다, 너희들은 구원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개신교와 천주교는 통일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지난 4월 24일,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가 봉헌됐다. ⓒ 곽찬


(지성용 신부) 실제로 남북 통일 국면에 종교의 역할이 보이지 않습니다. 종교 본연의 슬로건은 사실 ‘평화’거든요. 사랑을 이루기 위한 전제는 평화잖아요. 평화는 정의의 전제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종교가 비본질적인 교세의 확장 쪽으로 방향을 잡다보니 시대의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북문제에 있어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기력과 무능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교의 방향을 잘못 상정해왔다는 것에 대한 반성과 회개도 해야 합니다. 종교를 쇄신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평화를 위해 투신하고 헌신하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남북의 화해 문제는 종교의 쇄신과 방향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신성국 신부) 맞습니다. 한반도 관계가 좋아지다 보니 천주교나 개신교나 북한으로 선교의 눈길을 돌리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우선 민족적인 차원, 평화적인 차원의 큰 틀에서 교회가 이끌고 가야 결과적으로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선교를 앞장세우고 이를 목적으로 한반도 관계에 접근하면 교회는 모든 것을 놓치게 돼있습니다.


이미 와 있는 하느님을 만나는 일


(김유철 시인) 두 가지만 덧붙이고 싶은데 첫 번째는 계속 말씀한 바와 같이 ‘이미 와있는 하느님’을 우리가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대륙에 가기 전에 이미 사람은 살고 있었어요.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계신 걸 만난다고 생각해야죠. 


통일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가톨릭대학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성직자 되려고 하는 이들 교육 커리큘럼 안에는 무엇이 담길까. 지난해 11월 바뀐 한신대 총장이 취임하면서 한겨레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놀랍게도 첫마디가 통일시대 최고의 대학을 만들겠다는 거였어요. “나는 통일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이 땅의 평화, 생명과 정의와 사랑이 들어 있는 평화를 구현하는 대학, 통일을 여는 대학으로 나아가겠다”고 했어요. 저는 이런 메시지가 듣고 싶습니다. 


현재 한국에 서강대를 제외하고 가톨릭대학이 7개가 있는데 4개는 종합대학이고 3개는 신학생을 모집하는 대학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가톨릭대학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쓰고 있나요. 가톨릭대학이라면 ‘가톨릭다운 것’을 가르쳐야 해요. 


신학자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한국 안에는 신학자가 많이 있지만 영향력이 좀 생기면 제재부터 받아왔습니다. 교회를 이야기하는 신학자는 있어도 통일을 말하는 신학자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230년을 맞이하는 한국가톨릭의 현주소 일 것입니다. 


우리는 안 살아본 세상을 열려고 하고 있어요. 정치가 열었고, 이념이 열었겠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물처럼 겸손한 자세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새롭게 만날 북쪽사람들에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전달해줘야 해요. 우리는 그들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살았다고 자부하잖아요. 우리는 그들보다 예수님을 먼저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걸 우리는 전해줘야죠. 그런 의미에서 서로 공감하게 된다면 마음에 문부터, 통할 ‘통’ 열릴 거예요. 


(신성국 신부) 맞습니다. 저는 천주교회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우월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장 전통적인 종교다, 우리만이 구원의 종교다, 우리만이 예수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사도적 종교다’라는 이 우월감이 민족 안에서도 발생할 수 있어요. 북한을 향해 ‘당신들은 무신론자이고 가난하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복음적인 방법이 아니에요. 인간화, 복음화, 정상적인 민주화를 하려면 한국천주교회가 갖고 있는 마음 자세를 바꿔야 할 것입니다. 


(지성용 신부) 저도 신학자들의 빈곤문제에 공감합니다. 현재 천주교회의 한계를 인식하고 교회 안에서 통일과 민족의 상생을 위한 신학적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의 연대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어떤 제도나 장벽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사회와 소통하는 신학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위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예언자적인 직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성경에 나오는 단어를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닌, 시대의 아픔을 감싸 안고 ‘예수가 바라는 사회는 무엇인가’ 고민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이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신학의 장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를 정리하니 결국, 교회는 통일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선교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자매를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서로 공감하는 일, 함께 먹고 사랑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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